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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근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듰한 노동현장’을 주제로 열린 스물다섯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노태우에서 윤석열까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권력의 크기는 시간의 흐름 따라 줄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은 집권당 총재를 겸하면서 당을 지배했다. 다음 대통령들은 일개 당원으로 남았다. 윤석열이 일개 당원으로 당을 지배했던 기간은 2년뿐이다. 집권당을 통제하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앞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시선을 한 정부 임기 내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권력 크기는 시간의 함수다. 임기 전반기 누리던 권력은 후반기 눈에 띄게 약해진다. 권력에 적용되는 엔트로피 법칙이다.

노태우에서 윤석열까지 권력 감소 과정에 헌법은 단 한 자도 바뀌지 않았다. 오탈자도 그대로다. 바뀐 것이 있다면 권력에 관한 시민, 지식인, 여론 주도층의 인식과 태도다. 시민은 삼권분립이 분명해지고, 총리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 당정이 분리되는, 권력 분산을 원했다. 한마디로 분권에 대한 시민의 기대와 요구가 커지는 정도에 따라 대통령 권력이 줄어들었다.

하나의 세포는 두 개가 되려는 꿈을 꾸고, 인간은 권력을 확대하려는 꿈을 꾼다. 토머스 홉스는, 죽어서야 멈추는 권력욕구는 인간의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했다. 권력의 관점에서 모든 대통령은 인간적이다. 그들은 권력을 강화하고 확장하고 남용하려는 욕구를 갖는다. 권력 연장을 포기한 조지 워싱턴, 넬슨 만델라야말로 비인간적이다.

잊을 만하면 대통령 격노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의 감정 변화를 모든 시민이 피부로 느끼는 현상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인간 스스로 자기 욕망을 억제하는 게 불가능하단 현실을 민주주의는 인정한다. 미국 민주주의 기초를 닦은 제임스 매디슨은 그런 전제 아래 욕심을 욕심으로, 파벌을 파벌로 제어하는, 상호 견제 원리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지도자의 감정·개성·자의성이 국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제어장치인 것이다. 그럼에도 지도자 기분 따라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고 변경되는 사건이 일상화한다면, 지도자의 한계만이 아니라, 민주적 제도에 왜 동맥경화증이 생겼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국가를 이끄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 한 명만 바라보거나, 대통령 한 명에게 맡긴 채 손 놓고 있어서는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엘리트들은 자기 직무에서 이룬 성과가 있다면 더 나은 성취를 위해 나아가기보다 그것을 권력과 교환하려 한다. 권력만이 진짜 보상이며, 명예회복이고 진정한 출세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 자기 일에 대한 존중이 없다. 사법부 독립이 흔들린다면 정치권력 때문이 아니라, 판사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좇기 때문이다. 언론이 진영 대결에 휩쓸린다면 정당이 그렇게 유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언론 스스로 정당이 되려 하기 때문이다.

직업윤리가 사라진 땅에 남는 것은 쏠림이다. 새로운 권력이 부상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우르르 몰려간다. 권력 중심을 향한 질주는 공공, 민간 구분이 없다. 이런 쏠림이 대통령 권력의 절대 크기가 줄어도 여전히 크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낸다.

검찰이 김건희 수사를 시작했고, 대통령은 수사 지휘부 교체로 맞섰다. 총선이라는 외부 충격이 준 효과다. 검찰이 자기 일을 하는데 왜 자기 의지가 아니라, 외부 강제가 필요한가? 검찰조직은, 손으로 때려야 작동하는 낡은 TV다. 검찰은 대통령 임기 전반기 권력 지키기를, 후반기 자기들이 지킨 권력 무너뜨리기를 한다. 권력 수호나, 권력에 대한 도전 어느 것도 직업윤리에 합당하지 않지만, 기회주의에 능한 검찰은 때를 기다렸다가 스스로 권력이 되는 행운을 잡을 줄 안다.

다른 영역의 엘리트들도 마찬가지로 기회주의적 처신을 한다. 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다했다면, 권력 집중과 몰락의 요동도, 그 때문에 국정이 춤추는 일도 줄었을 것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다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제왕적 권력이 하루아침에 권력의 거지로 전락해 리어왕처럼 버림받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수없이 목격한 일이다.

대통령 탄핵도 해보고 5년 만에 정권교체도 해봤지만, 변한 것도, 해결된 것도 없다. 대통령 실패는 반복됐다. 그걸 잘 아는 엘리트들이 자기 면책을 위해 생각해낸 것이 대통령 한 명을 지목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윤석열의 무능과 무도함이 그걸 가리고 있을 뿐이다.

이대근 칼럼니스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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