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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계엄군의 성폭력 피해

40여년간 ‘2차 피해’로 고통

첫 증언 후 다른 증언 이어져


이제 나머지 숙제는 ‘우리 몫’

당신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아따 참 오래 걸렸네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이 진상규명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일부 계엄군이 자행한 강제추행·강간·성고문 등 피해 사건 중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조사를 위한 법적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과거사 성폭력 사건의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규명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한 피해자는 위원회로부터 “국가가 당신의 피해가 사실이라 인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숨 푹 놓이고 가벼워진 기분이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 심정이 이해됐어요. 피해를 인정받고 사과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예요.”

이들이 국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는 데는 43년이나 걸렸다. 1990년대만 해도 5·18민주화운동은 ‘폭도’에 의한 것으로 오도된 데다, 성폭력에 대한 가부장적 통념은 피해자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2018년 초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해 5월 김선옥씨가 공개 증언을 했다. 김씨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고 석방 전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고 그의 증언은 정부가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을 발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김씨는 증언 이후 더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2020년까지 세상에 자신의 피해를 알리기 위해 애썼지만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은 자녀들에게까지 상처를 줬다. 그는 광주를 떠났고 현재 암 투병 중이다.

‘회복되지 않은 피해’는 이들 생애 전반에 신체적·정신적·사회관계적 2차 피해가 지속되게 했다. 진상규명된 피해자 대부분이 사건 후 자살 충동을 느꼈고, 1회 이상 자살 시도를 한 경우도 많았다. 강간 피해를 입은 ‘6번 피해자’는 일부러 배움이 짧은 남자와 결혼했다고 말했다. 아들 둘을 낳았지만 양육도 벅찼다. 둘째 아들이 “술을 안 먹으면 그렇게 좋은 엄마가 왜 이렇게 다혈질적으로 변하냐”고 했지만 해줄 말이 없었다.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던 그는 “언제든 갈 사람이라 정을 주지 않으려 아들들을 보듬지 못한 매정한 엄마였다”고 술회했다. 강제추행을 당한 ‘7번 피해자’는 모유 수유 과정에서 ‘젖가슴이 더러워졌다’는 자기혐오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현재 은둔형 생활을 하고 있는 딸의 정서적 문제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애착을 형성해야 하는 시기에 딸을 밀어냈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죽지 않았기에 자신의 피해는 ‘작은 것’이라 달래왔다. “총상 입은 사람들과 행방불명자, 유족들을 생각하면 저희 피해는 작다고 느낍니다. 미안하고 빚진 마음도 여전합니다.”

40여년간 ‘피해’를 줄이고 감춰야 했던 이들에게 국가는 어떤 ‘책임 있는 조치’를 내놓아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위원회가 정리한 것처럼 “국가가 5·18 당시 성폭력 피해와 그들의 생애사를 관통해온 후유증에 대해 온전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너무 늦은 인정’에 대한 사죄다. 마지막으로 발화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16건은 시작일 뿐이다. 위원회는 조사 대상 사건 52건을 파악했지만 조사 거부로 중단된 사건이 24건, 피해자의 사망·자살·정신병 발병 등으로 진술을 들을 수 없는 사건이 10건이었다.

지난달 28일 5·18 성폭력 피해자 10명이 처음 만났다. 이들은 44년 만에 ‘피해자’에서 ‘증언자’로 세상에 나와 집단으로 첫발을 내디디려 한다. 이들은 앞으로 자조모임을 만들고 정신적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소송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위원회가 말하듯 “단 3명이 증언했다면” 진상을 규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피해자의 증언이 첫 진상규명 조사를 이끌어냈고 조사에 응한 19명의 피해자들이 40여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 또 다른 ‘증언자’가 됐다. 이제 나머지 숙제는 우리의 몫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44년 동안 자신의 피해를 감춰야 했던 이들의 아픔에 진심을 다해 손 내밀어야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이제야 손 내밀어 미안합니다”라고 말이다.

임아영 젠더데스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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