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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8일 변론준비기일에 참석한 강귀원씨(맨 왼쪽)를 비롯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강씨는 3월10일 사망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제공


장현은 | 법조팀 기자

“변호사님, 다른 재판이긴 한데요, 피해자 한 분이 또 돌아가셨어요.”

재판 방청을 끝내고 부리나케 원고 쪽 변호사를 따라나서던 중, 흘러가듯 한 문장이 귀를 스쳤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09호 법정 앞, 26명의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이 끝나고 피해자들과 섞여 법정을 나오던 길이었다. “인정된 배상 금액이 너무 높다”는 정부의 항소로 진행된 이날 2심 첫 재판에서 원고 쪽은 “피해자 중에는 고령이고 가난한 분들이 많아 적기 보상을 위해서는 빠른 진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미, 또’ 누가 사망했다니.

그날 오후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재판에 관한 취재를 하다가 슬쩍 물었다. ‘근데요. 아까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또 돌아가셨어요?’

그가 말한 ‘또 다른 죽음’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로 첫 재판을 기다리던 강귀원(64)씨 이야기였다. 현재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18건 이상의 1·2심이 진행 중인데, 강씨도 원고 중 한 사람이었다. 지난 2월 법원에서 2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 차진철(73)씨가 이미 선고 반년 전에 사망했단 소식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이 대표는 연락이 닿지 않던 강씨가 걱정돼 지난 3월 그의 주소지를 찾아 대전에 갔다가 “강씨가 3일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지방자치단체 행정복지센터와 이 대표 등을 취재해 그의 죽음을 기사화했다. 차상위 계층, 몸과 마음의 장애, 무연고 장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겐 너무 익숙한 그 단어들을 그 역시 피해 가지 못했다. 이 대표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지난 1월 이 대표의 손을 붙잡고 “살기 너무 힘들다” “악몽을 너무 많이 꾼다”고 했던 그는 3월10일 홀로 잠을 자다가 돌연사했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을 그의 삶의 쳇바퀴는 다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고통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기자가 되기 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대학 때 인권학회에서 국가 폭력을 공부하며, 국회 앞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농성 텐트를 찾은 적이 있다. 보상받지 못한 수십년의 삶에 대해 피해자들이 한창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였다. 지난 202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거사법)이 통과하기 전이고, 진실화해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정의하기 전이었다. 입사를 준비할 때도, 기자가 된 뒤에도 가장 취재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형제복지원 사건을 꼽기도 했다. 결국 법원 취재를 맡고서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다시 마주했다. 이제 국가가 인정한 ‘피해자’가 됐고, 보상 받을 근거도 생겼다. 하지만 긴긴 재판과 정부 항소 탓에 그들의 고통은 여전히 줄지 않았다.

이왕 늦었으니 조금은 더 늦어져도 된다는 듯이, 우리 사회가 이제 이 사건에 너무 무감해진 건 아닐까. 취재를 하는 나에게조차 어느새 ‘여느 배상 사건’ 중 하나가 된 건 아닌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강씨의 죽음이 내게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9일 강씨의 자리가 빈 채로 마침내 이 사건의 첫 재판이 열렸다. 그가 재판에 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재판 방청을 향한 발걸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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