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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정신병적 증상 동반 우울증

환각·망상 등 정신병적 증상…우울증 환자 5.3%가 겪어
영양 섭취 불충분할 때도 위험…환청 약물 재발 방지 중요
게티이미지뱅크

미영(가명)씨는 20대 후반의 비혼 여성으로 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행정업무를 챙기는 일이 주 업무입니다. 항상 밝고 성실한 태도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교 근처 원룸에서 자취하는데 엄마가 와서 반찬이며 살림을 챙겨줍니다. 주위에서 미영씨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려 하지만 미영씨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엄마도 혼자 사는 미영씨가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영씨에게 고민이 있다는 것을 엄마도 잘 알고 있습니다. 미영씨는 대학교 3학년 이후로 현재까지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소리

미영씨는 대학교 3학년 때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같은 과 남학생이었는데 흰색 카디건이 잘 어울리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자친구의 음성을 들으면 가슴이 뛰고 마음이 편했습니다. 1년 넘게 만났지만 결국 헤어졌습니다. 미영씨는 무척 상심이 컸고 학교를 가지 못할 정도로 우울감에 휩싸이고 의욕이 떨어졌습니다. 간신히 학교에 가면 자신이 실연한 것에 대해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있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부르는데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방 밖으로 나왔지만 부모님은 직장에 나가셨고 동생은 학교에 가서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텔레비전·라디오도 모두 꺼져 있었습니다. 미영씨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누구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미영아, 식사해야지. 그렇게 밥을 굶으면 안 돼”라는 소리가 또 들려왔습니다. 미영씨는 “알았어요”라고 답을 하고는 밥을 차렸습니다.

집에 온 엄마는 미영씨가 밥을 차리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장면을 봤습니다. 놀란 엄마는 “미영아 정신 차려, 왜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미영씨는 자신이 허공에 대고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상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미영씨를 데리고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미영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으로 진단받게 됐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된 것이었습니다. 정신병적 증상은 환청·환시 등의 환각 증상과,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사실이 아닌 것을 믿는 망상 등의 증상을 보입니다. 미영씨가 경험한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소리가 만들어지는 ‘환청’이었습니다. 우울증에서 정신병적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는 5.3%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일반 우울증에 비해 죽고 싶다는 생각에 몰두하는 경우가 더 많고 판단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미영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다니며 약물과 상담 치료를 꾸준히 받았습니다. 치료 시작 한달 뒤부터는 우울증도 회복되고 환청도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복학을 했고 이제 더 이상 실연으로 인한 우울감은 없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뒤에는 내성적인 편이지만 성실한 성격이라 직장 동료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미영씨는 예방을 위해 지금까지 매일 한알씩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습니다. 미영씨가 과거에 우울증이 심할 때 나타났던 환청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는 항정신병약입니다. 미영씨가 이 약을 중단하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약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조금 멍해지는 느낌도 받습니다. 하지만 약을 유지하면 전혀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습니다. 미영씨는 약의 도움 없이 본인 의지로 환청을 극복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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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청 치료 ‘하루 한알’ 끊어볼까?

우울증에서 보이는 환청은 ‘이명’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명은 귀에서 삐 소리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주로 난청이 있는 귀에서 들리고 좌우 차이가 있습니다. 환청은 양쪽 귀에서 비슷하게 들리고 사람의 목소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우울증보다는 분만 뒤 발생하는 산후 우울증, 감정 기복을 동반하는 양극성 우울증, 약물이나 뇌 손상에 의해 유발되는 우울증에서 환청이 들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환청을 경험한 우울증의 경우에는 일반 우울증보다 재발 방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 혼자 있어서 감각 박탈이 되는 경우나 식사를 오래 안 해서 영양 공급이 불충분할 때에도 우울증에서 정신병적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을 경험한 분들은 집에만 있지 말고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영양 상태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과 자신의 상태에 대해 자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영씨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이 자녀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이 병은 유전되는 질환이 아닙니다. 미영씨는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이 아기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영씨가 복용하는 약은 임신 중에 먹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다만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 약이 유즙을 통해 전달될 수 있으므로 약을 복용하는 동안엔 아기가 분유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미영씨가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보려는 생각은 존중돼야 합니다. 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을 가진 우울증을 경험한 경우에는 이 병이 다시 생기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소량의 약이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면 환자 자신은 현실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상상의 소리인지 혼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자신의 처지나 상황과 맞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미영씨는 이제 새로운 연인을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치 고혈압이나 당뇨를 치료하고 관리하듯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도 담당 의사와 관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병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영씨처럼 자신이 가진 병을 부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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