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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백패킹 가평 호명산

주차장에서 캠핑장까지 1㎞ 남짓
아이들, 풀꽃 향기 맡으며 1시간
잣나무 숲속 보금자리에서 1박
경기도 가평 호명산 잣나무 숲속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하산길에 공중그네를 타는 딸과 휴대전화로 이 모습을 촬영 중인 아들.

“생일 축하해!” 이른 아침, 식구들의 축하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 4월의 마지막 목요일은 만 8살 아들의 생일이었다. 이번 생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던 아들의 바람에 나와 아내는 휴가를, 학교에는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다. 푸른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유난히 짙은 하늘을 마주 보며 46번 국도를 달렸다. 경춘선 상천역을 지나며 속도를 줄이고 좁은 마을 길을 따라 오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내비게이션 안내가 종료되었다.

숲속 초코파이 생일 축하

“아빠! 엄마랑 동생 등산화도 챙겨왔지?” 안전띠를 풀며 아들이 물었다. “그럼, 물론이지! 자, 다들 준비되었지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동차 트렁크의 손잡이를 당겼다. 가지런히 놓인 등산화 네 켤레와 배낭 네 개. 만 3살 둘째와 아내가 함께하는 이번 여행은 지난해 어린이날의 춘천 남이섬 이후 1년 만에 도전하는 네 식구 백패킹이다. 등산화를 갈아 신고 배낭의 어깨끈을 당겨 멨다. 주차장 앞의 차단봉을 지나며 산행은 시작되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잣나무가 즐비한 등산로 한편에 자리 잡은 숲속 캠핑장이다. 경기도 가평군에서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는 이 캠핑장은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중산간에 위치한 덕분에 기성 백패커는 물론 백패킹 입문자들에게도 꾸준한 관심을 받는 곳이다. 주차장부터 캠핑장까지의 거리는 1㎞ 남짓. 성인 걸음으로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아이들의 즐거운 산행을 위해서는 부모의 느긋함이 필요하다.


“오빠! 저기 꽃이다, 꽃!” 둘째의 외침에 손을 맞잡고 걷던 오누이는 나란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등산로 가장자리를 수놓은 형형색색의 풀꽃 향기를 맡았다. 아들이 풀꽃 사이에 삐죽 튀어나온 민들레 꽃씨를 꺾어 들고 ‘후~’ 불자 딸은 바람에 날아가는 꽃씨를 따라 이리저리 뛰어갔다. 줄지어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개미 떼를 발견한 남매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관찰하기도 하고, 아이 손바닥만 한 큰 날개를 현란하게 펄럭이는 나비를 쫓아 풀숲을 헤매기도 했다.

“안녕, 꼬마 친구들! 안녕하세요, 올라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약 1시간의 산행 끝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지나 짧은 오르막길을 지나자 젊은 관리인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숲속 캠핑장의 20개의 사이트 중 우리가 머무를 자리는 5번 사이트. 배낭을 벗어놓은 아이들은 돌멩이와 흙, 나뭇가지를 장난감 삼아 자연물 놀이에 몰입했고, 나와 아내는 하룻밤 쉬어 갈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2인용 텐트 두 동을 설치한 뒤 의자와 테이블을 펼치고 앉아 하늘을 올려봤다. 높다란 나무 사이로 햇살이 찰랑거리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럽다.

“아빠, 그런데 오늘 내 생일 케이크는 없어?” 아들의 질문에 나는 싱긋 미소 지으며 먹을 것을 담아온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설마, 생일날 케이크가 없을 리가! 다 준비를 해왔지!”라고 답하며 초코파이 네 봉지를 양손에 들고 흔들었다. 작은 나무 접시 위에 초코파이를 쌓고 초를 꼽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오빠의 생일 축하합니다~” 여동생의 혀 짧은 노래와 박수 끝에 생일 촛불을 끈 아이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작은 상자의 포장지를 뜯었다. 배낭 속에 숨겨온 깜짝 선물은 흰색과 검은색 숫자 타일을 사용한 보드게임. “와! 나 이거 엄마·아빠랑 같이 해보고 싶었던 건데!” 짧지 않은 고민 끝에 준비해 온 선물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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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닮은 호명호수는 다음에

큰아이는 동생에게 민들레 꽃씨 다발을 선물했다.

생일파티를 마친 우리는 캠핑장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캠핑 구역은 2m 남짓한 높이의 촘촘한 낙엽송 울타리로 등산로와 구분되어 있고, 울타리 중간마다 천 소재 장막으로 가려진 출입구가 있다. 이걸 젖히고 나와 등산로에 올랐다. 호명호수와 호명산 정상(632.4m)을 지나 청평역까지 연결되는 이 길은 60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경기둘레길 중 22번째 코스(11.4㎞)다.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산새소리와 상천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잣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숲길을 걷다 만난 ‘호명호수 1.18㎞’ 이정표 앞에서 우린 고민에 빠졌다.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는 해발 535m의 인공호수까지의 트레킹은 욕심났지만, 이미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긴 하루를 보낸 둘째의 눈꺼풀도 상당히 무거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린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잣나무는 어떤 나무야? 잣이 뭐야?” 아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아내가 말을 받았다. “잣은 잣나무의 열매인데, 네가 즐겨 먹는 땅콩이나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야. 여기 바닥에 큰 솔방울처럼 생긴 이건 잣송이라고 해. 가을 무렵 나무에 매달린 잣송이 사이사이에 홀쭉한 옥수수 알맹이처럼 생긴 작은 열매가 맺혀 있거든. 그게 바로 잣이야. 이곳 가평은 우리나라에서 잣을 제일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래.” 고개를 숙여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잣송이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아들은 자기 주먹만 한 잣송이를 하나 집어 들며 말했다. “잣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 나중에 한 번 먹어봐야겠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그리고 뒤이어 말했다. “아빠! 우리 이걸로 야구하자. 잣송이 야구! 어때?” 한 손에는 잣송이를, 다른 한 손에는 나뭇가지를 들고는 마치 엄청난 놀잇감이라도 찾았다는 듯 해맑은 표정의 아이. 난 투구 자세를 잡았고 아들은 흙이 잘 다져진 타석에 들어섰다. 자연 놀이터가 된 잣나무 군락지에는 ‘볼’과 ‘스트라이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서진이의 이번 생일은 어땠어?” 이튿날 아침, 달콤했던 숲속 캠핑장에서의 기억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아들에게 물었다. 전날을 회상하듯 잠시 먼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던 아들이 답했다. “행복했어. 저녁에 먹은 고기도 맛있었고, 오랜만의 모닥불도 좋았어. 엄마랑 서하랑 다 같이 와서 더 좋았던 것 같아. 참, 보드게임은 집에 가서 또 하자!” 엄마 아빠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오빠에게 질투를 느낀 걸까, 민들레 꽃씨 날리기에 열중하던 둘째가 폴짝폴짝 달려오며 외쳤다. “나는 점프! 점프시켜 줘, 아빠!”

나와 아내가 나란히 서서 딸의 양팔을 들어 올리자 둘째는 자지러지듯 웃으며 공중에서 발을 굴렀고, 미소를 한껏 머금은 아들은 휴대전화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글∙사진 박준형 작가

평일에는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가며 밥벌이를,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과 섬을 누비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연으로 한 걸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를 썼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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