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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인간은 죽음, 고독, 허무, 불안 등에 묶인 존재다. 무엇보다 인간을 죄고 있는 사슬은 '시간'이다.

인간 앞엔 펼쳐진 무한한 시간은 인간을 한없이 작게 만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시간을 이기기 위해 인류가 만든 것이 시계와 달력이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인간은 시간을 '측정'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태동할 무렵, 기도서로 그려진 일련의 그림이 달력과 관계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프랑스 랭부르 형제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스러운 기도서'(1412~16)다. 총 206쪽의 최고급 양피지에 수십 장 삽화가 아름답고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데, 12달 달력 그림은 기도서의 백미다.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스러운 기도서' 중 5월
프랑스 콩데 미술관 소장


위쪽에 반원형 천체 그림을 그렸고, 아래엔 귀족과 평민 일상을 담았다. 특히 농부들 노동 현장 모습은 귀한 풍속자료다.

비록 기도서지만, 땅에 속한 사람들 생활상을 계절과 연관 지어 호화롭게 만들었다는 점은 신이 지배하는 '무한의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4계절과 12달로 구분했지만, 인간은 시간을 이길 수 없다. 1540년께 아뇰로 브론치노(1503~72)가 그린 '미와 사랑의 알레고리'는 시간에 대한 치명적인 은유다.

'사랑의 알레고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비너스와 큐피드는 사랑을 상징한다. 꽃을 던지려는 천사는 '쾌락'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천사 뒤 인형 같은 얼굴은 '기만', 왼쪽 위 노파는 '망각', 큐피드 뒤 괴로워하는 이는 '질투'를 상징한다고 한다.

문제는 오른쪽 위 노인이다. 푸른 장막으로 이들을 덮으려는 노인은 모래시계를 등에 지고 있다. '시간'이다.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불가항력 존재다.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의 작품 중 가장 난해한 그림 역시 '시간'에 관한 것이다.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1636)이다.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
런던 월리스 컬렉션 소장


강강술래 하듯이 춤추는 4명은 원의 속성처럼 순환하는 의인화된 4계절이다. 각 계절은 '빈곤', '부', '노동', '쾌락'이라는 세속적 가치와 연결된다.

푸생도 인간이 넘어서기 어려운 '시간'을 그렸다. 아이가 갖고 노는 모래시계와 비눗방울은 덧없음을 상징하며, 오른쪽에 날개를 달고 리라를 연주하는 노인은 '시간의 신' 크로노스다.

연주가 끝나면 시간은 멈추게 된다! 하늘에 등장한 아폴로 전차는 연주를 마친 뒤 이들을 거두기 위해 오는 것일까?

시간은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그럴수록 휘발되고 만다. 계절과 달력에 의한 구분은 작은 위로일 뿐이며, 허상에 불과하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살바도르 달리(1904~1989) 대표작, '기억의 지속'(1931)에서 그린 녹아 흐물거리는 시계는 시간에 지배받는 인간 한계에 대한 함의다.

'기억의 지속'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가 '소설의 이론'에 남긴 명문장이 잠시나마 시간을 잊게 하며 위안을 준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하늘과 별빛은 없다. 뱅크시는 대신 풍선을 그렸다. 손에서 놓친 풍선을 잡는 일이 시간과 꿈을 찾는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지?

하지만 이 그림은 2018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과 동시에 자동 파쇄됐다. 파쇄를 기획한 뱅크시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다. "시간처럼 날아간 풍선은 영영 잡을 수 없는 것이지"

'소녀와 풍선'. 경매 낙찰 동시 자동 파쇄되는 장면.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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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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