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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제주 남원의 옛 한라봉 창고에서 김창옥 강사를 만났다. 그는 꽤 넓은 이 공간을 아무 것도 안 하는 곳으로 쓰려 한다고 했다. 서귀포=강정현 기자
'소통령(소통 대통령)'으로 불리는 스타 강사 김창옥(51)을 만나러 지난달 제주 남쪽 끝에 갔다. 코로나 이전부터 한 달에 일주일은 무조건 고향 제주에서 보낸다고 했다. 한적한 제주 시골집을 상상했는데, 그를 마주한 곳은 줄지어있는 비닐하우스 한복판에 있는 휑한 옛 창고 건물이었다. 더는 쓰지 않는 지인의 한라봉 창고를 월세로 빌려 바닥을 직접 손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공간으로 쓸 생각"이라고 했다. 너른 정사각형 테이블 위에 각자 아이스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시작한 대화가 3시간을 훌쩍 넘겼고, 자리를 옮겨 이른 저녁 식사까지 2시간을 함께하고서도 이야기를 미처 다 마무리 짓지 못했다.

못 듣는 아버지와 글 모르는 엄마
돈·실력 대신 상처·결핍 가득했던 나
행복할수록 선명해지는 죄의식
외면 아닌 대면 해야 자유 오더라
술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던 청각장애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해학 섞인 걸쭉한 해남 사투리 욕설로 맞섰던 글 모르는 어머니. 강연마다 이런 결핍과 열등감을 저글링 하며 남을 울리고 웃기기에, 이젠 아물어 흉으로만 남은 그의 숱한 상처들과 이미 '화해'한 줄 알았다. 아니었다. 겨우 '대면'했을 뿐이었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그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서귀포=안혜리 논설위원
프롤로그 : 김창옥 없는 강사 김창옥
당장 돈 벌 생각으로 '무허가'로 강연을 시작했는데, 벌써 20년 넘게 기업·대학·청와대·검찰청·교도소·소년원 등 8000여 곳에서 350만 명 넘는 관객과 만났네요. 어릴 적부터 워낙 슬픈 장면을 많이 봐서인지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힘듦에 공감하는 게 빠른지도 몰라요. 일반인 관객의 사연을 듣고 즉석에서 힐링 메시지를 전하는 제작비 저렴한 '김창옥쇼2'(tvN)는 초호화 게스트를 내세운 tvN 간판 예능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시청률을 때로 앞서고요. 유튜브 채널 '김창옥 TV'(구독자 수 139만 명)와 TV 영상 조회 수를 합하면 수억 뷰가 넘어요. 공감받는다고 생각해서 그만큼 사랑해주시는 거 같아요. 고맙죠. 그런데 왜 전 날카로운 덫을 엄청 깔아놓은 길 위를 맨발로 뛰어가는 느낌이 드는 걸까요. 아무도 씌워준 적 없는 면류관 구슬에 자꾸 눈이 찔리는 거 같을까요.
김창옥은 지난 2021년 ‘한중일 전통의상 패션쇼’에서 면류관을 쓰고 무대에 섰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무너지면 구슬이 자꾸 눈을 찌르는 면류관이 그의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진 김창옥]
김창옥은 지난 2021년 순천시가 김혜순 한복공방과 함께 순천만국가정원 내 프랑스정원에서 개최한 ‘한중일 전통의상 패션쇼’에서 면류관을 쓰고 배우 채시라와 함께 무대에 섰다. 그는 조금이라도 균형이 무너지면 자꾸 눈에 찔리는 면류관이 그의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진 김창옥]
들키기 싫어서 : 연약한 속살 감춘 웃음 갑옷
제 얘기는 뻔한 집밥 같은 메뉴거든요. 매일 먹는 그놈의 된장찌개, 깍두기…. 이미 한 얘기이고, 그 감정도 다 알잖아요. 근데 강연마다 항상 새롭게 해야 하거든요. 프로는 괜찮지만 선수는 안 되잖아요. 영혼 없이 기술로만 탁탁 치는 그런 선수.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 말고 이제 기업 강의 안 해요. 한창땐 하루 두세 건 주말도 없이 할 정도로 주요한 일이었는데, 그걸 안 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거죠. 몸에도 정신에도 문제가 생겼거든요. 겉으로 멀쩡하니 나 자신을 대면하지 못한 채로요.

이 얘기도 여러 번 했는데…. 10년 전쯤 어떤 어머니가 방학 때 온 유학생 아이한테 제 강의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애가 그랬대요. "저 사람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비로소 큰 거울 앞에 서게 됐어요. 처음엔 그 친구가 버릇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다음엔 들키지라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삶을 변화시켜야겠다, 가 아니라.

돌이켜보니 돈도 실력도 없고, 속살은 너무 연약한데 부모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데서 오는 어마어마한 막막함, 그걸 들키기 싫어서 어릴 적부터 항상 이상한 갑옷을 입고 살았던 거 같더라고요. 상처와 결핍을 감추려고 과장되게 웃기는 아이 있잖아요. 실은 겁 많고 감수성도 풍부한데, 친한 친구한테도 그런 민얼굴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어요.

해병대 제대 후 알바해서 번 돈으로 음대생한테 6개월 수업 듣고 들어간 경희대 음대(성악과) 시절엔 예고 나와 좋은 옷 입고 다니던 부잣집 동기들처럼 못할 바에야 "다른 거로 튀겠다"며 미군 군복만 입고 다녔고요. 여자 동기들이 그랬죠. "오빠는 언제 제대해?"

강연도 그랬던 거죠. 열심히 했고 늘 진심이었지만 "이게 진짜야?" 이렇게 의심하는 날이 오더라고요. '선택권이 있다면 안 하고 싶다, 행복하지 않다. ' 왜냐면, 인간 김창옥은 없고 강사 김창옥만 있는 채로 오래 살았어요. 어느 순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김창옥을 알지만 사실 김창옥이 없고, 강사 김창옥을 위해 그냥 김창옥은 사라진 거예요.
지난달 24일 옛 한라봉 창고 밖 담벼락에서 봄볕을 만끽하고 있는 김창옥. 서귀포=강정현 기자
사람 많은 곳을 안 좋아해요. 만나면 "안녕하십니까" 하면서 웃으며 사진 찍어야 하잖아요. 진심이고 싶은데, 나한테 주어진 에너지는 한계가 있고, 그 모든 걸 진심으로 하면, 또 나는 없잖아요. 물론 화장 진하게 해서 감추면 되죠. 근데 뭘 위해 이렇게 버티는데? 이젠 그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은 거예요. 정신병원에서도 못 찾은 답을 책에서 찾았어요. 모든 책이 공통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너무 오래 했다면 가끔은 하고 싶은 걸 해라. "

행복하기 싫어서 : 엄마 구원 못 한 죄의식
생각해보면 행복해지길 원치 않았던 거 같아요. 지금도 그래요.
엄마가 아버지한테 60 넘어서까지 맞았어요. 공고 졸업하고 육지 나간 다음에도 누나들한테 "엄마 턱 돌아갔다, 쓰러졌다"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폭력은 2년에 한 번 정도였지만 엄마가 힘들어하는 말은 평생 듣잖아요. "얼굴 번드르르하다고 사람이 아니여,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어야 돼. 느그애비는 사람이 아니여. " 엄마 데리고 섬에서 나가고 싶은데, 그 시절 나는 그럴 능력이 없잖아요. 엄마를 구원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행복하면 죄의식이 선명해져요.
'김창옥쇼2'에 관객으로 등장한 김창옥 강사의 어머니(오른쪽)와 누나. [tvN 캡처]
엄마가 나를 슬프게 한 게 아니라, 저 보기에 엄마는 너무 슬픈 인생이에요. 큰딸이라 동생 본다고 학교는 가본 적 없고, 열여덟에 결혼해보니 남편은 귀가 안 들리는데 종갓집 장손이라 제사는 수없이 많고. 돌담 쌓는 일 하던 아버지는 공사 끝나고 목돈 들어오면 화투로 다 날려버려, 남편이 있지만 남편이 없었죠. 애 여섯 키우느라 아빠 모르는 빚은 쌓이고요.

강연하면서 더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프랑스 수도원에 가서 호흡을 배우고, 뉴욕대 가서 심리학과 표현(연극)을 공부하고 이걸 통합해서 새 분야를 만들자. 그런데 식구들이 돈 냄새를 맡았는지 "집에 빚이 있다"는 거에요. 엄마가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겨우 갚고 있는데 내가 이 돈으로 무슨 호흡이고 명상이냐, 돈 갚는 게 명상이다. 그렇게 다 갚고 나니까 꽤 모았던 돈이 딱 50만원 남더라고요.

사실 강사 하면서도 성악가 되려고 지도교수였던 바리톤 이훈 교수님한테 10년 가까이 매주 한 번씩 레슨받았거든요. 성악은 기술적 훈련이잖아요. 그런데 교수님은 존재와 관계로 가르치는 거예요. 제가 눈에 힘주고 고음으로 막 질러버리면 "음악은 보여주는 게 아니야, 보여지는 거야. 넌 자꾸 뭘 증명하려니까 몸에 힘이 들어가잖아. "

이건 기술 이전에 삶의 태도, 심리잖아요. 말하는 원리고요. 이걸 깨닫고 우선 저한테 실험했어요. 내가 뭘 보여주려고 했던 거지, 그걸 내려놓고 내 목소리를 내니 삶이 바뀌네, 이런 내면세계를 소개해줘야겠다. 그래서 무허가로 1대 1 레슨을 시작한 거죠. 우리가 지식 쌓는 훈련은 해도 그걸 전달하는 방법은 모르잖아요. 니즈가 엄청나더라고요. 교수·정치인·성직자…. 그래도 직업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강연한 지 22년 됐는데, 그중 15년을 "돌아갈 거야"라며 성악가 되려고 돈 버는 시기라고만 생각했죠.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기초가 없으니 감정으로만 노래한다. 내 노래엔 자유가 없다. 근데 말할 때는 자유가 있거든요. 교수님한테 그랬어요.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

대면하고 싶어서 :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숙제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다큐멘터리 영화 '들리나요?'(2020)를 찍었어요. 누구는 아버지와의 '화해'라는데 전 '대면' 같아요. 아들이 아버지와 대면하지 못하면 결국 나와 나의 문제가 되더라고요. 젊을 땐 티가 덜 나는데, 나이 먹으면 나와 나, 나와 내 가족의 문제로 지하수처럼 흘러요. 전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떤 감정인지 아예 몰라요. 아버지가 듣지 못하고 말 못 하니 감정 교류가 없잖아요. 끝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이댔죠.

김창옥은 지난 2020년 아버지와의 첫 '대면'을 위해 다큐멘터리 '들리나요?'를 찍었다. 오른쪽이 이젠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 [영화 '들리나요?' 캡처]
방법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사가 "수술하면 들린다"고 해버리는 바람에 참.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데 엄마는 반대하는 거예요. "안 들려도 괴롭혔던 놈이 귀까지 들리면 오죽하겠냐"는 거죠. 아버지가 엄마 목소리 듣고 싶다니까 "염병" 하더라고요. 웬만한 드라마 뺨따귀 때려버리지 않습니까. 수술했죠. 글 아는 사람이 말을 가르쳐야 하는데 엄마는 글을 모르잖아요. 언어 재활 센터로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다리 아파 못 간다는 거예요. 택시비 준대도 돈 아깝다 하고. 어금니 깨물고 선생님을 집으로 보내드린다니까 모르는 사람 오는 건 싫다 하고. 결국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대화다운 대화는 못 해봤어요. 하지만 대면한 거로 어느 정도 상처는 아물고 이제 옅은 흉 정도 남은 느낌이더라고요.

오히려 문제는 아낌없이 사랑받았던 엄마였어요. 아버지 살아생전 자식들 앞에 두고도 "딴 놈하고 한 달만 살아보고 죽었으면 좋겄다"고 했거든요. 근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달을 한 끼도 제대로 안 드시고, 아버지가 사준 유일한 선물이었던 싸구려 돌침대에서 안 내려오시는 거예요. 일찍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90 다 된 남편 떠난 지 3년 지났는데, 아직도 아버지 얘기하면 울 정도로 그리워하면서요. 지고지순한 부부처럼.
다큐멘터리 '들리나요?'에 등장한 김창옥 강사의 부모님. [영화 '들리나요?' 캡처]
솔직히 이해도 안 되고 짜증 납니다. 차라리 "느그애비 없어서 너무 좋다"면서 형네 한 달, 누나네 한 달, 우리 집에서 한 달. 이러면 마음 편할 거 같은데. 한 달에 한 번 제주 오지만 엄마한테는 안 가요. 안 가는 그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굳이 들여다보려고도 안 하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엄마 문제가 해결돼야 했는데 엄마는 슬퍼하고, 대체 그 마음이 뭔가요. 제 얘기가 아니라면 지혜로운 해결책을 말해줄 거 같은데 아예 아무 생각도 못 하겠어요. 어쩌면 이게 제 마지막 숙제 같아요. 여러분에겐 어떤 숙제가 있나요.
안혜리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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