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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2024 환율전쟁]



#장면1. 블룸버그는 지난 5월 9일 아시아의 환율전쟁에 대한 기사를 하나 내보냈다. 제목은 ‘엔화의 취약성으로 아시아에서 새로운 통화 전쟁이 시작될까’였다. 핵심은 중국이 환율전쟁에 참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일본이 현재와 같은 초엔저 정책을 밀고 갈 경우 중국의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가뜩이나 디플레이션 상황에 처해 있는 중국이 수출마저 더 쪼그라들 경우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할 수 있어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해 환율전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고, 이렇게 되면 한국과 대만도 가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새로운 통화 전쟁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였다.

#장면2. 지난 4월 17일 한국과 미국, 일본 3국의 재무장관회의가 열렸다. 3명이 한자리에 앉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한·미·일 재무장관들은 최근 원화와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하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원·달러 환율이 17개월 만에 장중 1400원까지, 엔·달러 환율은 34년 만에 154엔대로 진입한 시기였다. 한·일 재무장관의 구두개입과 미국의 동조는 금융시장의 빠른 안정을 기대하게끔 했다. 불길은 잡혔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안 돼 3국의 통화 운명은 크게 엇갈렸다. 엔·달러 환율은 160엔까지 치솟았고 원·달러 환율은 1360원대로 내려왔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지표 ‘환율’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거대한 체스판의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달러, 엔, 유로 그리고 위안이다(원도 있지만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좀).

주요국들은 각국 경제의 명운을 걸고 환율전쟁에 나서고 있다. 2019년 미·중 무역갈등의 중심인 환율전쟁, 2021년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역환율전쟁을 지나 환율전쟁과 역환율전쟁이 혼재된 2024년 신(新) 환율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 ‘환율’을 주목해야 할 시간이다.

1. 전 세계의 체스판


경제 체스판에서 환율은 각국이 조종하는 말의 움직임과 같다. 달러, 유로, 엔, 위안, 원 등 주요 통화들은 체스의 퀸, 룩, 비숍처럼 각자의 역할과 힘을 가지고 경기를 이끈다. 환율 조정은 마치 체스에서 상대의 킹을 체크메이트하기 위한 전략적 수를 두는 것과 유사하다.

2. 각 통화의 움직임


*달러(퀸) : 전방위적으로 움직이며 게임의 흐름을 주도한다. 안정성과 힘으로 많은 나라들이 이 통화를 선호한다.

*유로(룩) : 유럽의 큰 범위를 아우르며 강력한 직선적 움직임을 보인다. 유로존의 경제 상황에 따라 유로는 그 방향성을 단호하게 결정짓는다.

*엔(비숍) : 한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그 방향은 주로 내수 부양과 수출 증대를 목표로 한다.

*위안(나이트) : 예측하기 어려운 독특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놀라게 한다. 중국 내부의 정책과 글로벌 전략에 따라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

*원(폰) : 폰은 장기의 졸에 해당하며 장기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약한 말이다. 보통 시작할 때는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폰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올라갈수록 강력해진다. 원화도 유사하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대형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한국 경제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원화는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IT, 반도체, 자동차 등의 가격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3. 전쟁의 여파


체스 게임의 각 수는 세계경제에 파장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가 떨어져 달러 대비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이 증가한다. 하지만 너무 급격한 환율상승(통화가치 하락)이 일어나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환율하락(통화가치 상승)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론 세계의 통화 달러를 보유한 미국은 예외적인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마치 체스판 위의 한 수가 전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듯 환율의 변화는 국가의 경제 건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미·일·중, 주요국들의 숨은 전략을 들여다 봤다.
① 일본은행의 이상한 통화정책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통화정책은 환율을 직접적인 통제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4월 26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기준금리(0~0.1%) 동결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일본은행이 엔화 약세에 제동을 걸 것이란 시장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발언이었다. 엔화 가치가 하락(엔·달러 환율 상승)하는 것을 방치하겠다는 얘기였다. 사흘 뒤인 4월 29일 엔·달러 환율은 160엔을 넘어섰다. 날개 없는 추락이었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8엔대 아래까지 밀린 것은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이었다.

헤지펀드 투기세력도 값싸진 엔화를 집중 공격했다. 역대급 엔저에 국민적 불만도 터져 나왔다. 수입 물가가 올라 국민들의 실질 소득도 실질 구매율도 하락했다. 해외에서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반기는 게 아니라 ‘일본이 싼 나라가 됐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자 일본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4월 29일 당일 오후 1시쯤부터 약 1시간에 걸쳐 달러당 160엔 선에서 155엔대까지 4엔가량 급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환율) 개입이나 동향에 대해서는 어떤 유무(有無)를 포함한 언급을 삼가겠다. 이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시장에선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환율 개입 가능성이 제기됐다. 비슷한 정황은 미국 기준금리가 동결된 지난 5월 2일 새벽에도 포착됐다. 일본 정부는 ‘노코멘트’ 입장을 고수했다.

미온적인 태도였다. 엔·달러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인 155엔대에서 움직였다. 마치 일본 정부가 160엔을 상한선으로 정해둔 듯 했다. 이 상한선은 헤지펀드들에 먹잇감이 되기 충분한 가이드라인 역할도 한다.

시장에선 일본 정부가 환율을 방어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가이타 가즈시게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 부장은 닛케이신문을 통해 “엔저가 이렇게 많이 진행되고 있어 국채 매입 축소 등 대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엔저에 대한) 응답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독일의 주요 외환 연구책임자인 조지 사라벨로스는 “실제 엔화의 약세가 일본에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며 “환율 하락이 심각한 인플레이션 문제를 일으킨다면 모르겠으나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우에다 총재 역시 환율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금리인상에 대한 긴급성이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계획은 의혹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 탈피를 목표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하에 대량의 국채를 매입하는 조치를 이어왔다. (국채를 매입하면 엔화가 시장에 풀려 엔화 가치는 계속 하락한다)

지난 3월 일본은행의 역사적인 기준금리 인상에도 국채 매입 계획은 지속됐다. 엔화를 계속 시장에 풀었다는 얘기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의 돈을 흡수하는 정책과 국채 매입을 통해 시장에 돈을 푸는 상반된 정책을 동시에 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을 중단하는 대신 오히려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장기 차입 비용을 의미)이 갑자기 오르거나 하면 더 많은 국채를 기동적으로 매입해서 차입비용(중앙은행이 발표하는 기준금리)을 억누르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행이 계속 시장에 개입해 차입비용, 즉 기준금리를 ‘관리’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는 국채 매입 계획을 폐지했을 때, 일본은행이 대규모 적자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일본 국채 발행의 절반가량을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있는데, 시장금리가 1% 상승하면 일본은행의 손실규모가 큰 폭으로 급증하기 때문이다.

버틸대로 버티던 일본은행은 5월 13일에서야 국채 장기물 매입 규모를 소폭 축소한다고 밝혔다.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슈퍼엔저의 대항마로 꺼내든 첫째 공식 카드였다.

이날 일본은행은 잔존 만기가 5년 초과 10년 이하인 국채를 4250억엔(약 3조7345억원)어치 사들인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달 24일 매입 규모(4750억엔)보다 500억엔(약 4389억원) 준 것이다. 대신 나머지 1년 초과 3년 이하 국채(3750억엔), 10년 초과 25년 이하 국채(1500억엔) 매입 규모는 전과 같았다. 시장의 기대치에 비하면 ‘소규모’였다.

수출도 역대급 훈풍이었다. 엔저 효과에 일본 상장기업의 순이익이 3년 연속 역대 최고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도요타자동차는 작년도 영업이익이 5조3529억 엔(약 47조883억원)으로 96.4% 늘어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 5조 엔대 영업이익을 올렸다. 아사히신문은 “역사적인 엔화 약세로 해외 사업 이익이 부풀어 오른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강달러가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피에 도움이 되는 것도 일본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한몫했다. 다수의 국가들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일본만은 잃어버린 30년 속에 임금과 물가가 제자리걸음을 했다. ‘2%’ 물가상승률은 미국이나 한국과는 다른 의미로, 일본 정부의 목표였다.

변정규 미즈호은행 전무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하는 일본 입장에서 150엔대의 환율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며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이 가난해지는 문제가 있지만 일본은 장기적으론 ‘선순환 구조’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로 수출이 증가하고 일본 내 투자(관광 포함)가 늘면 경기가 회복되어 내수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선순환 구조가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엔화 가치도 단계적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계산이다.

② 미국, 파월과 옐런의 동상이몽
“엔화에 대해 시장 개입은 극히 드물어야 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4월 25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엔저에 따른 일본 정부의 개입에 대해 경고장을 날렸다. 불과 8일 전 일본의 재무장관을 만나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하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이날 옐런은 “(일본은) 과도한 변동성이 있을 때만 드물게 개입해야 하며 (개입할 때는) 우리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란 주어는 없었지만 일본을 향한 경고장이란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옐런이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에 날카롭게 반응한 건 미국채의 가장 큰손이 일본 정부이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2년 국가별 미국채 보유량은 일본이 1조2128억 달러로 1위다. 기존의 1위였던 중국은 9808억 달러로 2위다. 미·중 무역갈등 이후 중국이 미국채를 내다 팔면서 미국채의 큰손이 일본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일본 금융당국이 엔저에 대응하려면 달러 자산을 팔고 엔화를 사들여야 한다. 달러 자산이란 곧 미국 국채를 의미한다. 미국으로선 중국에 이어 ‘큰손’을 또 한번 잃게 되는 것이다.

옐런은 다른 선택지를 쓴다. 지난 5월 1일 20년 만에 처음으로 ‘바이백’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5월 29일부터 총 아홉 번에 걸쳐 2054년이 만기인 30년짜리 장기물을 중심으로 매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규모는 이표채 140억 달러, 물가연동국채(TIPS) 10억 달러로 총 150억 달러다.

역대급 재정적자에 바이백이라니.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시장은 일단 환호했다. 재정적자여도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이다. 국채 가격은 폭등했다(국채 가격 상승은 국채 금리의 하락). 5월 1일 이후 10년물 국채 금리는 4.7%대에서 4.3%까지 내려왔다.

시장은 옐런의 ‘마술’이 통했다고 봤다. 불과 5월 1일 이전까지 국채 금리는 하락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국채 매수의 큰손인 일본 또한 34년 만의 역대급 엔화 약세에 달러를 팔아 방어한 정황이 뚜렷했고, 미국 중앙은행(Fed) 측은 끈적끈적한 물가 탓에 6월엔 기준금리 인하를 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사실상 분명히 했다. 5월 14일(현지 시간)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인플레이션 수준이 예상보다 높다며 “금리는 현 수준에서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말했다.


시장은 미국채 금리 상승을 예견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옐런의 바이백 선언이 국채 금리 하락을 가져왔다. 재무부의 국채 매입은 곧 양적 완화(돈을 푸는 것)를 의미한다. 바이백을 진행한 시기도 재정흑자를 기록했던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딱 4년뿐이다. 그런데 역대급 재정적자 시기에 바이백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옐런의 속내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의식하는 듯 보였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엔저 현상’을 맹비난하며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 급락은 미국에 ‘대재앙’이라고 우려했다.

옐런을 비롯한 현 바이든 정부가 일본의 엔저 현상을 사실상 묵인하고 방조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4월 23일 자신의 SNS인 트루스 소셜에 “(엔저 현상이) 멍청한 사람들에게는 좋게 들릴 테지만 우리 제조업체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라며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할 수 없어 많은 사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일본과 중국을 거대 국가로 만든 배경”이라고 언급하며 “내가 대통령일 때 나는 일본과 중국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옐런은 엔저 현상을 막는 대신에 바이백으로 미국채를 방어했다. 미국 입장에서도 수출 부문에서 아쉬울 게 없었다. 2016년 미국 최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한 트럼프 정부, 공급망 문제를 강화해 미국 영토로 한국과 일본, 대만을 비롯해 아시아 기업을 불러모은 바이드 정부는 역사적 ‘강달러’에도 불구하고 내수와 고용을 탄탄하게 지탱했다. 수차례 금리인상에도 성장을 지속하는 노랜딩 시나리오가 힘을 받을 정도다.


강달러에 수출까지 더 강력해진 미국이 겨냥한 화살은 최신 무역갈등국 중국을 향했다.

5월 14일 바이든 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100%로 대폭 인상키로 했다. 이미 옐런이 지난 4월 초 중국을 방문해 “미국은 중국산 제품 수입으로 새로운 산업이 파괴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중국 내 과잉생산으로 대중 수입이 급증하는 것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뒤였다. 관세 인상은 미·중 갈등을 재점화하는 전초전으로 보였다. 금융 전문가들은 2019년 ‘환율전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2019 환율전쟁이란


2008년 미국이 글로벌 경제위기로 둔화하자 중국은 수출 성장 대신 투자 성장에 주목한다. 2005년부터 10년간 양적완화(위안화 절상)를 펼치며 제조업 중심으로 투자를 크게 늘린다.

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내수 성장과 주식시장 활성화에도 실패한 중국은 수출 주도의 성장을 꾀하기 위해 2015년 사흘에 걸쳐 약 5% 가까운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진행했다. 10년간 이어온 절상 기조를 불과 사흘 만에 절하 기조로 바꾼 것이자 중국이 환율전쟁에 뛰어든다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공약으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9년 8월 6일 미국 재무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환율전쟁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비화된 순간이다.
④중국, 제2의 환율전쟁 나서나 엔화가 최저치를 경신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건 제3의 수출 주도국가들이다.

블룸버그는 5월 9일 ‘엔화의 취약성으로 아시아에서 새로운 통화 전쟁이 시작될까’란 제하의 기사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경쟁적인 평가절하’로 새로운 아시아 통화 전쟁이 시작되는 시나리오가 등장했다”고 썼다.

수출 이웃인 한국 및 대만과의 경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으며 이미 위안화 평가절하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아태지역 글로벌 시장 책임자 헨리 퀙은 블룸버그를 통해 “엔화가 훨씬 더 약세를 지속할 경우 경쟁적인 평가절하가 잇따를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쟁적인 평가절하란 곧 환율전쟁을 뜻했다. 자국의 통화를 저평가시키면 반대로 자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변정규 전무는 “관세를 높일 필요도 무역협정을 따로 체결할 필요도 없다”며 “불특정 다수의 국가를 상대로 아주 효과적으로 자국 제품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초간단 매뉴얼인 셈”이라고 말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가까운 이웃 국가들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JP모간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아르준 비즈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엔화 약세가 한국 원화와 대만 달러 같은 다른 아시아 외환을 끌어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신산업에서 추가 투자가 어려울 수 있단 전망도 나왔다. ANZ그룹 홀딩스의 아시아 리서치 책임자인 쿤고는 엔화가 약세로 돌아설 때까지 원화와 대만 달러는 해당 국가의 AI 투자 붐의 혜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아시아 금융위기가 반복될 것이라는 견해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고 비축, 금융 부문 감독 강화에 따른 개혁,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 등을 갖춤으로써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화가 170~180엔대로 하락할 경우엔 위기 강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기수 마눌라이프투자운용 수석 포트폴리오 담당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달러 강세로 인해 아시아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현지 시장에 투자하는 자금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며 “신흥국 시장 전체가 폭락하고 국채가 상승하고 주식이 매도되는 리스크 오프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시나리오는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 상황에서 와일드 카드는 ‘위안화’다. 중국의 위안화는 다른 국가들의 기축통화로 간주되기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해 오랜 기간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단 것이다.
2024년 5월 15일 촬영된 이 항공사진은 중국 동부 산둥성 옌타이항에서 중국 자동차 수출용 국산 선박인 'SAIC 안지 이터니티'호에 수출용 자동차가 선적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침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제품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제조원가의 최대 70%를 넘지 않는 덤핑수출로 미국 첨단기술 산업을 뒤흔들어 놓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유럽 주요 항구는 중국산 전기차 재고가 쌓이며 ‘주차장’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2008년에도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기 전 제조업 투자를 늘렸던 중국이다. 전문가들은 2024년 새롭게 발표될 환율조작국 명단을 다시금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국이 모으고 있는 또 다른 카드는 ‘금’이다. 중국은 2022년 10월 이후 계속 금을 사들이고 있다. 금융 자산 가운데 금 비중은 3.2%에서 4.6%로 늘었다. 2200여 톤을 보유하면서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금을 가진 나라가 됐다. 올해 1분기에도 터키와 함께 세계에서 두번째로 가장 많은 금을 사들였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금 비축을 장기적인 국제 전략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에 대비한 재정 안정화다.(일각에선 대만 침공을 위한 준비라는 분석도 나온다.)

변 전무는 “금은 미국채와 같은 외화자산과 비교했을 때 금리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이나 금융 불안정기에는 안전자산의 역할을 한다”며 “준비자산으로서 금은 달러의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위기 상황에서 외환 변동성을 제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⑤한국, 이러지도 저러지도…‘낀’ 우리나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끈적끈적한 인플레이션에 기준금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지난 3월 스위스가 선진국 중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하 테이프를 끊었다. 미국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디커플링’ 선언이다.

마르틴 슐레겔 스위스중앙은행(SNB) 부총재는 최근 강연에서 지난해에 환시 개입을 하지 않았으면 정책금리를 더 높게 올려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중앙은행(릭스뱅크)도 지난 5월 8일 8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올해 6월에는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차례로 금리인하의 첫발을 뗄 것으로 예상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지표가 ECB의 금리인하 궤적에 여파를 미칠 수 있는지 묻자 “미국은 매우 큰 시장이고 금융의 중심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 예측에 포함될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Fed가 아닌 데이터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ECB는 통화정책결정문 성명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지속적으로 수렴한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통화정책 제한 수준을 낮추는 게 적절할 것”이라며 “ECB의 주요 금리가 현재 진행 중인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둔화)에 상당히 기여한다”고 전했다.

원조 ‘디플레’인 일본은행(3월 기준금리 인상)은 차치하고 미국 Fed와 독자노선을 선택한 곳은 대개 인플레이션을 해소한 국가들이었다.


한국도 다시 원점에서 통화정책의 재검토에 나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5월 2일 “4월까지 했던 통화정책방향 논의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주요국 통화정책과 우리나라 성장률, 지정학적 리스크 등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전제가 달라졌기 때문에 기준금리 카드를 다시 고민하겠다는 뜻이었다.

시장은 이 총재의 ‘재점검’의 뜻을 ‘매파적(긴축적)’으로 해석했다. 해당 발언이 나온 날 기준금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국고채 3년물의 강세는 다소 되돌려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시장은 다시 9월 이후 기준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모습이다. 여기엔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이 지연됐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모두가 각자의 셈법에 나서는 사이 한국의 상황은 쉽지 않다. 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환율전쟁’에 가담하기엔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

4월의 CPI는 전년 대비 2.9%를 기록해 시장예상치를 소폭 하회했지만 지난 2~3월 두 달 연속 3.1%로 올랐다. 이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대비 더 많이 오른 수준이다. 올해 들어서 지정학적 위기와 국제유가 상승 등 대외 불안 요인도 증가하면서 물가안정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강력한 한 방도 없다. 일본처럼 미국 국채를 많이 갖고 있지도 않고 중국처럼 금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외환보유고를 달러에 집중하고 금으로 분산투자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도 토로했다. ‘고물가’가 곧 뉴노멀이 된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금은 달러 변동성에 대한 헤지 기능을 가진다는 지적이다.

변 전무는 “전 세계적으로 국가들이 빚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자산은 금이 될 것”이라며 “달러자산에 전부 투자하기보다는 금의 보유량을 늘려서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채를 맹신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인 국가부채와 2023년 8월 신용평가사 피치에 이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부, 중동 갈등 등도 강달러를 끌어내릴 수 있는 리스크로 꼽힌다.

5월 19일(현지시간)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탄 헬기가 추락하는 실종 사고가 발생했다. 헬기에 탑승한 대통령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악천후가 원인으로 꼽히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은 이번 사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변 전무는 “채권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물가”라며 “인플레이션이 높은 기간에는 채권 투자 시 손해가 날 수 있다. 실질 금리가 굉장히 낮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은 환율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처지에 내몰린 셈이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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