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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캄보디아 공식 오찬에 참석해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와 건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춘재 | 논설위원

대통령을 풍자하는 여러 표현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대통령 놀이’가 아닐까.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대통령의 권한과 특혜만 누리려고 하니 말이다. 대통령이 책임은 지지 않고 즐기기만 하면 국민이 힘들어진다. 그의 ‘대통령 놀이’는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때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고교 후배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감싸고돌면서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소홀한 공직자의 책임을 묻는 여론에 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일축했다고 전해진다. “책임이라는 게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지 아무한테나 물으면 되겠나.” 하지만 공직자의 책임 여부는 법에 따라 공정한 조사를 통해 가리는 게 국가 운영의 기본 원칙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바로 사법 시스템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공적 시스템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판단해서 국민에게 받아들이길 강요한다. 마치 “짐이 곧 국가”라는 전제군주처럼 말이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에 ‘브이아이피(대통령)가 격노했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진술이 공개됐을 때 언론들은 임 전 사단장이 윤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방부 장관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초동 수사’ 결과를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뒤집을 이유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럼, 윤 대통령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냥 자기가 볼 때는 그게 맞는 것 같으니 그랬을 것이다.

지난 13일 발표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그의 ‘대통령 놀이’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자기가 ‘왕’이 되는 데 아무리 큰 공헌을 한 측근이라도 딴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숙청해버리는 과거 전제군주의 모습을 재현했다. 그 모습이 홍준표 대구시장에겐 “자기 여자를 보호하는 상남자”로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에겐 공인 의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무개념 대통령’일 뿐이다. 이번 검찰 인사는 윤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내로남불’의 하이라이트다. 4년 전 검찰총장일 때 ‘윤석열 사단’ 해체 인사에 반발해 “총장 패싱 인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장면을 역할만 뒤바꿔서 그대로 재현했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여당 의원들에게 맞서는 모습에 환호했던 검찰 후배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당시 연판장을 돌리고 성명서를 내가며 윤 총장을 응원했던 검사들은 지금 인지부조화 상태가 아닐까. 인사에서 ‘패싱’당한 이원석 총장을 비롯해 한직으로 쫓겨난 ‘친윤’ 검사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이번 인사의 또 다른 포인트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을 윤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할 검사들로 채운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 자신과 부인에게 칼을 겨누지 않을 뿐 아니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적 제거에 신명을 다할 검사들만 추려냈다. 대표적인 인사가 서울고검장에 임명된 임관혁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 몰락의 서막이었던 ‘정윤회 문건’ 수사의 주임검사였다. 2015년 이른바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을 사설 정보지(지라시) 수준의 허위라고 결론 냈던 바로 그 수사다. 당시 검찰은 문건의 실체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전 경정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다. 한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을 충직하게 따랐다. 임 고검장은 ‘검사 위증 강요 의혹’이 제기된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주임검사를 맡았고,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장을 맡았을 때는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와 김주현 민정수석의 수사 외압 의혹에 면죄부를 줬다. 그의 이름엔 항상 ‘당대 최고의 정치검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임 고검장의 존재는 윤 대통령의 신임을 듬뿍 받는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의 충성심을 자극할 것이다. 벌써부터 이 지검장이 전주지검에서 지휘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관련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 수사에 대한 맞불 성격이다.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더욱 불신받게 될 것이다. ‘대통령 놀이’에 빠진 대통령이 이젠 검찰도 힘들게 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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