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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은 자원 확보 경쟁 중
한국, 냉온탕 정책에 실패 자초
해외 자원 개발, 더 늦으면 안 돼
정권에 따라 변하는 해외자원개발 정책이 산업에 필요한 자원 확보를 어렵게 하고, 경제안보를 후퇴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미·중 간 무역 갈등과 세계적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석유, 가스, 석탄 등 에너지와 리튬, 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꿈틀거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불안 등 지정학적 위기가 겹치며 달러와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이례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탄산리튬은 연초 t당 8만6500위안(약 1631만원)에서 지난달 30일 10만9500위안으로 4개월여 만에 26.5% 상승했다. 특히 산업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구리는 같은 기간 t당 8430달러(약 1146만원)에서 9974달러로 18.3% 상승했다. 문제는 이런 상승세가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기차 시장 등의 위축으로 주요 광물 기업이 감산에 돌입하고, 세계 각국의 광물 전쟁 격화가 공급을 위축시킨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자원은 이해 관계자들이 공급과 가격을 의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이른바 ‘전략적 상품’이 됐다. 최근에는 희소성과 편재성을 이용하여 자원을 무기화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2010년 9월 희토류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 제한을 감행한 사건이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일본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약 60%를 사용하고 있는 최대 소비국으로 수입이 중단되면 첨단제품의 부품 공급망이 타격을 입는 산업구조다.

자원민족주의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최근 중국이 희토류 영구자석 제조 기술 수출 금지 조치를 했으며, 인도네시아는 니켈 원광 수출 금지와 함께 구리·주석에 대한 수출 금지를 계획하고 있다. 필리핀도 니켈 광석 수출에 최대 10% 수준의 관세 부과를, 멕시코는 리튬 산업을 국유화했다.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중심으로 리튬 산업 국유화 추진을 위한 ‘리튬 협의 기구’도 결성됐다.



한국 에너지안보 수준 124개국 중 98위
세계에너지위원회(WEC)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에너지안보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124개국 중 98위를 기록하며 자원 공급 관리의 심각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안정적 자원 확보의 관점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은 해외 자원개발이다. 해외 자원개발은 그 자체 개발만이 아니라 자원개발 서비스, 엔지니어링, 건설 등 주변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고 도로와 같은 인프라 건설이 동반되며, 자원개발 이후에는 제품화 단계로 이어지는 등 추가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복합 사업이다.

해외자원사업법에 따른 해외 자원개발 목표는 국가 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의 안정적 확보이며, 가격 불안정성에 대응하고 공급 중단에 대비할 수 있는 일종의 헤징(hedging)전략이다. 자원개발은 초기 자원탐사에서 개발·생산·회수까지 최소 10~15년이 소요되는 사업이며, 자금뿐 아니라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자원개발 활성화를 위한 전략은 종합적인 시각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세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아직 제대로 된 해외 자원개발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한국은 그동안 땀 흘려 확보한 해외 유망 광구 26개를 헐값에 매각하고 말았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대가는 혹독했다. 2008년부터 자원 가격이 급등하자 여기저기서 후회의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기점으로 정부는 물론 기업들이 자원 확보에 다시 뛰어들었다. 석유ㆍ가스를 직접 개발해 확보한 비율(자주개발률)이 2007년 4.2%에서 2011년 13.7% 증가했다, 유연탄, 우라늄, 철광, 구리, 아연, 니켈 등 6대 전략 광물은 2007년 18.5%에서 2011년 29% 상승했다. 리튬, 희토류 등 희소금속은 2007년 6.1%에서 2011년 12%로 약 두 배 증가했다. 특히 이차전지의 원료인 리튬 확보를 위해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리튬 광산에 신규 진출했다.



일관성 있는 정부 정책 뒤따라야
하지만 2014년 이후 정부는 해외 자원개발을 비정상화·적폐로 규정하고 우선 예산부터 삭감했다. 2014년 우리나라의 해외자원개발 투자 규모가 68억 달러로 일본(935억 달러), 중국(712억 달러)에 비해 크게 추락했다. 특히 2013년 1400억원이던 해외자원개발 관련 예산은 2014년 0원이 됐다. 또한 어렵게 확보했던 해외 광구는 모두 매각하도록 했다. 그리고 당시 정부는 해외자원개발을 자원외교 비리로 보고 국정감사, 감사원 특별감사, 대대적인 검찰수사를 해서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 사장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이후 1, 2심은 물론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됐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자원개발 생태계는 무너졌다.

자원 빈국인 한국은 자원 확보가 절실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해외 자원개발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비싼 값을 치르고 어렵게 얻은 노하우와 그동안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쌓아 놓은 자원 부국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무역 분쟁에서 중국의 희토류와 흑연 수출 통제 조치도 결국엔 자원 확보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자원개발을 통한 자원 확보는 곧 국가의 경제안보와 직결된다. 자원개발 타이밍을 놓치면 10년 후에 땅을 치는 법이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해외 자원개발에 나서야 할 때다. 이후 일관성 있는 정부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강천구 인하대 초빙교수(에너지자원공학)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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