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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커머스(중국 e커머스) 공습’에 정부가 섣부른 대책을 내놨다가 혼란만 부추겼다. 19일 장난감ㆍ전자제품 등 일부 품목의 해외 직접구매(직구) 사전 차단 방침을 ‘철회’하면서다. 국가통합인증마크(KC)가 없는 80개 품목의 직구를 금지하겠다고 밝힌 지 단 사흘 만이다. 결국 정부는 발암물질 등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대해서만 직구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2차장이 1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직구 금지” 사흘 만에 뒤집어
19일 이정원 국무조정실 2차장은 해외 직구 대책 관련 브리핑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혼선을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며 “80개 품목의 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ㆍ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김상모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은 “KC 인증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므로 앞으로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KC 인증은 국내 안전 인증으로, 직구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정식으로 판매하는 제품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

정부는 지난 16일 발표 때만 해도 어린이ㆍ전기ㆍ생활용품 등에 대해 “KC 인증을 받지 않은 경우 직구를 금지한다”고 했다. 사흘 만에 다시 브리핑을 열고 “혼선이 있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당초 정부는 KC 인증을 받지 않은 일부 품목의 직구 금지를 법제화하려고 했다. 이 같은 방침을 원점 검토한다. 다음 달 이후 위해성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직구 차단 방침을 폐지할지, 일부 품목에 대한 직구 금지를 다시 추진할지 논의한다. KC 인증이 아닌 다른 기준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맘카페 등서 “현대판 쇄국정책” 비판
정부가 물러난 건 소비자 반발에다 규제 실효성 논란까지 일면서다. 16일 정부 발표 이후 주말 내내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어린이 제품과 관련해 맘카페를 중심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달아올랐다. 한 네이버 맘카페엔 “옷은 뭐가 위험한 거냐”, “흥선대원군도 아니고 멋대로 외국 물건 (직구를) 닫아버리는 게 어딨느냐”와 같은 게시물이 이틀 새 수십건씩 올라왔다.

지난 16일 정부의 해외 직구 관련 발표 이후 네이버 맘카페엔 “직구 금지라니 흥선대원군도 아니고” 등의 게시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네이버카페 캡처

앞서 정부가 발표한 미인증 직구 금지 품목엔 전선ㆍ케이블 등 전자제품도 포함됐던 만큼 전자기기 마니아층이나 피겨ㆍ비비탄총을 수집하는 ‘키덜트족’까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싸게 살 수 있는 부품을 국내에서 몇 배 비싸게 사게 됐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정치권에서도 날 선 비판이 나왔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개인 해외 직구 시 KC 인증 의무화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며 “과도한 규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 안전 문제, 역차별 논란 여전
당초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초저가 중국산 제품이 밀려들며 국내 유통업체는 물론 중소 제조업체들까지 타격을 받으면서다. 국내 유통업체와의 역차별 논란도 불거졌다. 현행법상 국내 업체는 중국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려면 KC 인증을 받아야만 한다. 인증에 품목당 수십~수백만 원이 들다 보니 KC 인증이 필요 없는 직구 상품과 가격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왔다. 제품의 안전 문제, 가품의 범람, 개인 정보 유출 우려도 날이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정부가 설익은 대책을 꺼내놨다가 바로 접으면서, 새로운 논란이 이어질 예정이다. 당초 정부는 “국민 안전이 심각하게 침해된다”며 규제 이유를 밝혔는데 결국 위해성 물질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것 외엔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위해성이 검증되면 직구를 차단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지금도 하는 조치다. 이미 위해 상품을 구매한 피해자가 나온 이후에야 대응이 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기존에 하던 것보다 모니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다. 위해성 검사는 계속하고 있긴 했다”며 “안전 문제가 발견된 제품은 해당 제품에 대해 직구를 금지하는 것이고, 그 제품 관련 품목 전체를 금지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위해성 발견 때 차단하는 조치 외에 추가로 직구 안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KC 인증 사태로 논란을 겪은 상황에서 추가 대책을 내놓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정부 정책 신뢰 잃어…업계선 “실효성 없어”
정부가 고민 없이 대책을 내놔 정책 신뢰도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또 당초 계획대로 KC 미인증 직구 금지를 법제화한다고 해도 통관 단계에서 이를 걸러내긴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어린이용 섬유제품(의류)의 미인증 직구를 금지했을 때 제품이 수천개가 넘는데 인증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실효성은 떨어지는데 논란만 자초한 모양새다.

업계에선 모니터링을 통해 위해성이 드러난 이후 대처하겠다는 데에 의문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80개 품목에 대해 위해성 조사를 하겠다는 것인데 같은 제품이어도 생산 일자나 모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가령 중국에서 어린이용 손 선풍기가 들어온다고 하면 일부는 브랜드가 명확하지 않기도 하고, 모델이 제각각인데 정부가 수시로 검사해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커머스 업체 임원 역시 “해외 직구가 매일 수십만 건씩 일어나는데 정부가 전체 직구 제품을 일일이 검수할 수 있겠나”라며 “위해성이 확인돼도 제조사가 중국 업체라면 처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더구나 대책을 알린 지 3일 만에 내용을 바꾼 것은 고민 없이 졸속으로 했다는 방증 아니겠냐”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윤태 온라인쇼핑협회 부회장은 “해외 업체들은 규제에서 빠져나가고, 국내 시장이 위축되는 결과만 초래할까 걱정하는 업계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경쟁력 강화가 우선”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업계를 중국산 저가 공세로부터 지키기 위해선 국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실효성 떨어지는 규제를 추가하기보다는, 정부가 풀기로 약속했던 대형마트 새벽 배송 규제를 완화하고, 유통 산업 지원책 마련 등으로 C커머스 공습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는 국내 유통업계를 고려했을 텐데 이를 위해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건 반발만 살 뿐”이라며 “국내 유통업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정공법이다. 중국 외에 상품을 들여올 수 있는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유통 효율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산 제품의 안전 문제 자체도 간과할 수 없다”며 “KC 인증이 아니라 국제적인 표준을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직구를 금지하거나 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정부가 처음에 제시한 KC 인증은 국내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중국 반발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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