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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경남 함안군 대산면 한 주택 내부가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경남도는 올해 4월부터 저장강박이 의심되는 취약계층을 취약계층을 '찾아가는 집정리 클린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발 디딜 틈 없어”…2.5t 쓰레기 나온 그 집
지난 2일 경남 함안군 대산면 한 주택. 권원정(50) 함안지역자활센터 EM환경사업단 팀장은 주택 문을 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 냄새 때문이었다. 권 팀장은 과거 고독사 현장도 정리했던 10년 차 ‘청소 전문가’다. 하지만 이런 그마저 1년 넘게 집 안에 방치된 쓰레기 더미에서 풍기는 악취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썩은 음식물과 곰팡이, 오랫동안 빨래 안 한 옷에 밴 체취까지. 냄새가 완전 코를 찔렀다”고 했다.

60대 후반의 홀몸 어르신 박모씨가 사는 약 50㎡(15평) 면적의 허름한 주택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먹다 남은 통조림과 먼지가 끈적하게 달라붙은 참기름·소주병, 누더기 같은 옷, 종이 박스가 거실과 방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장판은 썩고 문드러져 시멘트 바닥이 드러났다. 주방은 더 가관이었다. 물이 흐르는 싱크대 아래, 나무 재질의 찬장은 삭아서 구멍이 뚫렸다. 냄비에는 곰팡이로 뒤덮인 정체 모를 음식도 담겨 있었다.

마당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사발면 용기와 비료포대, 폐비닐·폐목재, 냉장고까지 쌓여 있었다. 박씨 집에서 나온 쓰레기양만 2.5t에 달했다. 권 팀장은 “작년 3월에도 청소해드린 적이 있었는데, 1년 새 다시 쓰레기가 쌓였다”며 “고령에 몸도 약하신데, 병에 걸릴까 봐 우려돼 서둘러 청소했다”고 전했다.
지난 2일 경남 함안군 대산면 한 주택 안밖에 쌓인 쓰레기를 함안지역자활센터 직원들이 치우고 있다. 이 집에서는 사흘간 2.5t 쓰레기가 나왔다. 사진 경남도

경남 함안군 대산면 한 주택의 싱크대 아래 찬장이 삭아서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집에서는 사흘간 2.5t 쓰레기가 나왔다. 경남도는 올해 4월부터 '찾아가는 집정리 클린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사람 잡는’ 쓰레기…‘클린버스’ 해결한다
경남도는 박씨 집에 쌓인 쓰레기를 ‘찾아가는 집정리 서비스’ 클린버스로 해결했다고 9일 밝혔다. 권 단장 등 청소 전문가 10명이 탄 클린버스가 방문, 사흘(2~4일) 동안 박씨 집에서 집청소·방역·폐기물 처리 작업을 했다. 장판과 벽지를 바꾸는 등 간단한 집 수선도 지원하기로 했다.

경남도와 시·군, 경남광역자활센터, 시·군청소자활사업단이 협업한 클린버스는 올 4월부터 추진 중인 ‘주거환경개선’ 사업이다. 저장강박, 안전취약, 화재위험 등 주거환경이 취약한 가구가 대상이다. 클린버스는 지금까지 함안·창녕 10가구 집을 찾아 말끔히 청소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장강박이 의심되는 이들에게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 등 여러 돌봄 서비스와도 연결해준다.

클린버스는 지난해 4월 발생한 한 화재 사망 사고를 계기로 만들었다. 경남 산청군 한 주택에서 불이 나 지적장애 모녀 중 40대 딸이 숨진 사고다. 이들 모녀에게는 ‘저장강박’이 있었는데, 집에 쌓아둔 쓰레기 더미가 화재를 키운 것으로 지적됐다.

경남 함안군 대산면의 한 주택에서 나온 쓰레기가 1t 트럭에 가득 실려 있다. 경남도는 올해 4월부터 '찾아가는 집정리 클린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경남도 “1회성 청소 아닌 상담·진료도 연계”
이렇듯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저장’하는 저장강박은 신체·정신적으로 취약한 이들에게 치명적인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다. 클린버스가 다녀간 노인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2월 집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 걸려 넘어지면서 다리와 고관절에 골절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쳤다. 거동이 불편한 그를 본 이웃이 지자체에 알리면서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됐다.

신종우 경남도 복지여성국장은 “저장 강박 의심 가구는 1회성 청소가 아닌 지속적인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경남형 통합돌봄과 연계해 상담과 진료, 안부 확인 등 다양한 지역사회 돌봄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해 지금 사는 곳에서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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