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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3공수여단 하사로 광주에 투입
시위대 교도소로 이송할 때 받은 충격에…
1980년 5·18 당시 3공수여단 하사로 광주에 왔던 김승식씨. 정대하 기자

“겨울엔 그나마 괜찮은디 보리 싹이 나는 4월부터 딱 5월까지만 이상해져부러.”

1980년 5·18 당시 3공수여단 하사로 광주에 투입된 김승식(69·농업)씨는 지난 7일 전남 해남에서 한겨레와 만나 “정신질환자들이 날 궂으면 막 돌아다니고 하잖나. 내 증상이 딱 그렇다”고 했다. “운전대를 잡으면 어딘가를 처박을 거 같고, 방 안에 있으면 답답해서 죽을 거 같아 밖에 나가면 금방 또 들어오고 싶어지고 그래.” 그는 자신의 증상을 ‘오월 보릿병’으로 부른다. 오월 보릿병은 광주교도소 앞에서 생겼다. 5월21일 전남대에 구금하고 있던 시위대를 광주교도소로 이송할 때였다.

“보통 군용 트럭에 태우는 정원이 16명이거든. 근데 그날은 60명 가깝게 구겨넣었어. 그러니까 맞아서 축 늘어진 사람 위에 다른 사람을 쌓고, 또 쌓고. 그런데 안에서 사람 죽겄다고 난리를 치니까 거기다가 최루탄을 까 넣어버리고. 그러니까 질식해서 또 죽고.”

교도소 주변 논에선 보리가 파랗게 자랐을 때였다. 트럭이 광주교도소에 도착하니 4분의 1이 죽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주검이 12구였는데, 독한 최루가스 때문인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세곳에 총상을 입은 주검 한구를 내릴 때 정신이 아득해졌다. “죽은 사람이 피를 많이 쏟았는데, 그때 피비린내와 보리 냄새가 섞여서 콧구멍을 훅 파고들더라고. 그때 그 냄새와 기분, 잊어먹을 수가 없어.”

그는 “보리가 익을 때면 특유의 보리 냄새가 난다. 4월부터 풀이 나기 시작하면 꼭 도둑질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고 했다. 1년 전 ‘심장에 병이 생겼나’ 하고 지레짐작해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그를 정신과로 안내했다. 그때 김씨는 처음으로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알게 됐다.

1980년 5·18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을 마구 때리며 진압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5·18 때문에 삶이 확 틀어져부렀어. 그야말로 ‘인생 파투’가 나분 거여.”

해남이 고향인 김씨는 고교를 졸업한 뒤 가정 형편을 생각해 병역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1976년 공수 부사관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평생을 나라 위해 직업군인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때 5월 광주를 맞았다. 1980년 5월18일 전남대 앞에 투입된 그는 부대원들이 주택가로 도망가는 학생들을 끝까지 쫓아가 박달나무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 뒤엔 민간인 사상자들을 트럭에 싣고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갔다.

진압 작전이 끝난 뒤 부대로 복귀하니 불안 증세가 시작됐다. “광주 생각만 하면 손발이 덜덜 떨리더라고. 그럴 때마다 술을 마셨어.” 불안 증세가 오면 “어, 휘발유가 떨어졌네” 하고선 폭음을 해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주변에선 “멀쩡하던 놈이 광주 갔다 온 뒤 이상하게 됐다”고 수군거렸다. 결국 상관 폭행으로 특수전교육단(현 특수전학교)으로 전보됐다가 특공연대를 거쳐 1985년 군복을 벗었다.

한참을 방황하다 불교에 귀의하려고 출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형제들이 결혼을 권유하자 “군에서 다쳐서 사내구실을 못한다”고 둘러댔다. 술로 보내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집 근처 교회에서 새벽마다 들리는 기도 소리가 견딜 수 없어 불을 질렀다. 이 일로 구속돼 10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누나 소개로 결혼을 하고 식당을 열었으나 실패했다. 가정도 깨졌다.

20여년 전 재혼 뒤 안정을 많이 찾았다. “더 마시면 이혼한다”는 아내 말에 술을 딱 끊었다. 하지만 술을 끊자 4~5월 그를 괴롭히는 ‘오월 보릿병’이 찾아왔다. 혼자 괴로워하다가 정신과에 이어 교회까지 찾아갔던 그는 지금은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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