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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써야 할 날 돼 버려…교사 존중 문화 만들어지길"
지난해 서울 지역 학교 재량 휴업 26곳…날짜 바꾸자 의견도


스승의날 학생이 보낸 사진(재가공) [독자 제공]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1. '스승의 날'이 휴일(부처님 오신 날·15일)이라서 오히려 좋아요. 학교 가면 골치만 아파요"

서울 공립 중학교 교사 10년 차인 A씨. 올해는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이 법정공휴일인 부처님 오신 날과 겹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작은 선물도 일절 받을 수 없는 만큼 스승의날에 학교에 있는 게 되레 부담된다는 것이다.

작년만 해도 반 학생 25명 중 1명 정도가 A씨에게 손 편지로 '감사합니다'를 적어줬지만, 전날에는 아무도 그에게 편지를 주지 않았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편지나 꽃을 받을지 말지를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고 말했다.

A씨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스승의 날을 피한다"며 "교사를 잠재적 뇌물 수수자로 보는 것도 불편하고 피곤해서 그냥 그날엔 쉬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2. 서울 공립 초등교사 B씨는 몇 년 전부터 스승의 날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누곤 한다.

B씨는 "스승의 날은 '스승을 존경한다'는 건데 사실 요즘 같아서는 존경은 바라지도 않고 존중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최근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 등으로 교권이 예전만 하지 못하면서 1년 중 가장 큰 이벤트였던 '스승의 날'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부정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교탁 앞에 수북이 쌓이던 선물은 거의 없어졌다.

손 편지, 칠판 꾸미기 등 돈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 학생들이 교사에게 스승의 날 의미를 담아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에서는 이벤트를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관례가 됐다.

가뜩이나 교사가 학교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데 스승의 날까지 또 다른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날이 된 것에 불편을 느끼고 있다고 B씨는 전했다.

어린 학생이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아직 1교시에 고마웠던 선생님에게 손 편지를 쓰는 이벤트를 하는 학교도 있지만, 이 또한 담임에게는 전달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다고 한다.

스승의 날에 마이크로 울려 퍼졌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도 없어진 지 오래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불편하지 않도록 스승의 날을 아예 재량휴업일로 정하는 학교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스승의 날 재량휴업일을 실시한 학교는 초등학교 2개, 중학교 9개, 고등학교 15개 등 총 26개였다.

재량휴업을 하지 않아도 스승의날에 학교에서 백일장이나 체험학습, 자체 행사 등을 운영한 곳도 많았다.

아예 스승의 날을 근로자의 날(5월 1일)과 합쳐 다른 근로자와 함께 쉬자는 의견이나 스승의 날 취지를 부각하기 위해 날짜를 연말로 미루자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는 스승의 날을 폐지하고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9월 4일을 '교사 인권의 날'로 제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서울의 한 공립 초등학교 교사는 "실제로는 스승의날이 스승을 존중하자는 것인데 요즘에는 그런 풍토를 찾아보기 힘들어 안타깝다"며 "교사도 학부모와 학생을 존중해야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도 지금보다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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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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