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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기획-다큐로 보는 6411]
하루 12시간 일하는 11년차 임승철씨의 노동일지
11년차 마루 노동자 임승철씨가 도포된 접착제 위로 마루를 끼우고 있다. 채반석 기자 [email protected]


고 노회찬 의원이 찾았던 6411번 새벽버스에는 청소, 돌봄 노동자 등 ‘엄연히 존재하지만 사회적 발언권은 없는’ 우리 사회 숨은 노동의 주인공들이 함께했다. 이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온 ‘6411의 목소리’가 연재 100회를 맞았다. 이에 노회찬재단과 한겨레는 ‘영상판 6411의 목소리’랄 수 있는 노동다큐 ‘툴툴(TOOL TOOL): 우리는 모두 프로다’를 시작한다. 그 첫 두 편의 이야기를 온라인과 지면을 통해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다.
회백색의 구름이 일어나며 49㎡(15평)의 공간을 가득 메운다. 그라인더가 시멘트 바닥을 갈아내며 만드는 분진이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지만 만들어지는 먼지의 양이 창밖으로 나가는 그것의 몇배는 된다. 아파트는 연무에 갇힌다.

지난달 29일 경기도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불꽃을 튀겨가며 그라인더를 돌리는 사람은 11년차 마루노동자 임승철(53)씨다. 모자를 뒤로 돌려쓰고 얼굴에는 분홍색 필터가 달린 공업용 방진 마스크를 착용한 채다. 보호장구는 이것만이 아니다. 방진 마스크 위쪽으로는 눈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도수 없는 안경이 있고, 그 옆으로는 그라인더가 내는 찢어지는 소음으로부터 귀를 보호하는 커널형 이어폰이 고막을 막아서고 있다.

시멘트 바닥 갈아내고 청소하고

작업 조끼와 도구가 매달려 있는 작업 벨트를 지나 내려가면 잠옷으로 쓸 법한 ‘몸뻬 바지’가 나온다. 온종일 쪼그려 앉아 작업하는 탓에 여름철에는 최대한 얇고 편한 바지를 입는다. 시선을 다시 바닥의 그라인더로 내리면 톱날과 마주하고 있는 두꺼운 안전화가 나온다.

그는 꼼꼼하게 바닥을 다듬고 벽에 마루의 뒤틀림을 방지하는 홈을 만들었다. 아직 단 한평의 마루도 깔지 못했는데 청소를 포함해 그가 사전 작업에 소모한 시간만 두시간 반 남짓이다. 인분 처리를 비롯한 청소는 ‘입주자 사전 점검’ 전 마지막 공정을 맡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수많은 일 중 하나다. 작업 면적에 따라 임금을 받는 ‘평떼기’ 노동자인 그는 3.3㎡(평)당 1만2천~1만3천원을 번다. 남들이 외면한 공사의 온갖 부산물을 걷어내야 그마저도 벌 수 있다.

그의 첫 사회생활은 대기업 계열사였다. 다니던 회사는 합병 이후 지방으로 이전했다.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큰돈을 만진 적도 있지만 얼마 못 가 실패했다. 그 뒤 마루 공사 현장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지긋지긋한 사람들을 안 보고 혼자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프리랜서와 근로자의 경계를 오가는 불안정한 노동 형태가 주는 서러움이 컸다.

“우리가 늦게까지 일한다고 해서 안전관리자들이 우리를 지켜봐주고 그런 건 없어요.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다음날 발견되는 사람도 있어요. 소외받는 서러운 직종입니다.”

도포된 접착제 위로 마루를 끼우고 있는 임승철씨.

바퀴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

그라인더 작업이 끝나고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은 그는 다시 바닥을 청소한 뒤 ‘줄띄기’라고 부르는 측정 작업에 들어간다. 마루를 본격적으로 깔기 전에 기준선을 그리는 작업이다. 여기에 맞춰 마루용 자재를 재단한다. 이때는 마루가 깔리는 양쪽 끝에 적당한 너비로 재단된 자재가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작업할 경우 마무리되는 양쪽 끝 자재의 너비가 과도하게 좁아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마루의 안정성을 위해 시공 전 정확한 계산은 필수다.

기본 재단 작업까지 끝나면 바닥에 마루용 접착제를 골고루 펴 바른다. 본격적인 시공의 시작이다. 49㎡의 공간을 기준으로 대략 250여장의 마루 자재를 깔아야 한다. 홈을 맞춰 자재를 끼워 넣고, 일반 망치와 달리 한쪽 면이 비스듬한 우레탄 망치로 자재 한장당 네번, 다섯번을 때린다. 8~9시간 동안 1천번을 넘게 두드려야 마루가 된다. 그가 숙련공이어서 이 정도다.

온종일 그의 곁을 지키는 것은 ‘바퀴 의자’다. 널빤지 두개를 십자로 붙여 방석을 얹고 바퀴 네개를 달았다. 직접 만든 의자 덕분에 그는 이동할 때 앉았다 일어서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지면을 발끝으로 가볍게 밀어내며 이동한다.

하루 12시간 노동에 한달 330만원

바퀴 의자도 몸을 온전히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무릎 연골은 이미 찢어져 수술을 받았다. 손가락은 망치를 잡는 방향을 따라 휘어버렸고, 팔꿈치와 허리도 성치 않다. 온몸을 쓰는 고강도 노동을 하루 12~13시간씩 해야 한달 330만~4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임씨는 “긴 시간 동안 쉼 없이 일해야 하고, 노동의 밀도도 (다른 직종보다) 높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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