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중위 소득으론 중위 아파트 못 사 
고물가·학원비·빚에 사실상 궁핍
윤 ‘중산층중심시대’ 물가·집값부터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에 매물이 감소하면서 전셋값이 지난해 5월 넷째 주부터 51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9일 발표한 주간아파트가격동향을 보면 5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0.09% 오르며 전주 대비 상승 폭이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이날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주부 김모(49)씨는 격주 토요일 밤마다 동네 마트가 문 닫기 직전 장을 본다. 다음 날이 정기 휴일이라 유통기한이 임박한 유제품과 과일, 채소 등을 평소보다 큰 폭으로 할인 판매하기 때문이다. 사실 김씨 남편의 월급은 명목상 700만 원으로, 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세금 떼고 손에 들어오는 550만 원에서 반토막은 중고교에 다니는 두 자녀의 학원비로 증발한다. 이어 전세 대출 이자에 아파트 관리비와 제세 공과금까지 내고 나면 생활비는 늘 쪼들린다. 김씨는 “1+1이나 세일에만 손이 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소득이 많아도 내 집이 없다면 중산층이라고 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 보고서가 화제다. 실제로는 고소득층인데도 스스로를 중하층이라고 여기는 이들, 중산층임에도 하층이라고 낮춰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다. 설문에서 월 소득 700만 원이 넘는 고소득 가구 중 자신을 하층이라고 여기는 비율(12.2%)은 상층이란 비율(11.3%) 보다 컸다. 중산층도 40%는 자신을 하층으로 인식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중산층에 대한 기준과 인식에 큰 골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산층 기준은 중위소득의 75~200%다. 이를 적용하면 월 소득 400만~1,100만 원(4인 가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범위를 똑같은 중산층으로 묶는 건 정서상 안 맞는다. 대다수 국민은 소득보다 자산을 더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 적어도 아파트 한 채는 있어야 중산층이라고 여긴다는 이야기다. 또 자동차는 그랜저 이상, 해외여행도 1년에 한 번 이상 가야 중산층이라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중산층의 제1조건인 내 집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3,500만 원이다. 전체 가구의 60% 가까이는 순자산이 3억 원도 안 된다. 반면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9억 원, 전세 중위가격은 5억 원 안팎이다. 평균 순자산으론 중간값 정도의 서울 아파트 전세도 못 얻는다는 얘기다. 소득 기준으로 보면 중산층에 속하지만 집 한 채도 살 수 없는 이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집을 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서울 중위소득 가구가 아파트를 매수하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소득의 4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찐중산층'이 되기 위해 '영끌'을 한 이들은 지금 빈곤층과 다름없는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다. 소득은 분명 상류층이나 중산층이지만 실제 생활은 우리가 떠올리는 중산층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설문에서 스스로를 한 계단 이상 낮춘 계층으로 자학하며 답한 까닭이다.

이 외에도 월급 빼곤 다 오른 물가로 중산층의 삶이 예전만 못한 것도 주요 배경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상대적 박탈감을 더 키운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분명 많은 연봉을 받는데도 SNS를 보면 자신보다 더 벌고 화려하게 사는 이들만 있는 것 같다.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울증과 불행이 시작된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기웃대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역대 정권마다 ‘중산층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서민은 중산층으로 올라서고 중산층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중산층은 고물가에 사실상 하층으로 추락한 것으로 느낀다. 집을 갖고 싶은 중산층이 미친 집값으로 꿈을 이룰 수 없다면 계층은 계급으로 고착될 수도 있다. 물가와 집값부터 정상으로 만들어야 중산층 시대도 열 수 있다.

박일근 논설위원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2660 스무살 넘는 고양이 흔하다? 기대수명은 훨씬 짧은 ‘11.7년’ 랭크뉴스 2024.05.10
22659 '전기료 3차례 인상' 한전, 3개 분기 연속 흑자 랭크뉴스 2024.05.10
22658 불난 전기차 문 안 열려 일가족 사망했는데…中 업체의 '황당 해명' 랭크뉴스 2024.05.10
22657 "부끄럽다" '역풍'맞더니 "재표결하면 당당하게‥" 랭크뉴스 2024.05.10
22656 현대엔지니어링, 무안군 아파트 대규모 하자에 “깊은 사과” 랭크뉴스 2024.05.10
22655 또 무분별하게 퍼진 ‘유튜브 살인 영상’···모방범죄, 피해자 인권침해 우려 랭크뉴스 2024.05.10
22654 ‘취임 2주년’ 尹, 청계천·시장골목 찾아 “물가 잡겠다” 랭크뉴스 2024.05.10
22653 강남역 '교제살인' 의대생 프로파일러 면담…'사이코패스' 검사는 안 해 랭크뉴스 2024.05.10
22652 ①내말대로 해 ②너 때문이야 ③나 버리지마... 교제폭력엔 '전조증상' 있다 랭크뉴스 2024.05.10
22651 네이버 ‘라인 로그아웃’ 직전에야…정부, 일본에 ‘뒷북’ 유감 표명 랭크뉴스 2024.05.10
22650 ‘라인야후’ 사태 한·일 외교전으로… 韓 정부 “경영권 이미 소프트뱅크에 넘어가… 日 정부에 유감”(종합) 랭크뉴스 2024.05.10
22649 "할아버지가‥" CCTV에 경악, 7살 딸 엄마의 호소 "제발‥" 랭크뉴스 2024.05.10
22648 입 연 류준열 “사생활” 배성우 “죄송”…논란으로 뜨거웠던 ‘더 에이트 쇼’ 현장 랭크뉴스 2024.05.10
22647 尹 '취임 2주년' 지지율 24%… 박근혜·노태우보다 낮은 역대 최하위[한국갤럽] 랭크뉴스 2024.05.10
22646 홍준표 "윤 대통령은 부득이 모시지만, 한동훈 용서 어려워" 랭크뉴스 2024.05.10
22645 제주4·3 ‘총살 거부’ 문형순 서장 호국원 안장…94살 생존자 참석 랭크뉴스 2024.05.10
» »»»»» [메아리] 월 700만원도 중산층이 아닌 이유 랭크뉴스 2024.05.10
22643 현장행보 재개한 尹대통령, 일성은 "장바구니 물가 잡기"(종합) 랭크뉴스 2024.05.10
22642 "24시간 폰 켜두고, 주말 쉴 생각마" 희생 강요 부사장의 최후 랭크뉴스 2024.05.10
22641 전두광 이어 또 욕망캐 맡았다…황정민, 2년만에 연극 복귀 랭크뉴스 202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