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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울청사 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연합뉴스


수년 전 중산층 기준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15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중산층 기준이 발단이었다. 당시 보고서는 국내 중산층 기준으로 △본인 소유 102㎡ 아파트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중형급 이상 자동차 소유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등을 제시했다. 소득과 자산에 집중된 국내 기준과 달리 미국과 프랑스 등에선 △1개 이상 외국어 구사 △악기 연주 가능 △사회적 약자 돕기 등이 중산층 기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붙었다. 절대다수 국민들의 삶이 경제적 잣대로만 재단되는 한국 사회의 민낯에 비판과 자성이 쏟아졌다.

해묵은 논란이 떠오른 건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진행한 출산·양육 지원금 방안 설문조사 때문이다. 권익위는 해당 조사에서 '1억 원 지급이 출생에 동기 부여가 되는가'라고 물었다. 앞서 부영그룹이 직원들에게 출산지원금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이를 정부 저출생 정책에 참고하겠다는 취지다. 조사가 시작되자 "경제적 문제로 출산을 망설였던 이들에게 도움 된다" "육아 비용보다 환경 개선이 급선무" 등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1만3,640명)의 62.6%(8,536명)가 동기 부여가 된다고 답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씁쓸했다. 출산과 양육도 돈 문제로 귀결되는 우리의 민낯이 또 드러나서다. 출산과 양육에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1인당 소득 대비 양육비가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해외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출생 후 18세까지 자녀 한 명을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로 세계 1위다. 이를 환산하면 약 3억3,500만 원. 출산과 양육에 따른 여성의 경력단절 등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따지면 치러야 할 대가는 더 커진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1억 원 지급은 출산 동기 부여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1억 원을 준다고 정말 아이를 낳을까. 저출생 주범인 양육비 부담이 왜 높은지를 따져 보면 장담하기 어렵다. 부모라면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러려면 부모가 아이를 직접 돌보고, 넓고 쾌적한 집에 살고,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돈으로 메우기 힘든 양육 부담이 비용 증가라는 부작용만 초래했다.

1억 원을 주면 양육비 부담은 덜어질지 모르지만 양육 부담은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대부분의 부모가 출산·육아 휴직을 마음 편히 쓸 수 없다. 법정 육아 휴직 기간은 자녀당 1년에 불과하다. 1억 원을 받고 일을 관두면 되지 않느냐는, 일을 생계의 수단으로만 치부하는 발상은 접어두자. 부모에게 1억 원을 쥐여준들 살 수 있는 집은 없다. 지난달 기준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4억5,000만 원을 넘는다. 사교육시장은 날로 번성하고 아동학대 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일반 기업과 다르게,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정적 사회구조를 바꿔 출생률을 끌어올리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출생 기준이 부모의 소득이 되는 현실은 끔찍하다. 아이들이 누구나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구조가 갖춰지면 1억 원을 주지 않아도 아이를 낳아 기를 이들은 충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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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금 1억 원 주면 애 낳겠습니까?" 권익위가 물었더니…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42415050001013)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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