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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재 튀링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가 16일 서울 종로구 아트리움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24년 한국은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많은 이주노동자가 찾아오는 ‘이주목적국’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언젠가 한국을 떠나야 할 사람, 즉 ‘손님’으로 여긴다. 이주노동자들은 체류 기간과 일터 이동 등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다.

1960~1970년대 독일에 파송됐던 한인 간호사·광부도 외화를 벌어 고국의 가족을 부양한 ‘이주노동자’였다. 독일 정부 역시 이들을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들로 여겼다. 그들도 독일 정부를 향해 “필요할 때 데려와 놓고 이제 버리려 하냐”고 외치며 독일 체류권을 얻기 위해 싸웠다.

파독 간호사·광부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지원 세력이기도 했다. 1974년 독일 유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돼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의 창립 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55명 중 광부가 13명, 간호사가 8명이었다.

민건 50주년을 맞아 1세대 민건 회원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이유재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를 지난 16일 만났다. 그는 튀빙겐대 한국학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이 교수의 아버지는 1977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파송된 광부 그룹 중 한명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건너가 성장한 그는 한인의 노동 이주 및 독일 사회 정착 역사를 연구해 왔다. 그는 ‘코리엔테이션’(이주민과 다수 사회 간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와 함께 한국, 동양이라는 발음도 포함)으로 불리는 아시아계 이민 2세 인권 운동 단체도 이끌고 있다. 이 교수는 “유학생, 파독 노동자의 민건 활동은 해외에 거주하는 소수자로서 한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더 나아가 시민권이 없는 독일에서 정치 활동의 정당성을 찾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 독일이 채택한 ‘손님 노동자’ 중심 이주 정책의 폐해로 독일 사회는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한국에서도 유사한 폐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과거 독일은 이주노동자들을 ‘손님’으로 받아 3년 체류 후 귀국하도록 했다. 그들의 빈 자리는 새 이주노동자가 채우도록 했다. 이주노동자가 독일에 정착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의도였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인 고용허가제 역시 유사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 파송된 간호사, 광부들이 독일 체류권을 위해 싸워야 했다면서 오늘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겪는 현실과 유사하다고 봤다. 1977년 5월 서독 정부는 손님 노동자로 온 간호사들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한국으로 송환한다고 발표했다. 한인 간호사들은 “필요할 때 데려와 놓고 이제 버리려 하냐. 우리도 인간이다”고 외치며 반발했다. 두 달쯤 뒤 서독 정부는 서독에서 5년 이상 일한 사람은 무기한 체류권을, 8년 이상 일한 사람은 영주권을 준다고 발표했다.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3년 순환’ 시스템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979년 파독 광부들은 이 시스템 때문에 광부들의 인권과 직업·거주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광부들을 ‘서독 광산 한인 광부 임시고용을 위한 프로그램’을 폐지하라고도 주장했다. 이 프로그램은 파독 광부의 체류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사업장 이동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듬해인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 독일 제1공영방송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에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서독 정부는 “한국 정치 상황의 변동에 근거해” 무기한 체류권과 노동 허가를 내주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독일이 수십 년간 이주노동자를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로 보면서 이민 1~2세대가 독일 사회에 통합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이민 1~2세대는 각자의 공동체 안에만 머무르는 경향이 강했다. 이로 인해 이민 2세대인데도 대학 진학률이 낮았고, 독일 중산층으로 진입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도 고용허가제 같은 빛바랜 손님 노동자 시스템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이민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역사에서 볼 때 사회가 이주민에게 문을 열고,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을 환영하고,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추후 많은 사회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서 제시한 돌봄서비스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제외 방안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고, 어린이 수당을 더 주는 등 국가적 책임을 늘려야 할 영역에서 이주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 조건이 한국 사람보다 덜하다고 볼 수 없는데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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