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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강남의 한 베이커리카페에서 열린 ‘설영희 마리에블랑 부띠끄’ 패션쇼에서 한 시니어 모델이 워킹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67년생 이수남(57)씨는 지난해 말 30년 가까이 다닌 회사에서 퇴직했다. 요즘은 아내와 등산을 가거나 골프를 즐기며 한숨 돌리고 있다. 이씨는 “퇴직한 친구들과 종종 만나 운동하고 은퇴자로서 노하우를 나눈다”며 “아직 한창이라고 생각해 다른 일자리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사업체를 운영하는 강화자(58)씨는 자신을 ‘시니어’(고령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씨는 “옛날 58세는 노년이었겠지만 지금 나는 중년의 막바지라고 생각한다”며 “외모상으로도, 건강 상태를 봐도 할머니가 되려면 멀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큰손’ 영시니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가 새로운 ‘파워 컨슈머’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만 55~64세(1960~1969년생)인 이들은 약 860만명,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18%)를 차지한다. 이들은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고령자(만 55세 이상)로 분류되고 있으며, 법적 정년(만 60세)을 넘겼거나 곧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고령’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젊고 건강하며 구매력이 있는 ‘영시니어(Young Senior)’로 주목 받고 있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60년대생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급변하는 사회를 겪었으며 디지털 문화를 경험한 세대”라며 “과거 노인들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어’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면 이제 ‘686(6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된 이들은 새로운 플랫폼을 접하고 배우는 데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시니어가 된 이들의 구매력과 시장에서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경제적 여유를 가진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들이 앞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앙일보는 이들 860만 영시니어의 수입·지출과 소비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한국리서치에 의뢰, 만 55~64세(1960~1969년생) 남녀 317명 대상 설문조사(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또 대한상의와 함께 마케팅 리서치기업 칸타 월드패널에 의뢰해 2018·2022·2023년에 실시한 만 55~64세 1000가구의 소비생활 설문 자료를 비교 분석했다.



은퇴 후에도 월수입 300만원
박경민 기자
86세대인 영시니어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조사 대상 중 은퇴자(45.5%)보다 직장 생활 중이거나 사업체 운영 등을 통한 소득이 있는 경우(55.5%)가 더 많았다. 경제활동 중인 60년대생의 월평균 소득(세전)은 801만원으로 집계됐다.

은퇴 등으로 현재 무직인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285만5000원이었다. 소득 출처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소득(45.8%)의 비중이 가장 높았고, 예·적금 등 금융 소득과 부동산 임대 소득(20.6%), 자녀 등이 주는 용돈(14.7%), 아르바이트 등 근로소득(14.5%) 순으로 나타났다. 199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 70%, 보험료율 3%(근로자 부담분 1.5%)로 설정돼 수익률이 높았는데 그 수혜를 이 세대가 가장 크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김민석 대한상의 유통물류정책팀장은 “전쟁 직후 태어난 60년대생은 급격한 경제 발전과 호황기를 경험하며 자산을 형성한 세대로 기존 고령층보다 안정된 직업, 높은 학력 수준을 갖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일찌감치 은퇴 계획을 세우고 퇴직연금·개인연금·저축 등을 활용해 노후 자금을 마련했고 부동산을 통한 자산 축적의 기회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은퇴자 과반 “아직 일할 때”

지난해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수원시 노인 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연금 3종 세트(국민·퇴직·개인연금)를 탄탄히 갖춘 영시니어들은 기존 고령층과 확연히 대비되는 신(新) 소비자들이다. 자신들을 시니어(고령층)로 분류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으며 왕성한 경제·사회 활동이 가능하다고 자부한다.

이번 설문에 따르면 이들 중 은퇴자의 60.3%가 단기 근로자, 정직원 등으로 재취업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 재개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 마련(47.1%)이지만 일하는 즐거움(34.1%)을 꼽은 경우도 많았다.

이영진(61)씨는 “60살이 넘었으니 중년이라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노년도 아니다”라며 “아직 몸도 건강하고 한창이기 때문에 70살까지는 경제 활동도 왕성하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양 부담은 여전
이들 영시니어는 한달에 얼마나 쓸까. 이들의 월평균 지출 생활비를 집계한 결과 현재 근로·사업 소득이 있는 경우는 317만1000원, 은퇴자들은 204만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가족 부양에 드는 지출은 전체의 4분의 1(24%)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29.7%)은 미취업 자녀인 캥거루족을 키우고 있었고,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도 37.9%로 조사됐다.

은퇴자들의 가족 부양 부담도 작지 않았다. 은퇴자의 21.3%는 자녀를, 32.6%는 부모를 부양 중이라고 답했다. 이들이 부양하는 미취업 자녀 중 20대는 56%였고, 30대도 36.7%로 나타났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녀들이 학업을 마친 경우라면 학자금 같은 목돈 지출은 많지 않아, 이미 모아둔 돈과 퇴직금, 국민연금 등으로도 부양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 생활도 중요”

김경진 기자

86세대인 영시니어들은 생필품 외에 문화·여가생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품목별 소비 지출을 분석한 결과 식비(현직 38%, 은퇴자 36.7%) 비중이 가장 컸고, 생필품비(20%, 20.3%), 문화·여가·통신비(19.4%, 18.7%), 병원·의료비(10.5%, 15.5%), 뷰티·의류비(9.1%, 6.1%) 등이 뒤를 이었다. 은퇴자의 경우 현재 소득 있는 영시니어들에 비해 전체 지출에서 식비와 뷰티·의류비 비율이 2~3%p 낮은 반면, 병원·의료비 비율은 5%p 가량 높았다. 김보화(60) 씨는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닌다. 더 늙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라 아깝지 않다”고 답했다.

대한상의 김 팀장은 “기대 수명이 증가하고 만성질환을 사전에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 세대가 55~64세일 때보다 86세대 영시니어들은 더 건강하고 활기차다”며 “구매력, 자산, 체력을 다 갖춰 현재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세대”라고 분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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