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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농촌문화체험특구장 내 설치된 말머리 모양 조형물. 김정석 기자
지난 7일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농촌문화체험특구장. 농업전시관과 동물농장·캠핑장 등이 조성된 이곳에 거대한 조형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투구를 쓰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말머리 상 ‘왕국의 혼’이었다.

고령군이 2015년 철기문화 상징인 대가야 기상을 표현한다며 청동으로 만든 높이 7m짜리 조형물이다. 말머리 상 옆으로는 대가야 최초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지산동 73호분에서 출토된 봉황무늬 환두대도(環頭大刀·손잡이 부분에 둥근 고리가 있는 칼)를 묘사한 조형물도 보였다. 이들 조형물을 만드는 데 세금 6억5300만원이 들었다.



수억 들여 만들었는데 “흉물” 민원
애초 이 조형물은 고령군 대가야읍 관문에 위치한 교차로 길가에 세웠다. 하지만 주민들이 흉물스럽다는 민원을 잇달아 제기하면서 2017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이후에도 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조형물 눈동자가 무섭게 생겼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고령군 대가야읍 주민 김성덕(50)씨는 “말머리상을 가까이에서 보면 눈빛이 무섭고 밤에는 더 흉물스럽게 변해 기분이 좋지 않다”며 “비싼 세금을 들여 흉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위치를 옮긴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번개시장에 있는 2m 크기 누렁이 형상 조형물도 비슷한 처지다. 누렁이는 원래 1만원권 지폐를 물고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가 누렁이를 여러 차례 들이받으면서 지폐 모양이 파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강원 춘천시 소양로 번개시장에 있는 2m 크기의 ‘돈을 물고 있는 누렁이’ 조형물. 박진호 기자
누렁이 조형물은 2014년 ‘문화마을공동체사업’ 목적으로 설치됐다. 당시 ‘낙후된 번개시장 명성을 되살려줄 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상인 의견을 반영해 5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이후 각종 사고로 파손된 조형물이 수년째 그대로 방치되면서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9일 문화체육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공공조형물은 2만3700여 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작품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치단체장 ‘치적 쌓기’ 목적 등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세금만 낭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아름다움·작품성 미달 경우 상당수
아예 철거되는 조형물도 많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경주공항 인근에 만든 꽁치 꼬리 모양 조형물이 대표적이다. 이 조형물은 포항이 과메기 특구라는 점을 널리 알리자는 차원에서 2009년 3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하지만 비행기가 추락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2019년 철거됐다.
10년 만에 철거된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은빛 풍어' 조형물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 여의도 한강공원의 영화 ‘괴물’ 조형물은 곧 철거될 전망이다. 1억8000여만원이 투입된 높이 3m, 길이 10m 규모의 괴물 조형물은 지난 10년간 흉물 논란에 휩싸여 있다가 최근 서울시 공공미술심의위원회가 철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 밖에도 김연아 선수와 전혀 닮지 않은 경기 군포 김연아 조형물(5억2000만원), 저승사자를 연상시킨다는 민원에 철거된 세종시 ‘흥겨운 우리가락’(1억500만원), 만든 지 7년 만에 최근 철거된 대구 순종황제 조형물(7억원)도 있다. 심지어 사기 전과가 있는 조각가에게 속아 복제품을 거액에 사들인 지자체도 있었다.



권익위 권고도 지자체 절반 무관심
일각에서는 공공조형물을 제작·설치하는 과정에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 정비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경기 군포시에 설치된 '김연아 동상'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공조형물 건립·관리 관련 조례를 만든 지자체는 243개 시군구 중 137곳에 그쳤다. 국민권익위가 2014년 공공조형물 관련 조례를 제정할 것을 지자체에 권고했지만, 절반가량이 이를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배재대 최호택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 특성이나 역사와 무관한 공공조형물 난립을 막고 주민과 충분한 소통 과정을 거쳐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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