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남녀노소 77개 팀 90분간 '멍'…"생각 너무 많아서 비우러 왔어요"


올해 10주년 한강 멍때리기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 열린 '2024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멍때리고 있다. 2024.5.12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각을 비우러 왔습니다."

전날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12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는 시민 77개 팀이 강바람을 맞으며 자리에 앉아 시선을 허공에 던졌다.

수많은 인파의 시선과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도 이들은 흔들림 없이 멍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들은 올해로 대회 10주년을 맞은 '한강 멍때리기 대회'의 참가 선수들이다. 대회 참가자는 90분 동안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휴대전화 확인, 졸거나 잠들기, 웃거나 잡담, 노래 부르거나 춤추기,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음료 외의 음식물 섭취 등을 하면 탈락한다. 관객 투표를 많이 받은 10인 중 가장 안정적인 심박 그래프를 보인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다.

데이터 언어학자와 정신과 의사, 소방관 등 다양한 직군의 참가자들이 3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다. 참가자들은 청원경찰·요리사 유니폼 등의 복장으로 자신의 직업을 알리는가 하면, 찜질복과 죄수복을 입거나 수박 코스프레를 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대회에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곽윤기(35)씨와 걸그룹 '빌리'의 멤버 츠키(22), 유튜버 '미미미누'(본명 김민우·29) 등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곽씨는 동료들과 함께 쇼트트랙 경기복을 입고 나와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곽씨는 "올림픽 도전만 다섯 번 하고 누군가와 경쟁하며 살면서 무엇보다도 쉬고 싶었다"며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쉴 수 있겠다고 생각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미미미누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각자의 존재 가치를 찾는다는 대회의 의미에 공감했다"면서 "이번에 떨어져도 재수까지는 해보겠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다섯 번의 수능 도전 끝에 대학에 진학한 이력으로 수험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멍 때리기, 곽윤기도 참가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 열린 '2024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 쇼트트랙 곽윤기가 멍때리고 있다. 2024.5.12 [email protected]


참가자들은 대회에 앞서 보드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각을 비우러 왔다', '멍때리기는 제가 회의 시간에 제일 잘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멍때리다가 침 좀 흘려서 1등 할 것 같다' 등의 문구를 적으며 각오를 다졌다.

참가한 시민의 연령대도 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경기 시흥시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3학년 박수빈(18)·강채원(18)양은 "수능을 앞두고 학창 시절 추억을 쌓기 위해 참가를 신청했다"며 "웃음이 너무 많아서 걱정되지만 진지한 마음으로 대회에 임해보겠다"고 말했다.

시니어 모델 강승균(62)씨는 "예순이 넘은 나이지만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계속해보고 싶어 참가하게 됐다"며 "우승에 자신이 없지는 않지만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려 한다. 전략이 없는 것이야말로 전략"이라고 했다.

오후 4시 17분 대회 시작과 함께 참가자들은 본격적으로 '멍'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멍때리기에 실패한 이들은 포졸 복장을 한 대회 관계자들한테서 퇴장 카드를 받고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대회가 시작된 지 35분 만인 오후 4시 52분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기권을 선언한 대학생 홍지우(24)씨는 "'내가 나가면 무조건 1등을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햇빛이 너무 세서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아쉬워했다.

우승은 프리랜서 아나운서 권소아 씨에게 돌아갔다.

권씨는 "평소 무언가를 목표로 할 때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하면 심장이 빨리 뛸 것 같아 그냥 평소처럼 멍을 때렸다"며 "다리도 저리고 진행자의 멘트를 듣고 웃음도 나올 뻔했는데 잘 참은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행사를 주최한 시각 예술가 '웁쓰양'은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메시지를 던지는 참가자 여러분은 선수이자 '퍼포머'"라고 했다.

올해 10주년 한강 멍때리기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2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 열린 '2024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멍때리고 있다. 2024.5.12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9422 “사망 후에도 유흥”…거제 전여친 폭행범, 마침내 구속 랭크뉴스 2024.05.21
19421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오늘 결론‥"특검 수용해야" 랭크뉴스 2024.05.21
19420 "인도 초청은 당초 문체부 장관이었다"...'김정숙 타지마할' 논란 쟁점 살펴보니 랭크뉴스 2024.05.21
19419 "AI, 불평등 확산할 것…기본소득 제공해야" 랭크뉴스 2024.05.21
19418 “신생아 ‘안저검사’만 했어도”…의료 사각지대서 매년 수천명 실명 랭크뉴스 2024.05.21
19417 민주당, ‘명심보강’ 랭크뉴스 2024.05.21
19416 美 "이란 대통령 사망 애도…안보저해행위 책임은 계속 물을 것"(종합) 랭크뉴스 2024.05.21
19415 1만명 탈당에 지지율 6%P '뚝'…강성당원과 중도에 낀 이재명 랭크뉴스 2024.05.21
19414 日, 30년 만에 돌아온 강세장에…‘개미’ 등치는 사기 기승 랭크뉴스 2024.05.21
19413 [사설] 채상병특검법 거부권 행사 후폭풍 감당할 수 있나 랭크뉴스 2024.05.21
19412 "끝났다"던 넷플릭스의 화려한 반등... 그 뒤엔 '이 사람'이 있었다 랭크뉴스 2024.05.21
19411 [단독] 與 만난 김 여사 “선거로 살 빠지셨나”…尹 “당 호위무사 될 것" 랭크뉴스 2024.05.21
19410 일부 전공의 '복귀 디데이' 넘겼다…전문의 취득 차질 가능성 랭크뉴스 2024.05.21
19409 '채 상병 특검'에 尹 10번째 거부권 임박... 또 민심과 맞서다 랭크뉴스 2024.05.21
19408 신생아 한명 당 53만원에 사고판 일당들 재판서 한 말이… 랭크뉴스 2024.05.21
19407 "이스라엘도 전쟁범죄" ICC 영장에 美 발칵…바이든 "터무니 없다" 랭크뉴스 2024.05.21
19406 [단독] "금감원 출신 142명, 로펌·증권·보험사 취업"... 질긴 '금융 카르텔' 랭크뉴스 2024.05.21
19405 “유기농인데 더 싸네?”…과일값 폭등에 장바구니도 변했다 랭크뉴스 2024.05.21
19404 '머스크 효과' 美 기업 CEO 성과보수 확산…작년 최고 2천억원 랭크뉴스 2024.05.21
19403 한번에 핫도그 64.5개 삼킨 40대 '먹방' 챔피언 결국… 랭크뉴스 202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