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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원구 아파트 전경./한국경제

최근 아파트 건설 공사비가 급증하자 여러 재건축 사업장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건설 자재 원가가 급등한 데다 주 52시간 준수 등 노동 환경의 변화, 그리고 층간소음 방지 등 과거보다 강화된 건설 규정으로 인해 건설 원가가 치솟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공사의 요구대로 공사비를 인상해 준다는 것은 조합원의 추가부담금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시공사와 재건축 조합 간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황금알 낳는 거위에서 계륵으로
이런 현상은 기존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신규 사업장에서도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전에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까지 불렸던 재건축 사업이 왜 계륵과 같은 신세가 되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

재건축 사업은 낡은 아파트를 부수고 그 자리에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이때 새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가는 공사비는 조합원이 부담해야 하는데 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조합원 수보다 많은 아파트를 지어 일반분양을 하고 그 이익을 공사비로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일반분양의 이익이 클수록 조합원의 부담이 적어지고 공사비가 비쌀수록 조합원의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겼던 재건축 사업장의 경우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기존 용적률이 비교적 낮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강남권 등 입지가 좋은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공사비의 경우는 입지가 좋은 곳에 짓는 것과 먼 시골의 산골짜기에 짓는 것이 다를 이유가 없다.

반면에 일반분양 수익의 경우는 다르다. 주변 집값이 비싼 곳에서 재건축을 할수록 일반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있기에 분양수익이 늘어난다. 그리고 기존의 용적률과 새 아파트의 용적률의 차이가 클수록 일반분양분이 늘어나서 분양수익이 커진다. 강남3구의 반포, 잠실, 개포 저층 재건축 단지들이 여기에 해당했었다.

문제는 과거에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막대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도한 규제가 가해졌다는 것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와 과도한 기부채납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규제하에서는 조합원의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재건축 사업에 대한 조합원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과거에 입지가 좋으면서도 기존 용적률이 낮은 재건축 사업장의 경우는 웬만한 규제에도 사업성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입지가 좋더라도) 기존 용적률이 높거나 (기존 용적률이 낮더라도) 입지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역의 재건축 사업장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과도한 규제 탓이라 하겠다. 이래서 지난 몇 년간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한 악재가 추가됐다. 공사비가 지난 1~2년 사이에 급등하면서 재건축 사업의 수익성을 크게 갉아먹고 있다.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월 전국 아파트 분양가는 1년 전에 비해 17.24%나 올랐다. 서울의 경우는 23.91%나 된다.

물론 분양가 상승분이 모두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것은 아니고 일부는 땅값 상승분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기존 집값이 오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분양가가 이렇게 많이 올랐다는 것은 땅값보다는 공사비가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법, 그러니까 현행 규제가 적용되는 상황하에서는 재건축 사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단지는 15개 고가 지역(강남구, 서초구, 과천시, 용산구, 송파구, 성동구, 마포구, 양천구, 광진구, 분당구, 강동구, 영등포구, 종로구, 동작구, 중구)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용적률이 낮은 단지에 불과하다.
진퇴양난에 빠진 재건축사업하지만 재건축 대상 아파트, 다시 말해 준공 후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이들 고가 지역에만 위치한 것이 아니다. 전국에서 낡은 아파트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노원구로서 무려 8만2451채가 30년이 넘었다. 더구나 이 통계도 2022년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니 2024년 기준으로 보면 훨씬 더 많은 낡은 아파트가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겠다.


노원구를 포함하여 30년이 넘는 낡은 아파트가 2만 채 이상 있는 도시는 전국에서 26개 지역이다. 그중에서 서울은 6개 지역에 불과하고 경기도와 인천이 10개 지역, 그리고 지방이 10개 지역이다. 상당 지역이 저가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고가 지역에 비해 저가 지역의 재건축이 얼마나 불리한지 알아보자.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으로 강남구 아파트의 ㎡당 평균매매가격은 2663만원이다. 이에 비해 노원구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 974만원이다.

아파트 1㎡를 짓는데 공사비가 500만원이라면 강남구에 있는 재건축 단지는 ㎡당 2163만원(=2663만원–500만원)의 분양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에 비해 노원구는 ㎡당 474만원(=974만원–500만원)의 분양수익밖에 남지 않는다. 강남구 재건축 단지 수익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수익도 공사비가 500만원이라는 가정하에서의 계산이다. 공사비가 계속 올라서 공사비가 ㎡당 1000만원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강남구의 경우는 수익이 줄어도 재건축이 불가능한 지경은 아니다. 분양수익이 ㎡당 1663만원씩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원구의 경우는 공사비가 집값을 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노원구 재건축 조합원의 입장에서는 분양 수익은커녕 분양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에서는 기존 용적률이 높아서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단지를 중심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게 되면 일반 분양분이 늘어나므로 재건축 사업성이 개선된다. 규제 일변도였던 과거 정책에 비해 진일보한 정책이라 하겠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 환경이 악화되는 추세를 막기에는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정부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 입었던 두꺼운 옷을 날씨가 더운 여름까지 입을 수 없다”고 한 국토교통부 장관의 언급은 정확한 지적이다. 재건축 사업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와 같이 규제에 규제를 쌓아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문제는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나 기부채납 축소 등의 굵직한 사안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야의 정책적 합의 없이는 이룰 수 없는 부분이 많은 만큼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재건축 사업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과거에는 초고가 지역인 강남3구의 용적률이 낮은 단지 위주로 재건축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수익이 컸던 것이다.

2022년 기준으로 전국에 30년이 넘는 아파트는 총 173만 채 정도 있다. 그중에서 강남3구에 있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5.7%에 불과하다. 나머지 94.3%에 해당하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지금과 같은 규제하에서는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 5.7%를 대상으로 한 규제가 나머지 94.3%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변한 만큼 정치권도 변해야 한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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