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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망 사건 피의자. 사진 JTBC 캡처


뒤늦은 검·경…유족 “하루하루 생지옥”
경남 거제에서 데이트 폭력(교제폭력)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넘게 지나서야 수사기관이 피의자 구속 절차에 들어갔다. ‘폭행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1차 부검 소견이 정밀 부검 결과 뒤집히면서다. 당초 ‘사안이 긴급하지 않다’며 경찰이 긴급 체포한 가해 남성 A씨(20)을 풀어줬던 검찰은 뒤늦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스토킹으로 보기 어렵다’던 경찰도 유족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A씨를 고소하자 수사에 돌입, 해당 혐의도 적용하기로 했다.

이러는 동안 “지금도 방 안에서 ‘아빠’라고 부르며 나올 것 같다”는 유가족은 억울한 마음에 장례 절차도 멈췄다. 입관까지 했던 20살 딸 시신은 아직도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 아빠(50대)는 1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최종 부검 결과에서도 ‘폭행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고 나오면 다시 부검을 요청하려 했다”며 “그런데 너무 오래되다 보니 시신이 조금씩 부패하고 있다. 그걸 보는 게 제일 마음 아프다”고 했다. 엄마(40대)는 “하루하루 생지옥이다. 풀려난 가해자는 (지인에게)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좋은 여자 만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이번에 구속이 안 되면 장례도 다시 미룰 것”이라고 했다.



“엄마 빨리 와줘”…1시간 가까이 폭행
사건은 46일 전인 지난달 1일 발생했다. 검찰·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8시쯤 전 여자친구 B씨(20)가 사는 경남 거제의 한 원룸에 무단 침입했다. 전날(3월 31일) 자신의 만남 요구를 거절하는 B씨와 전화로 다툰 뒤 술을 마시고 집을 찾아간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A씨는 누워 있던 B씨의 머리와 얼굴 등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졸랐다. 폭행은 1시간가량 이어졌다고 한다.

“빨리 와줘”라는 딸의 전화를 받은 엄마가 원룸을 찾은 뒤에야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B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뇌출혈) 등 전치 6주 상해를 입었다. 입원 당시 B씨는 경찰에 자필로 서면 진술을 하며 피해 사실을 알렸다. A씨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 입원 치료 중 고열과 함께 갑자기 상태가 악화한 B씨는 같은 달 10일 오후 10시20분쯤 숨을 거뒀다.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망 사건 가해자(왼쪽)와 피해자. 사진 JTBC 캡처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망 사건이 있기 전, 피해자 모습. 사진 JTBC 캡처


가해 남성 8시간 만에 풀어준 검찰
경찰은 B씨가 사망하자 다음 날(11일) 오전 1시20분쯤 상해치사 등 혐의로 A씨를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검찰이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체포된 지 약 8시간 만에 석방됐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A씨가 상해 사실을 인정했고, 체포 당시 경찰에 자신의 위치를 밝히고, 응한 점 등에 비춰 긴급체포의 법률상 요건인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불승인했다”고 설명했다.

통영지청은 “피해자 부검도 하기 전에 긴급 체포한 것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실제 A씨가 풀려난 뒤인 12일 국과수는 B씨의 사망 원인이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기능 저하 또는 상실)’이란 1차 구두 소견을 냈다. 폭행에 의한 뇌 출혈량이 극소량이어서 사망 원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피해 여성 사망 35일 만에 구속영장 청구
유족은 “(구두 소견을 들었을 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지병도 없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긴급체포 불승인 관련) 부검을 해보기 전까진 잡아두는 게 맞지 않았나, 황당했다. 법을 모르면 이렇게 당하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 딸은 죽고 없는데, (가해자는) ‘더 좋은 여자 만날 것’이라며 돌아다니는 게 우리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상처였다”고 했다.

그러던 검찰은 지난 15일 상해치사 등 혐의로 A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B씨가 숨진 지 35일 만이다. 전날(14일) “머리 손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국과수 정밀 부검 결과가 나오면서다. 통영지청은 “범행이 중대한 점, 도주 우려 등 구속 필요성이 인정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서둘러 알렸다.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망 사건 피해자. 사진 JTBC 사건반장 캡처


잦은 폭행 있었지만…피해자 “경찰도 못 믿어”
경찰 대응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수사기관과 유족 등에 따르면 고교 때부터 연애한 A·B씨 사이에서는 이 사건 발생 전부터 폭행이 잦았다. 고등학교 3학년 말이던 2022년 12월부터 대입 뒤인 지난해 10월까지 경찰에 신고된 것만 11건이다. 당사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이 대부분 종결됐다. 폭행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앞선 신고에는 A씨가 폭행하자 B씨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때린 ‘쌍방폭행’도 여러 건 포함됐다. 유족은 “딸은 경찰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서 불렀는데, ‘남자도 맞았네’ 이렇게 되는 거다. 키 180㎝ 정도 되는 가해자와 165㎝의 딸이 맞붙을 상대가 안 되지 않냐”며 “이러니 딸도 주변에 ‘경찰도 못 믿어’, ‘소용없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정폭력·아동학대·스토킹 사건은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경찰이 접근금지·격리조치 등 보호조치를 할 수 있는데, 폭행죄에 해당하는 일명 ‘교제폭력’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스토킹 안 된다’던 경찰…스토킹 혐의 적용
경찰이 사전에 스토킹 여부를 판단하지 못한 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경찰은 A·B씨가 이별과 만남이 반복돼왔던 점 등에서 스토킹처벌법상 ‘상대방 의사에 반(反)해서’ 벌어진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유족·지인 등에 따르면 헤어진 상황에서도 종종 A씨에게 전화로 ‘문 열어라’, ‘집 앞이다’라며 불안하게 했다고 한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피해자가 전화번호를 바꿔도 주변 지인을 통해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 등 여러 매체로 계속 접촉하는 전형적인 스토킹범죄라고 본다”며 “경찰도 매번 폭행 신고를 단순 종결할 것이 아니라 이를 더 면밀히 살펴봤다면 스토킹을 의심, 대응 조치를 안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근 경찰은 A씨에게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도 뒤늦게 적용하기로 했다. B씨가 숨지고 엿새 뒤 유족이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고소장을 제출, 수사가 진행되면서다. A씨는 사건 발생 전날부터 B씨가 ‘만나고 싶지 않다’며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수차례 전화·메시지 등으로 접촉하고 집까지 찾아간 혐의를 받는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초기 피해자 조사도 어려웠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탓에 가해자-피해자 간 통신 기록을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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