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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 침묵'으로 할 말 했다 볼 수 없어
검찰조직 위해선 검사결기 보여야 
원칙과 처사 중시한 선비의 길 걷길
이원석 검찰총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


이원석 검찰총장은 야구 얘기를 좋아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뉴욕 양키스는 유니폼에 선수 이름을 새기지 않는다. 스타 플레이어보다 팀이 우선이고, 어떤 위대한 선수라도 팀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 총장은 이 ‘원팀’과 함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양키스 출신 감독 요기 베라의 말도 즐겨한다. 그가 이번 검찰 인사를 놓고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라고 한 말도 야구로 치면 9회 경기가 남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9월 중순까지 임기 4개월이 남아 있으니 시즌이 끝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원팀 감독으로서 총장 역할은 수사의 외압을 막아주는 일이다. 그런데 총장을 패싱한 이번 인사야말로 치명적 형태의 수사 외압이다.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 지휘부는 교체됐고, 수사에 제동이 걸리는 것도 시간 문제다. 총장이 7초 침묵 뒤 “더 말씀 드리지 않겠다”는 말로 부당함을 시사하고, 수사의지를 다짐한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다. 총장도 대통령 밑이니 법무부 장관의 인사를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외압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총장에게 있다. 더구나 총장도 모르게 이뤄진 인사라면 사의를 종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부끄럼 없이 이런 인사를 하냐 싶은 대목이 한둘이 아닌 인사다. 인사 철도 아닌 때 20, 30년 된 공직자들에게 한나절 반 만에 인사를 통보하고 떠나도록 해, 짐을 정리할 시간도 없게 했다. 얼마나 거칠면 천하의 임은정 부장검사마저 침묵하고 있을까. 이태원 참사 수사에서 김광호 당시 서울청장의 기소의견을 낸 검사장은 결국 옷을 벗었고, 무혐의 의견을 낸 후임 검사장은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박근혜 정권 몰락의 서막은 2015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었다. 당시 제대로 수사했다면 ‘최순실 사태’는 없었다는 탄식이 나왔지만, 문제의 사건을 맡은 부장검사는 이번엔 서울고검장으로 영전했다.

이 총장이 실기한 측면도 없지 않다. 작년 말부터 서울중앙지검의 '김 여사 소환조사 불가피' 문제로 법조계가 떠들썩했다. 2년 수사 끝에 소환한다는 것은 기소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후 송경호 중앙지검장이 내쳐지고 000 검사장이 온다거나, 송 검사장이 술자리에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말이 돌았다. 이번 인사를 보면 당시 모종의 움직임이 진행된 것인데, 이 총장은 사전 조치도 대응도 하지 않았다. 수사팀 의견 관철을 위해 외압에 맞서지도, 보호하지도 못한 것이다.

이 총장이 유능한 특수통 검사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 그가 고민할 지점은 검사가 아닌 총장이란 자리다. 검찰에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면 검찰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고뇌하며, 멀리 보고 큰 행보로 가야 맞다. 과거 총장들은 외압이 닥쳐올 때 직을 던져 조직을 보호하고 검찰의 엄정함을 각인시켰다. DJ정부 때 박순용 검찰총장은 총장은 하루를 해도 총장이라고 했고, 이명재 총장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서 김종빈 총장은, 천정배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처음 발동해 강정구 교수 불구속을 지시하자 이를 수용하고 항의성 사표를 내, 그 남용을 막았다. 이 총장도 검찰 조직이 더는 무너지지 않도록 결기를 보여준다면 지금이 그 때인 셈이다.

게다가 4년 전 권력이 ‘윤석열 총장’을 ‘식물총장’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상황은 더 나쁘다. 당시 윤 대통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선 배제됐어도 원전비리 등 살아 있는 권력 수사의 지휘가 가능했다. 이 총장의 경우 인사는 끝이 났고, 수사에 개입할 권한이나 시간은 부족하다. 검사장급 인사 기조를 보면 중간 간부 인사에서도 총장 의중이 반영될 여지는 없다. 총장에게 실권이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총장직을 유지할 하등의 이유도 없게 된다. 이 총장은 평소 지금 시대에 와닿기 어려운 선비론을 즐겨 말했다. 그의 말대로 원칙을 지키며 자리에 연연함이 없이 처사를 중시하는 그 선비의 길을 걸어가기 바란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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