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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신체·정신적 폭력 아우르는 교제폭력
재범률 높고 강도 세져 흉악범죄로 이어져
매년 증가에도 관련법 없어 조치·처벌 한계
"주변인 도움보다 공권력의 개입 이뤄져야"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20대 의대생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의대생 최 모(25)씨가 지난 7일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연인을 무참히 살해한 최 씨가 서울 소재 의대 학생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또 한 번 시민들을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경찰은 최 씨가 미리 범행 도구를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건물 옥상으로 불러들이고 급소를 공격한 점 등으로 미루어 범행이 계획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 씨도 자신의 범행이 계획됐다는 점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는 최 씨의 범행으로 다시 ‘교제폭력’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 사랑하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은밀한 범행. 교제폭력에 대한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교제폭력은 무엇인가?



‘교제폭력’은 연인 관계나 호감을 가지고 만나는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으로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행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 폭력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상대를 감시하거나 통제하려는 행위도 포함된다.

특히 여성이 주요 범죄 대상이 되는 교제폭력은 재범률이 높고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탓에 은폐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스토킹 범죄 등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보호를 위한 실효적인 법적·제도적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사회 각계에서 이어져온 바 있다.

해외에서는 일찍이 교제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가·피해자 분리조치 등 피해자의 보호 범위를 정서적으로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폭력’인지 등으로 폭넓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하는 ‘의무체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영국은 지난 2016년부터 신체적 폭력이 없는 강요·통제만으로도 최대 5년의 징역형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한 바 있다. 일본도 지난 2013년부터 교제폭력도 가정폭력과 같은 법률을 적용하고 있다.



교제폭력의 현주소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의 발생은 매년 가파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2020년 경찰이 검거한 교제폭력 피의자 수는 8951명이었는데 지난해 1만 3939명으로 55.7%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속 수사율은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2020년 검거된 8951명 중 구속된 피의자는 212명에 불과했는데 2021년에는 1만 538명 중 216명, 2022년 1만 2828명 중 214명, 2023년 1만 3939명 중 310명 만이 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았다. 교제폭력의 범위와 기준 등 명확한 개념과 정의가 없을 뿐더러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한 폭행이 일반적인 폭행죄의 범주에서 처벌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교제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자 정치권에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년 가정폭력의 범위에 교제폭력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가정폭력방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를 포함한 총 4건의 관련 법안이 연이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 가정폭력특별법의 범주에 교제폭력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의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전히 관련 법안들이 계류하고 있어 해결이 요원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세지는 강도, 높아지는 빈도…교제폭력의 마수



지난해 서울 금천구에서 남자친구와 싸우다 폭행 당해 신고한 후 피해자 조사를 받고 나오던 40대 여성 A 씨는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친구 30대 B 씨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와 임시숙소를 권유했지만 거절 당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1년 여 동안 동거를 하던 사실상 사실혼 관계였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가정폭력, 스토킹 범죄의 처벌법에서 규정하는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교제폭력은 비교적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로 재차 범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재범, 혹은 그 이후 추가 범행에 이르러서는 이전 범행보다 더욱 대범해지고 흉악해질 가능성도 높다.

지난 6일 발생한 강남역 교제살인의 사건현장인 건물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굳게 잠겨있다. 이승령 기자


지난 6일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의대생 교제살인의 피의자 최 모(25)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집착과 증오로 얼룩진 그릇된 ‘사랑’이 결국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난 이번 사건으로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피해자의 친언니라고 소개한 한 인물은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글을 게시하면서 이전부터 최 씨가 자살을 한다며 위협을 이어왔다고 적었다.

게시글에 따르면 피해자는 오래전부터 위협과 언어폭력 등 교제폭력에 시달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 위협이 반복돼 폭력의 강도가 세지기 전에 신속한 분리조치가 이뤄졌다면 참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안은?



교제폭력은 한 번의 범행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조기에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인지 후에는 강력한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교제폭력이 살인으로까지 비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양형 기준이 세심하게 돼있지는 않다”며 “양형에 있어 대단히 엄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률이라는 것이 사후적인 규제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지만 양형 기준을 현힐화 해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예방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스토킹, 가정폭력과 같이 강제적인 분리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사실상 일반 형법의 틀에서 관리되고 있어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교제폭력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부모, 가족까지 해치는 경우가 있어 주변의 도움을 통한 문제해결보다는 공권력의 개입이 필요하다”면서도 “관련 법안이 현재 없는 상황에서 형법을 적용해 처벌해야 하는데 ‘반의사불벌’이 걸림돌이 된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 처벌에 동의하지 않는 한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허 조사관은 이어 “처벌의사를 묻기보다 피해자가 처해있는 상황을 정확히 물어보고 보호시설이나 상담 등 분리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필요하다”면서 “교제폭력 관련 법을 제정하거나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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