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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이 16일 기각됐다. 이날 오후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모습. 연합뉴스
서울고법 재판부가 의과대학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들의 신청을 기각한 이유는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를 중요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의료계의 손을 들어줄 경우 필수의료·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적 전제인 의대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을 우려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한국 의료의 현실을 진단하고, 의대 증원 정책을 평가했다. 결정문에서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질 자체는 우수하나,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의료 위기의 원인 중 하나를 의사 수급 실패에서 찾은 것이다. 재판부는 "적어도 필수의료·지역의료의 회복·개선을 위한 기초 내지 전제로서 의대정원을 증원할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배치를 잘 못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장이 달랐다. 결정문에서 "이러한 상황(의료 위기)을 단지 현재의 의사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의사·법학자)는 "이번 신청이 기각된 것은 의대 증원 정책의 명분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정책 추진 절차에 하자가 없고, 정책 논의 과정이 충분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정책이) 일부 미흡하지만 향후 수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일부 미비점이 있지만 무산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정문에서 "지난 정부에서도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하였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는데"라고 강조한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재판부는 이어 "비록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이기는 하나 현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위하여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해 왔다"고 밝혔다. 이는 "2000명 증원정책의 근거가 없고,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의료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재의 증원 규모가 다소 과하다면 향후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해 증원 규모 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의료계는 이번 결정에 큰 기대를 걸고 정부의 재판부 제출 자료를 공개하는 등 여론전을 폈지만 판을 뒤집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됐다. 그렇다고 이번 결정이 전공의 복귀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아 의료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3일 회의에서 "의대 정원이 확정되면 일주일 집단휴진을 하겠다"고 결의했고, 23일 논의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공의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정부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돌아갈 때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3년차 전공의는 "정부 자료를 보니 회의록 미비 등의 여러 절차적 문제가 드러났다. 이걸 어떻게 납득하겠나. 강경한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는 "전공의들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으면 돌아오지 않겠나"면서 "사법부의 결정이 나오면서 이런 주장(증원 반대)을 하는 데가 의사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급히 머리를 맞대 증원 규모를 조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예방의학) 교수는 “의학 교육 여건을 고려하면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도 무리이고, ‘백지화’만 주장하는 의료계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것”이라며 “양측이 절반씩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 위원회를 구성해 충분한 논의해서 증원 규모를 정하는 게 해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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