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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카페에 올라온 지난달 26일자 서울 서초구의 한 중학교 급식. 육아카페 갈무리


지난달 한 인터넷 육아카페에 밥과 국, 반찬 한 종류가 담긴 식판 사진이 올라오면서 서울 서초구 A중학교의 ‘부실 급식’ 논란이 확산했다. 누리꾼들은 “아이의 심한 장난 아니냐”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A중학교는 급식을 조리할 인력이 부족해 반찬 수를 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급식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학생들의 건강권까지 위태롭게 한 사례로 급식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취재를 종합하면 A중학교는 지난달까지 조리실무사 2명이 전교생 1043명의 급식을 조리했다. 당초 조리실무사 정원은 9명이었지만, 구인난으로 필요한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A중학교는 인력 부족으로 급식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지난 3월 ‘학교급식 중단 위기에 따른 학부모 긴급 의견 수렴’ 가정통신문을 내기도 했다. A중학교는 ‘개인 도시락 지참’ ‘3찬 운영’ ‘외부 운반급식’ 등의 선택지를 주고, 수요조사 결과에 따라 반찬 수를 4찬에서 3찬으로 줄였다.

A중학교의 조리실무사 구인난이 심했던 것은 식수 인원이 많아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A중학교 학생 수는 지난해 900명대였다가 올해 1000명을 넘겼다. 서울시교육청이 조리실무사 정원을 1명 늘렸으나 채우지 못했다.

A중학교 교장은 “채용되자마자 출근일이 되기도 전에 바로 퇴사하시는 분들이 생기면서 인력 부족 문제가 계속 누적돼 왔다”며 “노동력을 덜어드리고자 교육청으로부터 세척기기 대여비 예산을 받았으나 넉넉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식수 인원이 많아 조리량이 많다 보니 선호도가 낮다”며 “학생 수가 적은 학교들도 사람을 많이 구하는 상황이라 그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도 급식노동자는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결원이 많다. 학교 급식실은 환기시설이 부족해 조리 중 발생하는 발암물질 ‘조리흄’에 노출돼 폐암 발병률이 높다. 또 급식노동자 기본급은 월 198만6000으로, 최저임금(206만740원)보다 낮다. 또 방학 중 임금이 없어 생계유지도 어렵다. 건강 측면에서도, 경제적 측면에서도 노동환경이 열악한 탓에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학교에는 급식노동자 738명이 결원 상태다. 배정되더라도 6개월 이내 중도퇴사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55.8%).

수도권 급식실의 노동 환경은 더 미흡하다. 급식실 공간 확보가 안 돼 반지하 급식실을 운영하거나 휴게·환기 시설이 부족한 곳이 많다.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폐암 의심 급식노동자 338명 중 36.9%(125명)가 수도권 노동자였다.

서울시교육청은 A중학교의 급식을 민간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을 논의 중이다. 또 조리를 보조할 급식로봇을 도입할 방침이다. 김한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부장은 “당장의 대증적인 해법일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며 “1인당 식수 인원 제한 등 뚜렷한 대책이 몇 년째 나오지 않아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숨 막히는 학교급식실···“조리 환경 개선, 이 속도면 10년 더 걸려”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4곳만 학교급식실 환기설비 개선 목표치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오전 국...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404051517001

이번 부실 급식 논란은 교육 당국이 급식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건강권까지도 악영향을 준 사례다. 이재진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안전국장은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결원이나 신규채용 미달률이 높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건강한 식단을 못 먹을 수 있다는 것까지도 예견돼 왔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우려를 ‘맘충’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하는 여론이 확산해 급식노동자문제의 핵심을 가리게 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학생이 거짓말을 했을 거다” “허위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등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도 드러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육아카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드러났고, 학생 인권과 교권 간 대립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비하하는 분위기가 덧붙여지면서 아이들의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라며 “해결돼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편견 가득한 방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론장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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