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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비위에도 非징계처분인 주의·경고
징계로 가더라도 대부분 견책 등 경징계
소방서장이 징계권... 중징계 피하려 해
화재 현장에서 불길을 진압하는 소방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 식구 봐주기가 결국 소방 조직의 발전을 막는 거예요."


현직 소방관 A씨가 지난해 한 화재 현장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 현장 지휘관은 "불이 다시 붙을 위험이 있으니 완전 진화까지 대기하라"고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소방관 B씨는 '현장에서 철수해도 될 것 같다'고 자체 판단을 내려 그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지휘관과 지시 문제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긴박한 화재 현장에서의 지시 불이행은 중징계 사안이지만, 감찰 결과 B씨에겐 경징계도 아닌 '주의' 처분만 내려졌다.

B씨는 술값 시비를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밀치는 등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경고' 처분만 받았다. 소방공무원 징계령에 따르면 △중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이고 △경징계는 감봉·견책이다. 경고·주의는 징계 수준에 이르지 않은 일종의 행정처분이다. 결국 B씨는 지시 불이행이나 형사처벌에도 징계조차 받지 않았던 셈이다.

솜방망이 징계가 조직을 망치고 있다는 걱정이 일선 소방관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다.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엄중히 징계해야 할 사안임에도 주의·경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징계권자와 징계혐의자의 친소관계에 따라 '복불복' 식의 징계 처분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방공무원 범죄·비위 발생현황. 그래픽=강준구 기자


15일 한국일보가 확보한 '최근 5년간 소방공무원 범죄·비위 통계 분석'을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소방공무원의 범죄·비위 건수는 총 6,253건(범죄 2,145건, 비위 4,108건)에 달했다. 범죄 중에는 성범죄, 마약 등 중범죄도 포함됐다. 그런데 상당수 범죄·비위에 대해 주의나 경고 등의 행정처분(61.7%)이 내려졌다. 징계처분은 29.3%, 그마저도 경징계 비율이 높았다. 교육 등 조치도 9.0%에 달했다.

소방관 비위·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2022년 12월 경남의 한 소방 간부는 택시기사에게 폭행·욕설을 저질렀지만 다음 날 멀쩡하게 소방서장으로 임용됐다. 2021년 8월 전북 지역의 한 소방서장은 119구급차를 사적으로 사용해, 친척을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징계 중 가장 낮은 '견책'을 받는 데 그쳤다.

소방서장에 해당하는 소방정 계급(경찰의 총경과 같음)에서 비위·범죄가 빈발했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최근 5년간 계급별 현원(356명) 대비 비위·범행 발생 건수가 75건으로, 발생 비율이 21.1%에 달한 것이다. 소방공무원은 국가공무원임에도 소방서장 징계는 시·도지사에 맡겨져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장은 소방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대개 지역소방본부에 위임한다. 현직 소방관 C씨는 "본부장은 서장과 같은 간부후보생 출신인 경우가 많아 제 식구 감싸기식 징계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소방공무원 특유의 '봐주기식 징계'엔 구조적 원인도 자리하고 있다. 소방정 이하 계급에 대한 징계권은 관할 소방서장이 담당하는데, 관할서 내에서 중징계 사안이 발생하면 서장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엄하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D씨는 "직원들 징계 수위가 높거나 건수가 많으면 서장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진다"면서 "징계 사건으로 주목을 받을 경우 업무에도 부담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털기 위해선 징계 권한을 중앙행정기관인 소방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정안전부 소속인 소방청으로 이관하면, 부당 징계와 관련한 감찰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소방노조) 관계자는 "현재 징계권을 포함한 임용권이 소방서장과 지자체장에게 맡겨져 정당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공정성 강화를 위해 징계권이 소방청으로 이관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 역시 "소방청에서 징계를 맡게 되면 전문성이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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