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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오정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 경찰관이 폐지수집 노인 수레에 교통안전 반사판을 부착하며 생계형 절도 범죄예방을 하고 있다. 사진 부천오정경찰서
경기 부천 오정구 원종동에 사는 최영귀(79)씨는 지난 2일부터 부천일드림센터 사무실과 강의실 청소를 하는 공공일자리 미화원으로 채용됐다. 새벽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폐지를 주워 팔아 생계에 보태던 그에게 공공 일자리를 소개한 이들은 뜻밖에도 경찰관들이었다. 최씨는 “집에 경찰관들이 찾아와 벌벌 떨었는데 ‘공공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면서 면접을 보게 도와줬다”며 “고맙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최씨는 학교에 가 본 적 없이 10살을 갓 넘겨서부터 9년간 태백 탄광에서 일했다. 이후 전국의 건설 현장을 떠돌다 1980년 부천으로 이사와 두부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잇다 3년 전까지 마포 한신코아 상가 미화원으로 일했다. 상가 미화원 일을 그만둔 뒤엔 손수레를 구해 폐지를 주웠다. 그러다 지난 3월 31일 자택 근처 빌라 1층 현관문 앞에 놓여있던 휴대전화 케이스 택배 상자를 버린 상자인 줄 알고 가져간 혐의(절도)로 입건됐다. 다행히 최씨가 고령인 데다 피해액이 1만원에 불과하다는 이유 등으로 처벌을 피했다.

폐지수집 노인들이 빈병, 신문 뭉치, 고기 불판 등에 손을 댔다가 절도,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입건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경찰은 부천시와 협의해 이들에게 공공 일자리를 연계하기로 했다. 지난 상반기 피해액이 크지 않고 초범인 고령 절도범 53명 중 11명이 생계형으로 분류됐고 2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오정구 원종동에서 폐지 수집을 하던 이명원(64)씨도 8월까지 부천일드림센터 환경미화원으로 일한다. 서울 문래동 판자촌에서 태어난 이씨는 30대 때 액세서리와 ‘아이스께끼’ 등을 판매하는 자영업을 하다 실패하고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지난 3월 2일 중고 에어컨 매장 앞 통로에 있던 실외기를 가져다 고물상에 팔았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이씨의 절도 혐의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씨는 “실외기가 며칠째 방치돼있는 것처럼 보이길래 주워다 3000원 받고 고물상에 팔았다. 내가 잘못한 게 맞다”며 “일드림센터 공공 근로 급여를 받으면 7만원, 8만원씩 매장 주인에게 변상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경기 부천시 중동 부천일드림센터 1권역 공공 일자리 환경미화원으로 취업한 폐지수집 노인 최영귀(69)씨가 수레를 끌고 분리수거를 하러 가고 있다. 최씨는 하루 5시간 센터의 컴퓨터 강의실 청소, 사무실 청소를 한다. 손성배 기자
최씨와 이씨가 온종일 폐지, 고철을 주워 팔아 손에 쥐었다는 돈은 하루에 3000~5000원이었다. 공공일자리 급여는 주 5일 일일 5시간, 주휴수당을 포함해 약 100만원이라고 한다. 이씨는 “이번 공공 일자리는 8월 말까지여서 아쉽지만 혼자 월세 20만원 내고 생계를 꾸리는 데 부족함 없는 금액”이라며 “폐지 줍는 것 말고도 벌이를 할 방법을 알았으니 8월 이후에도 일할 수 있도록 부천시 공공 일자리에 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폐지를 수집하다 절도 피의자가 된 생계형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연계하기로 한 까닭은 처벌할 경우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대상자가 더 큰 생계 곤란 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령층 절도 범죄가 꾸준히 증가 추세(경찰청 범죄통계 2019년 1만 586건→2022년 2만 1623건)인 만큼 재범을 방지하려면 형사 처분이 아니라 지자체와 함께 사회복지 측면으로 접근해 ‘노인 장발장’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오정서 관계자는 “주인이 있는 고물을 주워 갔다가 입건되는 생계형 노인 절도 사건이 관내에서 올해 1분기에만 53건 있었다“며 “폐지수집 노인들이 매일 찾는 고물상을 중심으로 범죄 예방 캠페인을 하다 생계 곤란을 해소하는 지자체 공공 일자리 연계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해 부천시 일자리정책과 도움으로 인지, 신체 능력이 괜찮은 대상자들에게 공공 일자리를 연계해드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국의 폐지수집 노인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 4만 2000명으로 추산됐다. 복지부 실태 조사를 기반으로 전국 지자체는 올해부터 폐지수집 노인 전수조사를 통해 개별 생활 실태와 근로·복지 욕구 등을 확인하고 있다. 부천시 관계자는 “생계형 절도 피의자가 된 폐지수집 노인에게 공공 일자리를 연계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도 관내 경찰서가 공공 일자리 협조를 요청할 경우 조건에 맞는다면 적극적으로 응하겠다”고 했다.
부천오정경찰서 신광열 범죄예방계장이 에어컨 실외기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명원(64)씨에게 폐지수집 노인 안전사고 예방 체크리스트를 보여주며 공공 일자리 연계를 제안하고 있다. 사진 부천오정경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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