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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손해배상액 종전보다 줄어들 전망
[법알못 판례 읽기]


그래픽=게티이미지뱅크


일용직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한 경우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이 되는 ‘월 가동 일수’는 20일을 초과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도시 일용직 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2일로 인정한 기존 판례를 21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연간 공휴일의 증가 등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는 등 근로 여건과 생활 여건의 많은 부분도 과거와 달라진 점을 고려해 이같이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들이 받을 손해배상액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심 월 19일→2심 22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24년 4월 25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에 상고장이 접수된 지 3년 7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일용직 근로자 A 씨는 2014년 7월 경남 창원의 한 여관 철거공사 현장에서 굴뚝 철거 작업을 하다 지상 9m 높이에서 추락해 좌측 장골 골절 등 상해를 입었다. 그는 사고 당시 크레인에 연결된 안전망에 탑승해 철거작업을 했는데 굴뚝 위의 피뢰침에 걸려 안전망이 한쪽으로 뒤집히면서 사고를 당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A 씨에게 휴업급여 2억900만원과 요양급여 1억1000만원, 장해급여 3167만원을 지급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사고의 원인이 된 크레인 회사와 자동차종합보험 계약을 맺은 삼성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삼성화재해상보험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A 씨에게도 안전장치를 착용하는 등 스스로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음을 참작해 책임 비율을 90%로 제한했다. 또 일실수입을 산정하면서 월 가동 일수를 19일로 인정했다.

A 씨의 고용보험 일용근로내역서상 51개월간 총 근로일수가 179일에 불과한 점이 근거가 됐다. 이에 1심 법원은 사고 당시 51세 4개월인 A 씨의 나이를 고려해 그가 만 65세가 되는 2028년 3월 18일까지 도시일용노임에 의한 소득 7118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삼성화재해상보험이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월 가동 일수를 22일로 인정해 1심보다 약 341만원 늘어난 746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용노동부가 건설업을 포함한 일용근로자의 1개월간 실제 근로일수 등을 고려해 고시한 통상근로계수는 1개월간 근로일수가 22.3일 정도임을 전제로 산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도시일용 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에 관한 위와 같은 경험칙에 확실한 변화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삼성화재해상보험 측은 월 가동 일수를 22일로 인정한 항소심 판결에 대해 “가동 일수 인정, 경험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며 상고했다.

대법 “사회적·경제적 구조 변화 고려해야”


대법원은 원심이 일실수입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가동 일수 인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는지를 집중 심리했다. 이후 “여러 사정을 고려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사고 당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0일을 초과해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우선 제도적으로 근로 시간 감소가 이뤄진 게 원심을 파기한 근거가 됐다. 한국은 2003년 9월 15일 법률 제6974호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1주간 근로 시간 상한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며 그 시행일을 사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했다.

이런 기준이 2011년 7월 1일부터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원칙으로 적용되는 등 근로 현장에서 근로 시간의 감소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의 개정 등으로 대체공휴일이 신설되고 임시공휴일의 지정도 가능하게 돼 연간 공휴일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경제적 구조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통계법에 의해 지정통계로 지정된 법정 통계조사인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의 고용 형태별·직종별·산업별 최근 10년간 월평균 근로일수 등에 의하면 과거 대법원이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2일 정도로 보는 근거가 됐던 각종 통계자료 등의 내용이 많이 바뀌어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2일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 사고 당시 관련 통계나 도시 일용근로자의 근로 여건에 관한 여러 사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심리해 이를 근거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판단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하급심 판결의 새 기준 될 듯”


이번 판결은 변화된 근로환경, 월평균 근로일수에 대한 통계 등을 반영해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실질에 맞게 인정한 것이다. 향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는 원칙적으로 20일을 초과해 인정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동안 대법원 판례는 월 가동 일수를 줄이는 추세였다. 대법원은 1992년 12월 8일 선고(92다26604 손해배상)에서 ‘경험칙상 일반적으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가동 일수가 월평균 25일로서 연평균 300일로 추정한다’며 ‘경험칙과 다른 가동 일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2003년 10월 10일(2001다70368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에선 ‘관련 통계와 가동 일수 감소의 경험칙 등을 고려했을 때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는 22일을 초과해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이후 하급심은 주로 경험칙을 근거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를 22일로 보는 판단을 내놓았고, 상고심도 대체로 이를 수긍했다. 이번에 대법원이 “20일을 초과해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놓으면서 도시 일용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는 한 차례 더 줄었다.

이런 변화는 시대 상황을 반영해 현재 적용될 수 있는 경험칙을 선언한 것으로 판례변경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 관계자는 “반드시 전원합의체에서 종전 판례를 폐기하고 판결을 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2003년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소부 선고로 변경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모든 사건에서 월 가동 일수를 20일로 인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증명한 경우 월 가동 일수를 20일을 초과해 인정할 수 있고, 사안에 따라 20일 미만의 월 가동 일수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여지를 두고 있다.

다만 그 기준점이 22일에서 20일로 줄었다는 점에서 실제 하급심 판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월 가동 일수가 줄어든 만큼 손해배상액도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대법원은 2019년 2월 21일 전원합의체 선고(2018다248909 손해배상)를 통해 일실수입 산정 과정에서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하는 등 시대 상황에 맞는 경험칙을 선언하고 있다.

또 전체 손해배상액은 민사상 위자료의 현실화를 통해 조절될 수 있는 점도 월 가동 일수 감소로 인한 손해배상액 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는 요인으로 여겨진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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