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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의 드라마로 보는 세상] MBC ‘수사반장 1958’
‘수사반장 1958’에서 이제훈이 연기하는 젊은 시절의 박영한 형사. 문화방송 제공


평화적 정권 교체는 정부 수립 이후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숙원이었다. 1997년 12월 실시된 15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비로소 달성할 수 있었다. 이후 민주적 절차에 따라 몇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했고, 대통령 탄핵 기각과 인용이라는 정치적 격랑에 휘말리기도 했다. 모든 것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주권자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정권 교체로 세상이 반드시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수사반장 1958’(MBC)의 형사들은 권력형 범죄 용의자를 검거할 때마다 “세상이 변했다는데 힘없는 사람만 나자빠지는 건 똑같네”라고 탄식한다. 자유당 정권의 실정을 비판했던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 구호가 “못 살겠다 바꿔보자”로 변형되어 22대 국회의원 선거 현장에서 울려 퍼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시대를 거슬러 다시 등장한 선거 구호의 목적어가 무엇인지는 유권자마다 달랐을 것이다. 다만,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라는 정부 국정 철학이 무색해진 것은 분명하다.

한국 수사드라마의 원조 ‘수사반장’(MBC)에서 박영한(최불암) 반장을 중심으로 범죄 현장을 누볐던 형사들은 1970~1980년대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는 범죄 사건을 해결하고, 힘없고 약한 서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고뇌한 덕분이다. 경찰이 기득권과 결탁해서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고, 정권의 주구 노릇까지 서슴지 않았던 시절에 ‘수사반장’ 형사들의 공정한 수사에 위로받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편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면서 쌓은 신뢰가 박영한 반장팀의 인기 요인이었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에서 공권력을 신뢰하는 상황이 서글프기도 했다.

‘수사반장 1958’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수사반장’에서 최불암이 맡았던 박영한 반장. 프로그램 갈무리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흘렀고 몇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런데 공권력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이어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이 방증하듯이 불신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진 듯하다. 이 지점에서 ‘수사반장 1958’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권력이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토양에서 싹을 틔운 것으로 상상한다. 1958년을 기점으로 형사들이 의기투합하게 되는 과정은 ‘수사반장’ 형사들에게 부패한 공권력에 저항한 서민 영웅의 서사를 부여한다. 이들을 통해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5·16쿠데타로 군사정부가 들어서도 친일파는 잡초처럼 여전히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문제가 있는 현실을 폭로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할 수 있는 시대극의 묘미다.

‘수사반장 1958’에서 정치깡패의 회합을 지원하려고 은행강도 수사를 방해하던 종남서장 최달식(오용)은 치안국 부국장으로 영전했지만, 끝내 부정부패범으로 혁명검찰부에 체포된다.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을 강조하며 일본에 아이들을 팔아넘겼던 친일파는 해방 이후 보육원을 설립해 또다시 영아 납치와 살해 등의 범죄를 저지르며 사익을 챙긴다. 결국 박영한 형사에게 덜미를 잡혀 검거된다. 모두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사건 해결이다.

‘수사반장 1958’은 1960년대 발생했던 범죄 사건을 통해 2024년 현재를 환기하게 한다. 옥수숫가루에 톱밥을 섞어 판매하던 사기 범죄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원산지 표시 위반 사건과 비슷하다. 사이코패스와 촉법소년 범죄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가 하면 1962년에 발생한 사상 최대의 증권 파동 사건은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주가 조작 사건과 닮은 권력형 경제 범죄다. 심지어 군 출신 경제통이 중앙정보부의 비호 아래 주가 조작을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받은 것조차, 권력 앞에서 사법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과 유사하다.


“주가 조작 원흉에게 주가 조작 사건 수사를 맡기는 건,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통째로 맡기는 꼴”이라는 박영한 형사의 울분이 60여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한 현실이 기가 막힐 뿐이다. “욕을 처먹을 행동을 했으면, 의장 각하라도 욕을 처먹어야지”라는 박영한 형사의 일갈을 공권력의 신뢰 회복에 필요한 마중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절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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