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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파견 광부·간호사 귀국·정착 뒤 관광지로
마을에 펼쳐진 민박집·식당 묶어 호텔 기능 전환
마을호텔로 재탄생한 경남 남해군 독일마을 전경. 남해관광문화재단 제공

“유럽 정취 느끼려고 비행기 탈 필요까지 있나요? 여기 오시면 알프스에 없는 바다까지 있습니다.”

20년 넘게 독일 뮌헨에서 살다 온 이병수(75)·이영자(72)씨 부부가 말했다. 부부는 뮌헨하우스라는 민박집 주인이다. 뮌헨하우스는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독일마을에 있는 마당 넓은 이층집이다. 2012년 문을 열었다.

귀환 광부·간호사들 정착촌이 관광지로

남해독일마을호텔의 뮌헨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병수·이영자씨 부부가 손을 흔들며 손님들을 반기고 있다. 최상원 기자

7일 오후 뮌헨하우스 초인종을 누르자, 독일 전통 의상을 맞춰 입은 이씨 부부가 현관문을 열고 맞았다. 안내받아 들어간 이층집엔 층마다 2개씩 방이 있었다. 이씨 부부가 1층 방 1개를 사용하고, 나머지 3개는 객들에게 제공한다 했다. 최근 뮌헨하우스는 ‘민박집’이란 소박한 이름 대신 ‘호텔’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다. 이 집을 포함한 독일마을 민박집 25곳이 뜻을 모아 ‘남해독일마을호텔’을 만든 것이다. 지난달 23일엔 남해관광문화재단과 함께 호텔 개장식도 열었다.

‘마을호텔’은 펜션·식당·카페·회의실 등 원래 있던 마을 시설을 하나로 묶어 호텔 같은 편의기능을 제공하는 관광형 도시재생 사업이다. 수직형 호텔 공간의 다양한 편의기능을 수평 공간인 마을에 펼쳐서 제공한다는 뜻에서 ‘누워 있는 호텔’ ‘골목 호텔’이라고도 한다. 국내에선 강원도 정선, 충남 공주, 경북 경주 등 곳곳에서 201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고 있다.

남해독일마을호텔의 뮌헨하우스를 운영하는 이병수·이영자 부부. 마을호텔에 참여하는 모든 민박집은 전체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건 등 욕실용품과 차 등 객실용품을 통일시켰다. 최상원 기자

남해독일마을의 시작은 독일에서 살다 온 광부·간호사들의 정착촌이다. 2001년부터 바닷가 언덕에 만들어진 이 마을에는 41가구가 산다. 모든 집이 흰색 회벽에 주황색 박공지붕을 얹은 전통 독일 스타일이다. 이곳에선 매년 5월이면 독일식 봄맞이 축제인 마이페스트(Maifest)를 열고, 10월에는 맥주축제를 연다. ‘환상의 커플’ 등 드라마·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독일마을은 한 해 평균 120만명 넘게 찾는 경남의 대표적 관광 명소가 됐다.

노후마을 재생 위해 ‘마을호텔’ 의기투합

“마을에 있는 집 가운데 35개가 민박집입니다. 직원요? 따로 없어요. 우리처럼 주인 부부가 살면서 남는 방을 손님에게 내놓는 식이거든요.”(이병수)

독일마을은 막개발을 막으려고 애초부터 숙박시설 규모를 230㎡(약 70평) 미만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20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과 시설 모두 해가 갈수록 활력이 떨어졌다. 남해군, 남해관광문화재단, 독일마을운영위원회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마을 전체를 ‘네트워크 호텔’로 개편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게 지난해 봄이다.

참여 뜻을 밝힌 민박집 25곳으로 시작했다. 이름을 ‘남해독일마을호텔’로 정했다. 전체 객실 50개. 국내 최대의 유럽형 마을호텔이 탄생했다. 마을호텔에 참여하는 민박집은 원래 해오던 대로 독립 운영하되, 수건 등 욕실용품과 차 같은 객실용품을 같은 것으로 사용해 운영의 통일성과 서비스 수준의 향상을 꾀했다. 앞으로는 객실 침구도 통일하고 청소·세탁·수선을 공동으로 하려고 논의 중이다.

이병수씨는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수익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개별적으로 제공하기 힘든 서비스도 함께하면 가능할 것이고, 객실용품과 소모품도 공동구매하면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독일 사람도 진짜 독일로 착각하도록”

마을호텔에는 투숙객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할 식당 3곳도 참여한다. 호텔을 예약할 때 식당 위치와 메뉴를 보고 원하는 곳을 고르면 된다. 마을호텔에 참여하는 베를린성 식당은 아침 식사로 독일 가정식을 1만5천원에 제공한다. 이 식당의 이정희(70) 대표는 “이곳이 성공하려면 전국 곳곳에 있는 평범한 민박촌이나 마을호텔과는 명확히 차별화해야 한다”며 “독일 사람도 진짜 독일로 착각할 만큼 독일의 마을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해외여행에 익숙해진 국내 관광객들의 눈높이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 대표는 “참신한 사업감각을 갖춘 젊은이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도록 마을의 여러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기 단계인 만큼 마을호텔 운영은 남해관광문화재단이 맡고 있다. 일단 마을 입구에 다음달 안으로 호텔 프런트 격인 안내 사무실을 열고, 7월부터는 객실과 식당을 통합예약할 수 있는 마을호텔 누리집을 운영할 계획이다. 새 누리집 개통 전에는 원래의 독일마을 누리집(남해독일마을.com)을 이용하면 된다.

“고령화 가속에 마을호텔 전환은 최선의 결정”

재단의 구상은 호텔 사업이 안정화되는 2026년부터 호텔 운영을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독일마을운영위원회에 넘기는 것이다. 김애진 남해관광문화재단 대리는 “주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마을호텔로 전환은 최선의 결정이었다”며 “개인사업자인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서 맞춰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 하지만 독일마을을 활성화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이전보다 높아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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