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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욱 정치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 2개월 즈음 ‘두 달 남은 듯 두 달 지난 윤석열 정부’라는 칼럼을 통해 대통령의 어퍼컷 세리머니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국정을 만만히 보다가는 남는 것은 임기 말 윤 대통령 본인의 늘어난 몸무게밖에 없을 것이며, 자기관리에 실패한 흘러간 복서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당시 칼럼은 크게 틀리지 않은 듯하다. 집권 2년을 맞은 윤 대통령은 덩치만 컸을 뿐 기초체력과 실력은 형편없는 복서임이 드러났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등을 보였고, 엑스포 유치 실패로 다리가 풀렸으며, 총선 참패로 그로기 상태가 됐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현실을 외면한다.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것은 ‘더는 못 봐주겠다. 너희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민심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지만, 대통령이 총선 민의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있음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확인됐다. 여론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김건희·채 상병 특검은 거부했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했다가 ‘현명하지 못해서’라고 표현만 바꿨을 뿐이다. 각종 의혹과 정책 실패에 대한 변명은 장황했고, 국민들이 바라는 사과는 찔끔 수준이었다. 고구마 10개는 먹은 듯 속을 답답하게 하는 회견이었다.

윤 대통령의 회견과 최근 민정수석실 부활 등을 지켜보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윤 대통령이 버티기, 이른바 ‘침대축구’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긴 것이다. 예컨대 민정수석실 부활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고 느슨해진 사정기관과 공직사회를 통제하겠다는 의도라고 여야 모두에서 의심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특검은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지켜본 뒤 논의하자고 했다. 시간을 끌면서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과 공수처 수사를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제어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 아닌가.

그러나 특검은 뭉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에 윤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대다수가 생각한다. 주가조작 가담 혐의, 양평고속도로, 명품백 수수 등 여러 논란을 해소하려면 김건희 종합 특검이 필요하다는 야당 주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윤 대통령은 경제공동체 논리로 최순실의 각종 비행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엮었다. 경제공동체로 탄핵을 끌어냈는데, 운명공동체인 김 여사 문제는 어떻게 대응할 건가.

무엇보다 침대축구도 기초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2주 연속 25% 밑으로 나타났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전 지지율과 비슷하다. 이런 체력으로 뭘 할 수 있겠나. 공직사회는 슬금슬금 등을 돌리고 있고, 보수언론도 대통령 태도를 비판한다. 아무리 격노하고 격앙해봐야 대통령의 고함은 이제 용산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심판이고 관객이기도 한 국민들은 침대축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한국 축구 보는 것도 속 터지는데 대통령의 침대축구까지 볼 순 없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방탄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여당의 108석은 성긴 그물이다. 제 코가 석 자인 여당이 언제까지 대통령 보호를 자처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여론에서 고립된 국정운영을 지속할 경우 성긴 그물 여기저기 구멍이 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궁지로 몰아가는 빌드업을 하고 있다.

<카사블랑카>의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유작인 <하더 데이 폴>(The Harder They Fall·1956)에는 덩치만 컸지 실력은 형편없는 권투선수 토로 모리노가 등장한다. 토로는 유리턱에 솜방망이 주먹을 가진 가망 없는 선수였지만, 자신의 프로모터가 상대 선수를 매수하는 덕분에 KO 연승을 거둔다. 토로는 자신을 실력자로 착각하지만, 매수가 통하지 않는 챔피언과 만나 패한다. 간신들의 아부에 속아 민심과 유리됐다가 총선에서 두들겨 맞은 대통령 모습이 겹쳐졌다.

그래도 영화 속 토로는 챔피언의 펀치를 맞으면 무조건 쓰러져 일어나지 말라는 주변 권유에도 정면으로 싸우는 식으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킨다. 윤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국정기조 바꾸겠다고 무조건 사과하고, 생살을 자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 말고 현 상황을 대처할 방법은 없다. 권투에선 패자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통치의 세계에서 패배는 훨씬 비정하다. 여론을 나몰라라 한 대통령의 말로는 항상 참담했다. 회견을 보면서 대통령의 불행한 퇴장이 그려졌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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