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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4권·앤솔로지 1권 전업작가
장르 문학 작가의 첫 비장르 소설
멜라닌, 피부색·이민·차별 소재
‘종차별’ 맞선 존엄 가능성 형상화
장편소설 ‘멜라닌’으로 제29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하승민 작가. 1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선정 소식을 듣고서도 기뻐할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가 기사 본문에 담겨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콘크리트’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등 장르소설 4권을 펴내온 하승민 작가가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선작 ‘멜라닌’은 그의 첫 비장르소설로, 스릴러·추리의 장르문학을 기지 삼은 이가 한겨레문학상을 받긴 처음이다. 올해도 기성 등단 작가들의 응모가 이어진 가운데의 기록이다.

소설가 김금희·김숨·박서련·이기호·편혜영, 평론가 서영인·양경언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출판사에서 최종 심사를 진행해 이와 같이 결정했다. ‘멜라닌’은 피부색과 이민을 소재로 990매에 ‘종차별’의 실태와 속성, 맞서 견디는 존엄의 가능성을 형상화한다. 심사위원들은 1시간10분 토론 끝에 “이민사의 굉장한 디테일” “매력적인 문장과 세련된 결말” “단점을 상쇄시키는, 작품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정감” 등을 이유로 ‘멜라닌’을 뽑았다. 소설가 최진영·심윤경·박민규·장강명 등을 호명해 온 한겨레문학상은 올해 29회를 맞아 국내외 총 239편을 응모 받았으며 이 가운데 4편을 엄선해 최종 심사했다. 유일하게 심사위원 전원에게 한 표씩 받아 예·본심을 통과한 작품이 ‘멜라닌’이다.

1981년 부산 출생의 하승민씨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2007년 졸업하고 엔에이치엔(NHN) 등 아이티(IT) 부문에서 10여년 일하다 2020년부터 전업 작가,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퇴사 전 온라인 플랫폼에 연재해 출판사 제안으로 펴낸 ‘콘크리트’(황금가지)가 첫 책이다. 그는 한겨레에 “순문학과 장르가 문학적 깊이를 구분하는 용어여선 안 된다. 다만 독자만을 상대로 활동하는 영역에서 동료 작가와 평론가들의 평가가 동반되는 영역을 또한 동경해 왔다”며 “선정 소식을 듣고서도 기뻐할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수상작의 단행본 출간과 시상식(한겨레신문사 청암홀)은 7월 중순 예정되어 있다.

소설가 이기호, 평론가 양경언, 소설가 김금희·편혜영·김숨, 평론가 서영인, 소설가 박서련(왼쪽 줄 맨 뒤에서 시계 방향)이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출판사에서 최종심사를 진행했다. 심사평은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박서련 작가가 썼다. 김정효 기자 [email protected]

심사평

익숙한 소재도 곱씹게 한 ‘파란 피부’ 주인공의 생명력

심사자들의 공통된 예심 소회에서는 역사, 경제, 웹 소설 등의 열쇳말들이 언급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그늘을 파헤치려 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고, 국가 및 가정의 경제적 파탄의 영향으로 파편화된 개인들의 서사가 또 하나의 주를 이루었으며 타임 루프, 타임 슬립 설정 또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추미스’(추리·미스터리·스릴러) 장르 코드가 발견되는 작품도 다수였다. 대규모 질병 감염 사태 또한 많은 원고의 구심이 되었다. 해외를 배경으로 하거나 등장인물의 국적을 불분명하게 처리하는 서사의 경향 또한 팬데믹 이후 경직된 국제사회에 대한 반응이라 짐작할 수 있다. 질병의 양상이 비단 신체적인 것만 아니라 정서적인 증상까지 포함하고 있었음을 주목할 때 이런 경향이 더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두터운 당사자성과 핍진성이 감지되는 작품이 많았다. 아쉬움은 사건과 인물의 생생함을 서사적 완결성으로 운반하지 못하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심 작품 수준이 고르게 높지만 본심에서 다시 논의하고 싶은 작품은 손꼽기 어려웠다고 심사자들이 입을 모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 왜 소설인가라는 질문이 이 맥락에서 대두되기도 했다. 뜻밖에도 근본적인 이 화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소설을 읽고 쓰려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소설이라 부르는가.

본심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새는 혼자 날지 않는다’, ‘아름답지 못한 우리를 위하여’, ‘멜라닌’ 등이다. 한쪽 발을 잃은 괭이갈매기의 조감으로부터 100톤 규모 선박 침몰 사고의 진상에 다가서는 분투까지를 그린 ‘새는 혼자 날지 않는다’는 진중하고 묵직한 서사로 주목받았다. 서사의 안과 밖을 연동하는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정확히 대면하고자 하는 자세가 단단하고 미더웠으되, 원형이 되는 사건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인상도 남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부분은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처럼 보이는 지점에서 도리어 결말이 지어졌다는 점인데, 부족한 것은 역량이 아니라 시간이었으리라 믿는다. 좀 더 멀리에서, 단단하게 이야기를 매듭지어 주셨으면 한다.

‘아름답지 못한 우리를 위하여’는 1991년도 연쇄 분신 정국에 타임 슬립 코드를 더했다. 운동권 출신이라 간첩몰이를 당하는 학원강사 어머니와 함께 지방으로 피신한 남매가 이미 20여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청년과 만난다. 우리 모두가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한 현대사를 향하는 시선에 신뢰가 갔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짊어진 인물의 몰개성에 아쉬움이 남았다. 고증에 치중하여 후일담 문학을 재생산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 간의 대면을 성사시킨 기획으로 보여 무척 좋았다는 평가, 결정적인 부분에서의 고증이 다소 아쉬웠다는 상반된 감상이 공존했음을 전한다. 완성도가 높고 매력이 충분한 이야기이므로 어디에서든 이 작품을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멜라닌’에는 본심 초반부터 심사자 전원의 지지가 쏟아졌다. 뜯어보면 이번 심사 작품들의 여러 경향성을 두루 지닌 작품이다. 파란 피부색을 타고나는 가상의 질환, 한국-베트남 혼혈로 태어난 주인공이 미국 이민을 통해 경험하는 디아스포라적 사건들, 미국 대통령 취임과 한국 대통령 탄핵 등 동시대 사건 언급을 통한 역사성 반영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독자가 이미 많이 보았고 익히 안다 여겨 온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 이야기의 힘은 어디에서 솟는가. 여러 소수자성의 교집합이면서 그것만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한 인물, 제이의 생명력이 그 원천일 것이다. 파란 피부의 존재를 제외하면 ‘멜라닌’의 세계는 이곳과 완전히 같다. 선의는 배반당하고, 영원하길 바라는 관계일수록 먼저 처참해지며, 약하디약한 나를 도무지 가리지 못해 끝없이 상처 입는 잔혹한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량해지려는, 사랑을 멈추지 않으려 하는 존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인간이라서 비관하고 인간이라서 낙관하는 나날들 가운데 소년이 자란다. 소년은 자라고 만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이번만큼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도 힘을 나눠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왜 소설인가라는 화두를 다시 입에 올려본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계속해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이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결과이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김금희 김숨 박서련 서영인 양경언 이기호 편혜영(대표집필 박서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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