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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 앓는 10대들 급증세

서울 중구에 사는 중학생 A양(14)은 친구들과 아이돌 안무 영상을 보는 것이 취미다. 춤을 좋아하는 A양은 본인의 SNS에 여자 아이돌의 안무를 따라 춘 짧은 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A양이 올린 영상에는 “다리가 뚱뚱하다” “아이돌이랑 몸이 다른데 무슨 자신감이냐” 등 외모를 지적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충격을 받은 A양은 아이돌과 다른 자신의 신체에 불만을 느끼게 됐다.

이때부터 A양은 살이 찔까봐 먹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섭식장애를 앓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을 아예 먹지 않거나 종일 물만 마시다 새벽에 갑자기 폭식하고, 다시 토하는 일을 반복했다.

A양 부모는 10일 “원래 고기, 채소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던 아이였는데 두 달 전부터 음식을 갑자기 벌레 보듯이 하고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며 “그러다 새벽에 갑작스레 라면을 끓이고, 밥통에서 밥을 퍼먹다가 변기에 먹은 걸 다 토하곤 한다”고 했다. 부모의 권유로 A양은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A양은 현재 키 155㎝에 몸무게 40㎏을 겨우 넘는 상태다. 체질량지수(BMI)를 계산하면 저체중으로 분류되는 수준이다.


A양처럼 성장기 청소년이 지나치게 마른 몸을 선망하면서 섭식장애로 이어지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6세 이상 17세 이하 소아·청소년 6275명을 대상으로 2022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6개월간 실시한 ‘2022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아(6~11세)의 1.0%, 청소년(12~17세)의 2.3%가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폭식증, 폭식 장애를 모두 통합해 섭식장애로 집계됐다.


음식을 거부하는 유형의 섭식장애는 특히 여성 청소년에서 두드러졌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경우 여성 청소년 3.0%, 남성 청소년 1.8%로 여학생이 섭식장애를 겪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빅데이터개방 포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신경성 식욕부진’으로 내원한 10대 환자 수는 총 598명으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10대 여학생은 전체 10대의 약 93%를 차지해 성별 간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10대가 많이 쓰는 SNS나 유튜브 콘텐츠 등을 통해 비정상적인 신체 기준을 자주 접한 청소년은 본인의 몸을 왜곡해 바라본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심리적 어려움도 함께 겪는 경우가 많다.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B양도 “주변 친구 중에 M 사이즈를 입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며 “이런 사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이 찌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얘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섭식장애를 겪는 청소년 중에는 대인기피증, 우울증, 자해 탓에 아예 학교를 자퇴하고 상담을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게에서 아주 작은 옷들을 파는 것이 흔한데 이런 옷이 자기 몸에 맞지 않으면 본인이 뚱뚱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며 “외견상으로는 날씬해 보이지만 마른 비만으로 생리 불순을 겪는 등 신체가 건강하지 않은 몸을 이상적인 체형으로 받아들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10대 청소년들은 트위터, 유튜브 등 SNS에서 섭식장애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Anorexia)을 합친 신조어 ‘프로아나’를 SNS에 검색하면 수백 건의 게시물이 이어진다.

주로 극단적인 식이요법을 공유하며 원하는 몸무게가 될 때까지 서로 격려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마른 몸의 아이돌 사진과 함께 ‘굶으면서 운동도 하는데 마음이 힘들 때 같이할 친구 찾아요’ ‘섭식장애 1년 차,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매) 되는 게 간절한데 서로 지켜봐 주고 응원할 사람 구한다’ 등의 글을 주기적으로 올린다. C양은 “온라인으로 마른 몸매가 될 친구를 찾아 연락처를 주고받고 몸 사진, 몸무게 등을 매일 공유한다”며 “힘들 때는 마른 아이돌 사진을 공유하는 등 계속해서 살을 빼기 위해 서로 감시하고 격려한다”고 말했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섭식장애를 앓으면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안주란 백상 식이장애센터장은 “내분비계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월경을 아예 하지 않는 ‘무월경’이나 뼈가 약해지는 골다공증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신체적 영양 결핍을 넘어 심리적으로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안 센터장은 “음식을 거부하는 섭식장애 사고가 당연하게 자리 잡으면 병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태까지 이른다”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강박, 자해, 중독 등도 파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마른 몸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센터장은 “아직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은 미디어가 주는 메시지의 영향을 성인보다 크게 받는다”며 “마른 연예인이나 모델의 몸을 극찬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성들이 대단한 성취를 해냈다는 식의 메시지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도 “미의 기준을 ‘건강함’ 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스스로를 맞춰가기보다는 자존감을 지켜나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일상 대부분을 보내는 교육 현장의 역할도 중요하다. 안 센터장은 “보통 학교당 1명씩 배치되는 보건교사보다는 매일 학생을 지켜보는 담임 선생님이 섭식장애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문제가 발생해도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다”며 “섭식장애 유병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직원을 비롯한 어른들의 정확한 인식과 관심이 필요한데, 빠르게 개입해야 치료 효과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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