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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장발장은행장 홍세화가 지난달 18일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현재의 모습으로 이야기되지만, 죽음은 그의 삶 전체를 드러낸다. 홍세화는 1947년 해방공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아나키스트로 8·15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새 가정을 꾸려 홍세화를 낳았다. 그 기쁨과 희망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세상 세(世), 고를 화(和),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며 세화라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하였고, 가정마저 파탄이 나 홍세화는 5살 때부터 외가에 떠맡겨졌다. 그러나 홍세화는 반듯하게 자라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 공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바로 그해 가을 아버지를 따라 선조의 묘가 있는 충남 아산군 염치면 황골 마을에 성묘 갔다가 남양 홍씨 집안 어른으로부터 6·25동란 때 황골 양민학살 사건에서 어머니와 함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민주화 운동으로 20년 망명 생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등장
‘톨레랑스(관용)’의 정신을 설파
장발장은행장으로 약자 옆 지켜

삶과 죽음, 국가와 민족, 전쟁과 평화, 이런 상념들이 온몸을 휩싸고 돌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민족적 비극의 현장 이야기를 몰랐다면 자신은 어영부영 한 생을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학업을 팽개쳐 낙제를 했고, 마침내 자퇴하고 말았다. 사람들과 말을 섞기 싫어서 입에 물을 한 모금 물고 다녔다고 한다. 사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 책을 열심히 읽고, 고전음악 감상에만 열중했다. 그러다 종로에 있는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에서 박일선이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호방한 풍모의 박일선은 방황하는 홍세화에게 다시 대학에 입학하라고 권했다. 그는 사랑을 붙잡기 위해 공부하여 1969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어 외교학과에 들어왔지만, 우리나라 외교의 총량이라는 것이 미국의 동아시아담당차관보 한 명의 역할만도 못함에 실망하고는 연극반장 임진택의 권유로 연극에 열중했다. 그러나 1971년 위수령이 발동되고 학생들이 군대에 끌려가는 폭압에 저항하여 ‘민주 수호 선언문’을 작성하여 배포하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군대로 끌려갔다.

1975년, 군에서 제대하였는데 유신독재는 날로 심하여 긴급조치가 발동되고 있음에도 정치권과 재야가 침묵으로 흐르는 것에 분개하여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 가담, 시내에서 반독재 삐라(전단)를 뿌렸다. 홍세화는 생계를 위해 1979년, 한 기업에 취직했는데 곧바로 유럽 지사로 발령이 났다. 그래서 파리에서 근무하던 중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에 망명하게 되었다.

그는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고국의 장래를 위해 고민한 것을 1995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로 펴냈다. 이 책에서 홍세화는 한국 사회에는 절대적으로 ‘톨레랑스’ 정신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톨레랑스는 상대방의 소견을 용인하는 관용이다. 그리고 이어서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1999년)를 펴내며 분단 현실의 극복을 설파하였다. 2002년, 홍세화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음을 확인하고 마침내 귀국하여 자기의 제2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한 언론사의 기획위원으로 있으면서 진보 논객으로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빨간 신호등』, 『결:거칢에 대하여』 등을 펴냈다. 그리고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에 온몸을 던져 잡지 ‘말과 활’의 편집·발행인, 진보신당 대표, 학벌 없는 사회의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그는 항시 공부를 중하게 여겨 학습공동체 협동조합 ‘가장자리’의 이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외국인 보호소에 갇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마중’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언제나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고자 했다. 그는 어려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그렇게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살아갔다. 그의 마지막 직함은 ‘소박한 자유인’의 대표였고, 벌금형을 받고 돈을 낼 수 없어 징역을 사는 이들에게 무이자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장이었다.

홍세화는 평생 무신론자였다. 그런데 작년 12월 15일이었다.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사촌 여동생이 성공회 이대용 신부님을 모시고 와서 기도를 해주었다. 이때 신부님이 기독교에 귀의할 것을 은근히 권하자 그러겠다고 했다. 이에 신부님이 세례명을 무어라 하면 좋겠냐고 묻자 홍세화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자신은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구원해준 미리엘 주교의 선행을 가슴 속에 담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겐 미리엘이라는 세례명이 부여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소설 속에 미리엘 주교가 있었고, 대한민국엔 현실 속에 미리엘 홍세화가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홍세화는 인생을 참 잘 산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1970년 서울대 문리대 교정 마로니에 그늘에서 만나 50년 넘게 함께 지낸 벗으로서 작별한다. “잘 가라! 세화야!”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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