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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관행 경종 울린 첫 판단
청주지법 영동지원, 위헌 소지 밝혀
수술받지 않은 5명 여성으로 인정
2006년 대법 성별정정 허가했으나
기준 규정한 법률 아직 마련 안돼
“문제 조항 폐지, 일관된 기준 필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소수자부모모임 등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2021년 11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수술요건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성별 정정 신청인에게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서류 제출을 요구해온 대법원 예규(사무처리지침)를 성별 정정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우리나라 법질서를 위배한다는 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성별 정정 요건을 명시한 법률이 없는 탓에, 대법원 예규에 근거해 성확정 수술 입증을 요구해온 법원의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 과정에 과도한 권익 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 정비 등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은 지난달 3일 성기 성형과 고환 제거 등의 성확정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여성(출생 때 성별은 남성이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 5명에 대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하며 “대법원 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하 사무처리지침) 제6조 제3·4호를 배제하고, 헌법과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 법리에 따라 허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선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으로 트랜스젠더들의 성별 정정 길이 열렸지만, 그 기준을 규정한 법률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2006년 결정 당시 마련한 사무처리지침이 두 차례 개정을 거쳐 사실상 성별 정정 허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재판부는 “법률이 아닌 사무처리지침이 기본권 제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건 (국민의 자유와 권리 제한은 법률로만 가능하다는) 법률유보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사무처리지침 제6조 제3·4호는 △성확정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 성으로 바뀌었는지 △생식능력을 상실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신청인에게 참고 서면으로 제출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들 규정은 ‘참고사항’일 뿐이지만, 일부 법원이 성별 정정 허가 기준으로 활용하면서 건강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이 어려운 트랜스젠더들의 성적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었다.

재판부는 “(2022년) 대법원 결정은 (사무처리지침) 제6조 제3호뿐 아니라 제4호 조항을 성별 정정 허가 요건으로 보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은 성별 정정의 전제로 성확정 수술을 받아 원하는 성별의 외부 성기를 갖출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법원이 사무처리지침 조항을 들어 성별 정정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대법원 판례에서 요구하지 않은 성전환 수술 등을 성별 정정 요건으로 삼는 것이 돼 법리에 반한다”고 했다.

아울러 “(성 재전환 가능성 방지 등은) 성전환 수술이라는 하나의 수단만이 아닌 호르몬 치료 기간, 성호르몬 수치 등을 살핌으로써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청인들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서 귀속감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여성의 목소리를 갖추고 의복·두발 등 외관으로 여성으로서 성역할을 지속 수행해 주변 사람들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도 신청인들을 여성으로 인식한다”며 “가족관계등록부에 남성으로 공시돼 그 불일치가 극명하므로, 신청인들의 성을 여성이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며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성별 정정 신청인들의 소송대리인인 송지은 변호사(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는 “이번 결정은 사무처리지침 조항을 위헌이라고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대법원이 문제가 된 조항을 폐지하고 법원의 성별 정정 허가 기준에 일관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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