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 성산포경찰서장…6·25 때 계엄사령부 명령 거부
예비검속자 70여명 목숨 살려…당시 생존자 안장식에
제주4·3 때 계엄사령부의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주민들을 살린 ‘경찰영웅’ 문형순 전 서장의 안장식이 10일 국립제주호국원에서 열렸다. 허호준 기자

한국전쟁 초기 예비검속된 주민들을 총살하라는 군의 명령을 거부해 무고한 희생을 막은 경찰 간부가 10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고 문형순(1897-1966) 전 성산포경찰서장이다.

일제 강점기 만주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문 서장은 1947년 5월 제주경찰감찰청 기동경비대장으로 제주에 온 뒤 모슬포경찰서장을 거쳐 1949년 10월부터 성산포경찰서장으로 재직하다 한국전쟁을 맞았다. 전쟁 발발 직후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주지역에서도 예비검속한 주민들에 대한 학살이 벌어져 1천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총살 뒤 암매장되거나 수장됐다. 계엄사령부가 문 서장에게 문서를 보내기 열흘 전인 8월20일엔 모슬포경찰서 관내에서 예비검속된 252명이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군인들에 의해 총살됐다.

그러나 성산포 관내에서 예비검속된 주민들에 대한 총살 명령은 문 서장의 거부로 실행되지 않았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2003년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보면, 성산포경찰서 관내 성산·구좌·표선면의 예비검속 총살 대상자 명단이 현존 경찰자료에 남아있다. 계엄사령부가 총살하도록 한 D급 및 C급은 각각 4명과 76명이었는데, 문 서장은 이 지시를 거부하고 이들 가운데 6명만 군에 넘겼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문 서장에게 1950년 8월30일 ‘예비구속자 총살 집행 의뢰의 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내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고 지시했으나, 문 서장은 문서에 ‘부당함으로 미이행’이라 적고 총살 집행을 거부해 주민들을 살렸다.

제주시 오등동 제주평안도민회 공동묘지에 묻혔던 문 전 서장의 유해는 이날 윤희근 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들과 4·3유족회 등이 참가한 가운데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됐다. 안장 행사는 오전부터 파묘와 화장, 영결식, 안장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3월 문 서장에 대한 국립제주호국원 안장을 승인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예비검속 당시 성산포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가 문 서장의 지시 거부로 생존한 강순주(94)씨도 참석했다.

앞서 제주경찰청은 지난해 7월 문 서장의 독립운동 자료를 발굴해 독립유공자 심사를 국가보훈부에 6차례에 걸쳐 요청했으나 입증자료 부족 등의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했다. 이후 경찰은 문 서장이 한국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전투사령부에 근무한 이력을 확인하고 6·25 참전 유공으로 국가보훈부에 서훈을 요청해 지난해 말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진개동산에 ’4·3사건 위령비’와 함께 서 있는 ‘경찰서장 문형순 공덕비’. 허호준 기자

제주4·3 때 계엄사령부의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주민들을 살린 ‘경찰영웅’ 문형순 전 서장의 안장식이 10일 국립제주호국원에서 열렸다. 허호준 기자

문 서장은 모슬포에 근무할 때도 주민들의 희생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 서장은 1953년 경찰을 그만둔 뒤 혼자 어렵게 살다 1966년 숨졌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진개동산에는 마을주민들이 2005년 7월 세운 ‘경찰서장 문형순 공덕비’가 있다. 4·3 시기 문 서장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경찰청은 2018년 8월 그를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하고, 제주경찰청 앞에 추모 흉상을 건립했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1291 쌀밥 외면 시대, 쌀 감산 ‘안간힘’…‘부분 휴경’까지 도입 랭크뉴스 2024.05.25
21290 어떤 유산소운동이 부상 위험 낮을까[수피의 헬스 가이드] 랭크뉴스 2024.05.25
21289 ‘테라·루나’ 권도형 운명 놓고 몬테네그로 사법부 또다시 엇갈린 판결 랭크뉴스 2024.05.25
21288 '브로맨스'는 연기? "트럼프 '김정은, 기회 있으면 배에 칼 꽂을 X' 발언" 랭크뉴스 2024.05.25
21287 목 어깨 허리 떠도는 통증…MRI도 못 찾는 원인, 근막에 있다 [ESC] 랭크뉴스 2024.05.25
21286 "아빠, 애들이 나더러 개근거지래"…조롱거리 된 개근상 랭크뉴스 2024.05.25
21285 “김정숙 여사 활동, 외유라고 하면 인도 모욕…정말 창피한 일” 랭크뉴스 2024.05.25
21284 '큰놈 온다'…삼성 갤폴드6 출시 앞두고 기존 모델 '폭풍 할인' 랭크뉴스 2024.05.25
21283 증권사는 왜 성수동에 팝업을 열었나 [비즈니스 포커스] 랭크뉴스 2024.05.25
21282 또 죽창가? 역사 덮어두기?…한일 역사전 대응법 랭크뉴스 2024.05.25
21281 "아들 험담, 한남·소추 혐오발언에 눈 뒤집혀"···일주일 만 논란 해명한 강형욱 부부 랭크뉴스 2024.05.25
21280 ‘KTX 기념 빵’까지 팔았는데…성심당 대전역점 ‘月 4억원 임대료’ 논란 여전 랭크뉴스 2024.05.25
21279 "채상병 특검 거부권을 거부" 시민사회·야당 대규모 집회 랭크뉴스 2024.05.25
21278 휘발유 5주 만에 1700원 아래로···주유소 기름값 하락 지속 랭크뉴스 2024.05.25
21277 윤 대통령 "언론 조언·비판 많이 듣고 국정 운영하겠다" 랭크뉴스 2024.05.25
21276 벌레 무서워 야구경기 관람·캠핑 취소…곤충 떼에 시민 불편 랭크뉴스 2024.05.25
21275 "초4 아들 '개근 거지'라 놀림받았다"…조롱거리가 된 개근상 랭크뉴스 2024.05.25
21274 “트럼프 ‘김정은, 내 배에 칼 꽂을 X’ 불신 표시”…포린폴리시 보도 랭크뉴스 2024.05.25
21273 [시승기] 가속 페달 밟으면 ‘웅웅’ 배기음… BMW 전기차 i4 랭크뉴스 2024.05.25
21272 위기의 대학로 소극장…객석 메우러 배우들끼리 표 품앗이 랭크뉴스 2024.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