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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원 보궐선거 참패에 굳은 표정 짓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4월 28일 일본에서 공석이 된 중의원(하원) 국회의원을 뽑는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3개 선거구에서 투개표가 실시됐는데 집권 자민당이 모두 패했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이 3석을 모두 가져갔다. 이에 따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겸 자민당 총재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국민들은 왜 자민당, 기시다 총리에게 등을 돌렸을까.
자민당, 중의원 3석 모두 잃어
일본의 직전 중의원 총선거는 2021년이었다. 중의원 의석수는 총 465석인데 자민당이 261석을 얻었다. 과반인 233석을 훨씬 넘는다. 자민당과 손잡은 공명당 32석을 더하면 범여권이 293석으로 압도적이다.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래 지금까지 장기 집권하고 있다.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적이 있지만 3년 만에 되찾았다.

보궐선거는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사망하거나 사직해서 공석이 생기면 실시된다. 일본은 공석이 발생하면 1년에 두 번, 4월과 10월 넷째 주 일요일에 보궐선거를 치른다. 이번 보궐선거는 3개 지역에서 진행됐다. 도쿄 15구, 시마네 1구, 나가사키 3구 등 3개 선거구다. 세 선거구 모두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이 차지하고 있던 곳이다.

도쿄 15구는 기존 자민당 의원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물러나면서 공석이 됐다. 시마네 1구는 작년에 기존 자민당 의원이 사망하면서 자리가 비었다. 나가사키 3구는 기존 자민당 의원이 ‘비자금 스캔들’로 사퇴했다.

도쿄 15구와 나가사키 3구는 기존 자민당 의원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난 곳이기 때문에 자민당이 후보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누가 당선되든 자민당으로선 지역구를 잃는 것이기 때문에 부전패를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시마네 1구에는 자민당이 후보를 냈다. 전직 재무 관료 출신을 공천했는데 시마네 1구는 일본이 선거제를 개편한 1996년 이후 자민당이 한 번도 진 적이 없어 ‘보수의 왕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기시다 총리 등 주요 자민당 정치인이 시마네 1구를 찾아가 지원 유세를 펼쳤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지면서 3전 전패를 당했다.
자민당의 파벌 정치
이번 선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처음 치러진 선거여서 자민당에 대한 국민 여론이 이미 악화했기 때문이다.

비자금 스캔들은 근본적으로 자민당의 ‘파벌 정치’에서 비롯됐다. 자민당에는 6개 파벌이 있다. 파벌은 소속 의원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조직이다. 각 파벌은 수장의 이름으로 불린다. 소속 의원 수가 많은 순서대로 보면 아베파, 아소파, 모테기파, 기시다파, 니카이파, 모리야마파다.

파벌별로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여는데 ‘파티’라고 부른다. 파티 티켓을 판매해 거둔 수입으로 소속 의원에게 활동 자금을 지원한다. 여름과 겨울에 지급하는 얼음값, 떡값 등 보너스도 있다. 일본에선 불법이 아니다. 모두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록하고 합법적으로 쓰는 돈이다.

파벌 소속 의원은 지원 받은 자금을 운영비, 인건비로 쓰고 다음 선거에도 사용한다. 각 의원은 자금 지원 대가로 소속 파벌 수장이 당 총재에 당선될 수 있도록 밀어준다. 파벌 수장과 소속 의원은 공생관계다.

파벌 정치가 ‘권력 투쟁’만 일삼는 것은 아니다. 각 파벌은 서로 정책 경쟁을 벌이며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 일본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자민당의 역할도 컸다. 자민당이 1955년 이래 장기 집권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에선 민주당이 자민당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인식도 많다. 2009년 민주당에 기회를 줬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미숙한 대응에 실망하며 이런 인식은 더 강화됐다.
비자금 스캔들에 지지율 추락
문제는 그동안 자민당 일부 파벌이 파티 티켓을 할당량 이상 판매한 소속 의원에게 초과분을 다시 넘겨주는 관행에서 비롯됐다. 예를 들어 A 의원에게 5000만원어치 티켓을 할당했는데 1억원어치 판매하면 5000만원은 돌려주는 식이다. 일부 의원은 이렇게 돌려받은 자금을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뒷돈’ 의혹이 불거지자 일본 국민들이 돌아선 것이다.

자민당 각 파벌은 결국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은 아소파만 제외하고 모두 해체했다. 자체 징계도 실시했다. 총 39명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는데, 그중 2명에게는 ‘탈당 권고’라는 중징계 조처를 했다.

그런데도 일본 국민들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징계 대상에서 기시다 총리가 빠진 탓이다. 국민들은 기시다파 수장이자 당 총재인 기시다 총리도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더 많았다.

결국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궐선거 직전인 4월 22일 발표된 일본 신문사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20%대에 그쳤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 25%,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는 각각 26%, 22%에 불과했다. 20%대 지지율은 일본에선 정권 퇴진 위기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수치다.
근본 문제는 ‘경제’
비자금 스캔들이 자민당과 기시다 총리에게 치명타이긴 했지만 사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해 6월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경제 정책에 실망한 국민들이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경제는 오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다. 기업 실적은 올해까지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업 실적에 주가도 반응, 닛케이지수는 올해 사상 처음 4만 선을 넘었다.

문제는 대부분 서민은 일본 경제 부활을 체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가는 뛰는데 임금은 못 따라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물가는 4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은 2.6% 감소했다. 올해 정부 시책에 맞춰 기업들이 앞다퉈 임금을 올리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이미 늦었다는 평가다.
난국 돌파책은
기시다 총리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의회 해산권을 쓸지 주목된다. 일본 총리는 다른 나라 통치자에겐 없는 막강한 권한인 의회 해산권을 갖고 있다. 실제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써왔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역대 총리들은 하나같이 중의원을 해산한 뒤 본인의 공천권과 선거 자금 지원, 지원 유세 등을 통해 자신의 지지 기반을 늘리는 전략을 써왔다. 실제로 일본은 1947년 첫 선거 이후 중의원이 임기 4년을 다 채운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의 경우 지지율이 매우 낮아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치렀다간 정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게 자민당의 우려다. 이에 따라 자민당 내에서 기시다 총리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9월 총재 선거를 통해 ‘간판’을 바꾸고 다시 중의원 총선거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9월까지다. 다만 ‘포스트 기시다’를 두고선 아직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기시다 총리에게 반전의 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6월에 소득세·주민세 감세를 시행한 뒤 지지율을 끌어올려 재선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의 저자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교수는 “일본 정치는 이전투구 양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 충분히 조율을 거친다”며 “자민당은 9월 총재 선거 전 협의를 거쳐 어떤 식으로든 타개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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