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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택근 시인

“꽃을 드렸습니다. 불효자의 꽃을 받고도 어머니는 그저 웃습니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자식은 머리로 이해할 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시대가 어머니들을 버렸습니다. 아버지들은 먼저 세상을 뜨고, 홀로 남은 어머니들은 쫓겨다닙니다. 시대의 난민들입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지아비 무덤과 고향을 지키다가 결국 새끼들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 집 작은 방에 갇혀있습니다. 밤마다 생각은 천리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온 마을, 앉으나 서나 정겨운 이웃, 손때 묻어 더 번쩍거렸던 장독대, 눈물마저 거름이 됐던 텃밭.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되어 달을 보며 눈물지을 것입니다.”

지난해 어버이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이다. 다시 어버이날이 돌아왔다. 어머니는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다. 설 쇠고 며칠 후 낙상하여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결국 며느리와 아들이 갈아주는 기저귀를 차야만 했다. 누구의 손길도 마다하고 혼자 죽을힘을 다해 당신의 몸을 씻었건만 이제 움직일 수 없다. “왜 이리 안 죽냐. 무슨 죄가 많길래… 참말로 이런 날이 올지는 몰랐다.” 마른 몸에도 욕창이 생겼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병이 우선하면 모셔오겠다’는 말에 표정을 바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공포이다. 시골집을 떠나올 때도 막막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자식들을 떠나보냈지만 정작 자신이 떠날 때가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웃이 죽거나 도시로 떠나가면 그때마다 가슴이 떨렸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프면 집에도 검버섯이 피었다. 어머니들을 잃은 마을은 여기저기 움푹움푹 꺼졌다. 그렇게 마을공동체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떠나간 피붙이들이 돌아오지 않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별수 없이 도시로 나와 자식들에게 얹혀살아야 했다. 어머니들은 도시 어딘가에서 더듬더듬 길을 묻고 가만가만 숨을 쉴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그때마다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고통 없이 홀연 이승의 옷을 벗으면 죽은 자는 물론이고 남은 자에게도 복이다. 누구든 고통 없이 오래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싶어 한다. 옛사람이 이른 다섯 가지 복 중에서 마지막은 고종명(考終命)이다. 제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음을 맞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미소를 남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이다. 하지만 연명 치료가 발달한 요즘은 정든 공간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는 오늘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살아있는 모두에게 초행길이다. 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100세 시대라지만 부모들은 자신의 늙고 병듦이 자식들에게 짐이라는 생각을 깊이 하고 있다. “자다가 죽는 게 소원이다.” 빈말 같지만 빈말이 아니다. 하지만 육신을 고통 없이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의 보살핌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의 죽음이지만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슬프다.

노부모를 모시고 한 시대를 건너가는 자식들 또한 힘들다. 무엇보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고향집에 계시면 유배당한 것 같고, 요양병원에 계시면 시커먼 동굴에 유폐된 것 같다. 논밭을 휘저으며 어떤 복선도 없이 땅에 힘을 풀었던, 부모들의 싱싱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하지만 음흉하고 위험한 도시에 그들을 모셔야 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말수가 줄어들고 도회지의 노년은 적막하다. 그 적막을 깨는 힘과 지혜가 자식들에게는 부족하다. 별수 없이 불효자가 되어간다. 그런 자식의 마음을 어머니도 헤아린다. 그래서 다시 적막하다.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꽃을 드렸다. 그저 웃는 어머니에게 할 말이 없다. 어머니는 꽉 찬 100세이다. 세상 어디에도 머리를 들 수 없는 불효자지만 삼가 지난 세월에 두 손을 모은다. 둘러보면 아무도 효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효가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다. 불효자를 양산하는 시대이다. (하늘이 내린 효자들께는 미안하다.) 어디에 계시든 (하늘에 계실지라도)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멀어져간 어머니들, 시대에 버림받은 박복한 양반들. 거칠고 치열했지만 정직하고 고왔던 삶에 삼가 꽃을 바친다. 이렇듯 푸른 세상, 고향의 녹색바람이 어머니들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김택근 시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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