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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가보니
‘인간다운 죽음’ 고민하는 이들
“절대 연명의료 안 받아” 손사래
경기도 성남 중원구 보건소에 설치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소 전경. 성남=최다희 인턴기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과정을 경험한 우리 가족 6명이 모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약했어요. 두렵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죠.”

경기도 성남 중원구보건소의 상담사 송인순(70)씨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오는 이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피치 못할 상황에서 ‘생명 연장용 치료’ 대신 죽음을 서약하러 오는 이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명의료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이 송씨의 일이다.

최근 방문한 중원구보건소는 성남시에서 운영하는 3개의 출장 상담소 중 한 곳이다. 이곳에 사전연명의향서를 접수하면 향후 유사시 산소호흡기 부착,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의료가 진행되지 않는다. 의학의 힘에 기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은 의향서 제출에 앞서 이곳에서 자신의 선택과 관련한 충분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날 보건소를 찾은 몇몇 시민들은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팜플렛을 주의 깊게 읽었다. 일부는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2년 전에 의향서를 작성했다는 60대 백모씨는 연명의료 의사를 묻는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백씨는 2007년 출근길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출혈로 쓰려져 4년간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한다. 현재도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그는 “부모님 연명치료 받게 하겠다고 자식들이 무리해서 대출까지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인공호흡기를 끼고 눈만 깜빡깜빡하는 채로 머무는 비용만 하루 90만원이다. 내 가족들이 그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하겠나”고 말했다.

백씨는 뇌출혈 후유증으로 마비가 와 한동안 아내가 갈아주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의존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수술이 끝나고 보름 만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려다 간병인에게 ‘구조’된 날을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백씨는 마지막 순간이 오면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조용히 눈 감겠다는 의사를 가족들에게도 분명히 전달했다고 했다. 사위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은 애써 못 들은 척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당구 보건소 상담을 총괄하는 마영진(67) 호스피스코리아 감사는 “죽을 때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오는 60~70대 노인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인간다운 죽음’도 연명의료 거부 의향서 작성자들의 가장 큰 희망이자, 고민 지점이다. 마 감사는 “온갖 기계에 연결된 채로 의식도 없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심폐소생술이나 항암치료를 하며 죽음에 이르는 것보다는 며칠 덜 살더라도 마지막 순간을 인간답게 마무리하는 게 존엄사”라고 말했다.

마 감사의 기억 속 ‘존엄한 죽음’을 앞둔 이들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삶을 살다 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대 교수를 지낸 A씨와 국가인권위원회 고위간부로 일했던 B씨 사례를 얘기했다.

A씨는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임종 직전까지 매일 병실로 대학원생들을 불러 논문 지도를 했다고 한다. B씨는 마지막까지도 병원을 퇴원해 관직에 복귀하겠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인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역설했다. 마 감사는 그 두 달 뒤 B씨의 이름을 신문 부고란에서 봤다고 한다.

마 감사는 약 7년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를 하며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그는 죽음이란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죽음은 봐도봐도 슬프고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엄숙하고 무거울지라도, ‘죽음’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마 간사는 “태어난 순간부터 숨 끊어지기 직전까지가 삶이라고 한다면, 그 마지막 순간까지를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것이 ‘웰다잉’의 의미”라며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는 따지고보면 ‘존엄한 삶’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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