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박민규 선임기자


배우자의 불륜을 입증하기 위해 불법으로 녹음한 통화 파일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형사재판뿐 아니라 민사·가사재판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취지가 담겼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씨가 전 남편의 연인이던 B씨를 상대로 낸 위자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B씨는 A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지난달 16일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와 전 남편 C씨는 2011년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였다. 의사인 C씨는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B씨와 2019년부터 사귀었다. A씨는 이 사실을 알았으나 곧바로 이혼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이후 2020년에는 A씨도 외도한 사실이 C씨에게 들켰고, 이들은 2021년 협의 이혼했다.

그런데 A씨는 2022년 “B씨와 C씨의 부정행위로 혼인 파탄에 이르렀다”며 B씨를 상대로 위자료 3300만원 지급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A씨는 C씨의 휴대전화에 자신이 몰래 설치한 ‘스파이앱’의 통화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해당 파일에는 B씨와 C씨의 대화가 녹음돼있었다. 그러자 B씨는 재판에서 A씨가 낸 통화녹음 파일이 ‘위법수집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A씨가 낸 통화녹음 파일을 증거로 채택했다. “민사소송법상 가사소송 절차에서는 형사소송법에 따른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1, 2심은 “상대방 동의 없이 증거를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증거 채택 여부는 법원 재량에 속한다”고 했다. 형사재판에서는 ‘불법 녹음’으로 인정되지만 민사·가사재판에서는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B씨가 A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을 근거로 “제3자인 A씨가 B씨와 C씨 사이의 대화를 녹음했으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 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고,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제3자가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녹음하면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민사·가사사건 재판에서는 형사사건과 달리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아니더라도 일단 증거로 채택해 왔다. 형사사건은 피고인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엄격히 판단해야 하지만, 민사·가사사건은 당사자들 간의 소송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는 민사·가사사건에서도 증거의 위법성을 엄격하게 해석하겠다는 대법원 취지가 담겼다. 앞서 대법원은 2021년에도 “동의를 받지 않고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나머지 증거들을 토대로 B씨와 C씨의 부정행위는 인정된다고 보고 B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9124 ‘그림자 부채’ 쌓이는 SK… “합병? 차라리 SK온 매각이 정공법” [biz-focus] 랭크뉴스 2024.06.20
19123 우리가 알던 장마 아니다…갑자기 폭우 '도깨비 장마' 온다 랭크뉴스 2024.06.20
19122 검찰, 도이치 주가조작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도 수사대상" 랭크뉴스 2024.06.20
19121 사죄 없던 ‘얼차려 사망’ 중대장, 구속영장 청구날 유족에 연락했다 랭크뉴스 2024.06.20
19120 ‘이재명은 민주당의 아버지’… 與 “아바이 수령” 랭크뉴스 2024.06.20
19119 팀 동료에 인종차별 당한 손흥민 "우린 형제…변한 건 없다" 랭크뉴스 2024.06.20
19118 에어컨 이렇게 쓰면 전기료 걱정 뚝…한전이 알려준 꿀팁 랭크뉴스 2024.06.20
19117 난데없이 갑자기 물폭탄…기존 공식 깬 '도깨비 장마' 온다 랭크뉴스 2024.06.20
19116 ‘이재명 수사’ 검사 4명 탄핵 추진… 소추안 작성 시작 랭크뉴스 2024.06.20
19115 역삼동 아이파크 화재 3시간 만 완진…11개월 영아 등 3명 병원행 랭크뉴스 2024.06.20
19114 민주, '이재명 수사' 검사들 탄핵 추진…"李기소는 공권력 남용" 랭크뉴스 2024.06.20
19113 중산층 대상 '벌칙'된 상속세…납세자 3년 새 2배 폭증 랭크뉴스 2024.06.20
19112 “사과 왜 안 받아줘?” 중대장, 훈련병 부모에 만남 강요 랭크뉴스 2024.06.20
19111 전기차 끝판왕 '네오룬'· 캐스퍼 일렉트릭 베일 벗는다 랭크뉴스 2024.06.20
19110 [단독] 이태원 참사 특조위원장에 송기춘 교수…야당 몫 4명 확정 랭크뉴스 2024.06.20
19109 "이게 진짜 나오네" GS25가 예고한 신상 김밥 랭크뉴스 2024.06.20
19108 '외제차에 골프모임' 가해자, 20년 늦은 '자필 사과' 랭크뉴스 2024.06.20
19107 ‘억대 연봉’ 직장인데...엔비디아 때문에 일자리 잃을 위기 랭크뉴스 2024.06.20
19106 [단독] 김건희에 300만원치 엿…권익위 “직무 관련 없으면 가능” 랭크뉴스 2024.06.20
19105 “68번 초음파보고 암 놓친 한의사 무죄” 판결에…의료계 발칵 랭크뉴스 202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