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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에서 카네이션을 들고 이동하는 시민. 뉴스1
서울의 한 영어 유치원(유아 영어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A씨는 최근 스승의 날을 앞두고 다른 학부모들과 ‘선물 회의’를 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스승의 날 선물로 무엇을 줄지 논의하기 위해서다. 결국 20만 원씩 걷어서 100만원 상품권과 케이크를 선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A씨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치고는 지나치다는 생각도 했지만, 모두 돈을 모으는 분위기에서 혼자 빠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교사인 B씨에게 스승의 날은 1년 중 가장 긴장되는 날이다. 학생들이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올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학생들이 나눠 먹다 건네는 작은 젤리도 받지 않는다”며 “올해는 동료 교사들끼리 ‘부처님께서 감사하게도 스승의 날에 오셨다’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농담까지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스승의 날인 15일을 맞아 교문 안과 밖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학교는 작은 선물에도 조심스러워 하고, 부모들은 학교 바깥의 스승들을 챙기느라 고민하고 있다.



“학원 선생님 선물 얼마까지” 질문 글 쏟아지는 맘 카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달부터 스승의 날 선물을 고민하는 글이 끊이지 않았다. 어린이집이나 학원 선생님에게 어떤 선물을, 어느 가격까지 준비하면 좋으냐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지인은 5만원 상품권을 8명에게 돌려 40만원을 썼다”는 식으로 선물 시세를 공유하기도 한다. 종류도 커피 기프티콘부터 브랜드 화장품, 백화점 상품권까지 다양한 선물이 언급된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4월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오는 '선물 고민 글'. 커뮤니티 캡처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에 대한 선물은 2016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금지됐다. 하지만 어린이집 보육교사나 학원 강사 등은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만 1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인천의 한 학부모는 원에 재직 중인 선생님 6명의 스승의 날 선물을 지난달부터 준비했다. 담임에게는 5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원장과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주문 제작한 카네이션 모양의 수세미를 선물했다. 그는 “인기 상품은 한 달 전부터 주문이 마감된다. 선생님들에 감사한 마음도 크지만, 혼자 빈손일까 봐 안 챙길 수 없었다”고 했다.

일부 영어유치원과 학원에서는 고액의 선물이 오가기도 한다. 서울의 한 영어 유치원 학부모는 “몇만 원짜리 핸드크림이라도 선물하는 분위기”라며 “유치원에서 어린이날에 비싼 브랜드 의류를 단체 선물로 돌렸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가격대로 선물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한 입시 컨설턴트는 “김영란법 이전보다는 줄었지만, 홍삼이나 소고기 세트는 꽤 들어온다”고 했다.

지난해 스승의 날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직접 그린 선생님 모습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편지지 가격조차 걱정인 학교…“스승의 날은 죄인이 되는 날”
반면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제주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 교사는 선생님에게 쓰는 편지지조차 가격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똑같은 편지지를 나눠줬다. 강원도의 한 초등 교사는 “바라지도, 받지도 않는 선물 때문에 스승의 날에는 늘 청렴서한 공문이 와서 기를 죽인다”며 “어느 날부터 우리 교사들에게 스승의 날은 죄인이 되는 날이 됐다”고 토로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향해 하트를 그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스승의 날이 지금과 같은 5월 15일이 된 것은 1965년부터다.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세종의 생일로 정했다고 한다. 이후 박정희 정부가 공무원 부패 척결을 이유로 1973년 스승의 날을 폐지하는 곡절을 겪었다가, 1982년 법정 기념일로 부활했다. 하지만 촌지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자, 2006년 스승의 날에는 ‘무더기 휴교’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서울 초교 62%, 중·고교 58%가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2016년 이후로는 선물이 오가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문제는 스승의 날이 당초 취지와 다르게 많은 교사에게 불편한 날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 커뮤니티에는 “선물은 바라지도 않으니 민원이나 없길 바란다”는 글이 다수다. 여기에는 교권 추락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사들 사이에서는 스승의 날 대신 ‘교사 인권의 날’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교원 만족도 ‘바닥’…“최고 선물은 교권 보호”
교사들은 “최고 선물은 교권 보호”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 파주에 근무하는 한 초등교사는 “학교폭력 업무를 맡고 있어서 내 말 한마디에 고소당하지 않을까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교권 보호 대책도 현장에선 체감이 잘 안 된다”고 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원의 만족도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현재 교직 생활에 만족한다’는 교원은 21.4%, ‘다시 태어나면 교직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19.7%에 그쳤다. 모두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교총은 “교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행정 업무를 폐지 또는 이관하는 등 근무 여건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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