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도서관에 책들이 놓여 있다. pixabay


책 <아름다운 탄생>은 아이가 탄생하는 과정을 담은 흑백 그림책이다. 1973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후 세계 곳곳에서 성교육 도서로 활용됐다. 2014년 한국에서 이 책을 낸 출판사 ‘걸음동무’ 대표 이승규씨는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면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성교육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출판을 결정했다. 그는 “흑백 도서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본인의 생각을 (책에) 색칠해 볼 수 있겠다”고도 여겼다.

지난해, 이 책은 순식간에 ‘유해도서’로 낙인찍혔다. 일부 시민단체가 만든 ‘유해도서 141권 목록’에 올라갔다. 성기가 적나라하게 표현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간과하는 현실이 암담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경기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아름다운 탄생> 18권을 포함해 성교육 도서 2528권이 폐기됐다. 일부 보수 성향 시민단체와 도의원이 폐기하라고 주장한 책들이 고스란히 학교 도서관에서 사라진 것이다. 책을 출판하고 관리한 3인(이승규 걸음동무 대표·이선영 우만초 교사·이덕주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대표)으로부터 그 과정을 들어봤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관내 학교에 ‘도서 폐기 조치’ 관련 공문을 두 차례 보냈다.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교육목적에 적합하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교육청이 외부의 압력을 학교에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 기관이 아닌 교육청의 개입은 학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선영 교사가 사서로 재직 중인 우만초에서는 성교육 도서 2권을 폐기했다. 학교 도서관운영위원회 첫 회의 때는 도서를 유지하기로 결정을 내렸으나, 끝내 폐기 조치했다. 이 교사는 “(교육청으로부터) 계속 공문이 오니까 ‘폐기할 때까지 공문이 올 것 같다’ ‘계속 회의를 여는 건 소모적이니 폐기하자’며 끝내 폐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덕주 대표는 “이전에도 시민단체가 학교에 직접 공문을 보내거나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일이 있었지만, 악성 민원 중 하나라고 봤다”면서 “그러나 교육청에서 공문을 보내는 순간 (학교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정 집단은 폐기 전 이들 도서에 ‘유해도서’ 프레임을 씌웠다. 도서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간윤위)에서 유해성을 심사받는다. 지난 4월 간윤위는 시민단체들이 심의를 청구한 성교육 도서 68권 중 67권이 유해도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의결했다. 그럼에도 도서들은 객관적 근거가 없는 누군가의 입김만으로 폐기 처리됐다.

이승규 대표는 “어떤 기준도 없이 누군가의 순간적인 생각만으로 책을 없앨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이선영 교사도 “책이 출간되고 구입된 과정을 온전히 무시하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공공기관에 (폐기를) 요구하고 압박하는 과정들이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학교 도서관은 교과서 바깥의 내용을 제공하는 학습 공간이다. 이들은 ‘강요’로 도서관 책이 사라지는 것은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고 본다. 이덕주 대표는 “교과서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내용, 정답을 맞혀야 하는 내용이 담긴다면, 학교 도서관은 교과서에 없는 다양한 관점을 접하게 하는 공간”이라며 “이번 사례는 아이들의 폭넓은 사고를 차단한 사례”라고 말했다.

학교 도서관의 ‘도서 검열’이 현실화하면서 앞으로 더 다양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도서관의 지적 가치를 높이기보다 ‘민원 없는 도서관’을 우선시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 이선영 교사는 “책을 고르는 사서들이 ‘어떤 민원이 들어올 것인가’에 대한 자기 검열 기준을 높이게 되면 도서의 다양성이 떨어질 것”이라며 “성교육 도서뿐 아니라 저자의 출신과 학력, 단어 하나마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교육 도서들에 ‘금서’ 낙인 땅땅···학교 도서관에서 없애라고요?[뉴스 물음표]“학교 친구들이 아직도 내게 묻곤 해. 스파이더맨 가방은 남자애들 건데. 왜 여자인 내가 들고 다니냐고 말이야.” 스파이더맨을 유난히 좋아하는 소녀 클로에는 초등학교 입학 첫...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403300800021

[단독]경기지역 학교들, ‘유해도서’ 압박에 성교육 도서 2500권 폐기일부 시민단체가 ‘동생애를 조장한다’ 등의 이유를 들어 유해도서로 지적한 성교육 도서들을 경기지역 학교들이 최근 1년간 2500권 넘게 폐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청이 “해...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5071705001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 »»»»» 입맛대로 사라진 성교육 도서들···“교과서 바깥 세상이 좁아진다” 랭크뉴스 2024.05.12
22602 "신앙심 돈벌이에 악용했나"... 인천 이슬람 사원 짓겠단 유명 유튜버 불법 모금 논란 랭크뉴스 2024.05.12
22601 50대 종업원 성폭행하려 한 60대 피시방 업주…합의 끝에 집유 랭크뉴스 2024.05.12
22600 "내 남편, 성기능에 문제가 있어요"…이 광고의 섬뜩한 진실 랭크뉴스 2024.05.12
22599 [주간증시전망] 부처님 도와주세요… 15일 美 물가 지표에 울고 웃을 시장 랭크뉴스 2024.05.12
22598 '40대에 교육비를 가장 많이 쓴대요'... 100세 시대 지출은 이렇게 [부자될 결심] 랭크뉴스 2024.05.12
22597 북 해커에 털린 법원‥"개인정보 등 1천GB 탈취" 랭크뉴스 2024.05.12
22596 망치를 든 화이트칼라, 실직 주범 AI 데이터센터를 부술까 [이덕연의 경제멘터리] 랭크뉴스 2024.05.12
22595 의회 텅 비었는데 ‘현장 방문’…울산시의회 의문의 워크숍 [주말엔] 랭크뉴스 2024.05.12
22594 한국인 20% 갖고 있다는데…알츠하이머 무조건 걸린다는 '이 유전자' 랭크뉴스 2024.05.12
22593 스위스 이어 스웨덴까지… 美 동결에도 막 오른 글로벌 금리 인하 랭크뉴스 2024.05.12
22592 "우리가 안하면 누가 합니까" 전공의 이탈 속 심장시술 18% 증가 랭크뉴스 2024.05.12
22591 트럼프 측근 “주한미군은 중국 견제해야…한국 자체 핵능력 용인” 랭크뉴스 2024.05.12
22590 유방암·대장암보다 생존율 낮은 '심부전', 발병 후 5년 내 60~70% 목숨 잃어 랭크뉴스 2024.05.12
22589 술담배 소비 줄이고 보험료, 교육비 늘렸다...달라진 美 밀레니얼 세대 소비 랭크뉴스 2024.05.12
22588 우크라 전장에 등장한 2300년 전 고대 무기 ‘마름쇠’…정체는 무엇? 랭크뉴스 2024.05.12
22587 바다 아래 궁금증 풀어주는 ‘해저 지질도’의 세계 랭크뉴스 2024.05.12
22586 “페더러도 예외 없다” 테니스에 진심이라면? ‘이 병' 주의[일터 일침] 랭크뉴스 2024.05.12
22585 서울 심야 자율주행버스 6개월새 8천여명 탑승…7월부터 유료화 랭크뉴스 2024.05.12
22584 '채상병 특검 압박'‥야권 장외 결집 랭크뉴스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