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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초구청 홈페이지 '구민의 참여' 게시판에 한 중학교 학부모가 부실 급식이 심각하다는 민원 게시글과 함께 첨부한 급식 사진. 서초구청 홈페이지
" 여사님 그만두시면 급식실은 완전히 멈춥니다. 우리 좀 살려주세요. "
최근 ‘부실 급식’ 논란이 불거진 서울 서초구의 A중학교 교장이 조리실무사들을 찾아 설득하며 한 말이다. 공립인 이 학교는 전교생이 1000명이 넘지만, 급식을 준비하는 조리실무사는 2명에 불과하다. 정원이 9명이지만, 조리실무사들의 연이은 퇴사로 인해 결원이 생긴 것이다.

일용직을 구해서 버티던 학교는 결국 지난달에 학부모 의견 수렴을 거쳐 반찬 가짓수를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온라인에 밥과 국, 순대볶음만 담긴 식판 사진이 퍼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교장은 “책임감을 느끼고 사태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 중이지만 일할 사람이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 A 중학교 급식 관련 가정통신문. 학교 홈페이지



교육 1번지 강남, 학교 급식실에 사람이 없다
신재민 기자
‘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의 학교는 역설적으로 부실 급식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상당수 학교가 만성적인 조리사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지난해 기준 조리사 1인당 학생 수는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이 115명으로, 여건이 가장 나은 중부(75명)와 격차가 컸다.

학교 급식실 인력은 영양사와 조리사로 구성된다. 이중 조리와 세척 등의 실무는 팀장(주방장) 격인 조리사 1명과 다수의 조리실무사가 함께 맡는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초등학교는 재학생이 1000명일 경우 최소 6명 이상의 조리실무사를 배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 고광민(국민의힘) 시의원이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와 서초구에 위치한 총 58개의 초등학교 중 42곳(72.4%)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학교들은 해마다 채용 공고를 내지만 지원자가 오지 않는다. 지난해 강남서초교육청의 조리실무사 채용 경쟁률은 0.2대 1에 불과했다. 141명을 뽑는 자리에 29명만 지원했다. 올해 3월 1일자 채용에서도 서울 전역에서 총 355명의 미달 인원이 발생했는데, 이 중 강남·서초가 135명(38.0%), 강동·송파가 75명(21.1%)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조리사는 아침 7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먼 지역에서 출퇴근하려는 지원자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신재민 기자

전국적으로도 조리실무사의 채용 경쟁률은 미달 수준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조리사 명모(43)씨는 “채용 사이트에 올라오는 식당 구인글만 봐도 월급은 최소 220~230만원 수준이다”며 “근속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신입 입장에선 급식실보다 노동강도가 훨씬 약한 식당 알바가 더 나은 대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리사 부족은 고스란히 학생 피해로 이어진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영양사는 “퇴사하겠다는 조리사를 설득하고 대체인력을 구하느라 진땀을 뺀다”며 “위생 관리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11년차 조리사인 정모(57)씨는 “일손이 부족할 경우 조리가 좀 더 간편한 카레로 메뉴를 바꾸거나 반찬 일부를 요거트 등의 완제품으로 대체한다”며 “영양 문제도 있고 학생들의 급식 만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동 강도 세지만 처우는 '식당 알바' 보다 못해
29일 강원 춘천시 신북읍 한샘고등학교에서 열린 'ESG 선도경영, 학교형 튀김 로봇 시연회 및 기증식'에서 신경호 교육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구인난의 원인으로는 노동 강도 대비 낮은 처우가 꼽힌다. 학교 급식실은 많은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세고,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조리흄(요리 매연) 노출로 인한 ‘급식실 폐암’이 산재로 인정되기도 했다.

반면, 월급은 ‘식당 알바’보다 못한 수준이다. 조리실무사의 기본급은 최저임금(206만740원)보다 낮은 198만6000원이다. 방학 기간에는 급식실이 문을 닫아 1년 중 3개월은 무급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노동강도를 낮추고 조리흄 노출을 줄이기 위해 급식 조리로봇 도입을 준비 중이지만, 근본적인 인력 부족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조리과정 중 볶기·튀기기 등을 로봇이 대신하더라도 급식실 운영이 필요한 최소 인력조차 없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대안으로 민간업체 위탁도 고려하고 있지만, 교육공무직 일자리가 사라지는 만큼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월급을 올려주려고 해도 다른 교육공무직의 임금과 동일하게 묶여있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17개 시도교육청과 교육부가 교육공무직 측 단체와 집단교섭을 진행하는데, 교육청마다 예산 규모가 달라 임금 인상안을 쉽게 도출하기 어렵다”며 “특정 직군만을 위한 처우 개선도 다른 직군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식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조리사의 열악한 처우를 방치하면 부실급식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으로 교육공무직에 대한 낮은 처우 문제를 우리 사회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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