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
김영은 단편소설 ‘지금은 아닌’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제는 더 이상 안부를 물을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을 헤아려본다. 아무리 원한다 해도 영원히 기별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이들이 삶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현듯 고개를 든다. 이미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이의 얼굴로 바뀐 순간, 덜컥 마음을 내려앉게 하는 부재의 실감 같은 형태로.

Axt(악스트) 53호에 실린 김영은 작가의 단편소설 ‘지금은 아닌’은 전세 사기의 피해자가 된 연인 ‘나’와 ‘의정’이 죽은 ‘진수 형’의 어머니가 여는 굿에 참석하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사망에 진수 형의 어머니는 “아무래도 집에 우환이 든 것 같다”며 굿을 하기로 하고, 두 사람에게 와달라고 부탁한다.

대학생 시절 외제 차를 몰고 다니며 아르바이트나 학교 성적에 연연하지 않던 진수 형은 “어느 모로 보나 나와 같은 조무래기 대학생들보다 더 앞선” 인물이었다. 나에게 의정을 소개해주고, 두 사람의 동거를 위한 전셋집을 찾는 데 도움을 준 데다가 부족한 보증금 3,000만 원까지 빌려준 은인이다.

“셋일 때가 가장 편하다”고 말할 정도로 줄곧 어울리던 진수 형이었지만, 그는 어느 순간 이들 연인, 특히 나에게 거북한 상대가 된다. 전세 사기로 날린 보증금에 포함된, 그에게 갚아야 하는 돈의 무게가 버거워진 탓이다.

진수 형에게 사정을 잘 말해보자는 의정에게 “너 진수 형 좋아하냐” 같은 시답잖은 말로 언쟁을 벌인 나는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불쑥 집 앞으로 찾아와 “잘 지내나 싶어 와봤다”며 외로움을 슬쩍 내비치는 진수 형을 보며 생각한다. “어차피 진수 형은 돈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잘 살 것이라고, 나와 상관없다고.”

김영은 소설가. 본인 제공


어떻게든 잘 살 것이라 여겼던 진수 형은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나버린다. 그의 죽음 이후 “경찰 조사에서 진수 형의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가 가족 이외의 나와 의정의 것이 전부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을 때”의 나의 아득한 마음. 그리고 이제는 갚을 길이 없어져 버린 부채감. 어쩌면 이마저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잊고 살거나 더는 궁금하지 않은” 채로. 소설은 그러나 “다만 지금은 아닐 뿐”이라고 덧붙인다.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한 김 작가는 ‘지금은 아닌’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에서 시작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행위 자체가 어렵고 복잡한 일이 되어버린 것에 대하여 (중략) 그리하여 어떤 안부는 영영 닿지 않을 수도 있는 것에 대하여”라는 그의 말에 다시금 낯선 얼굴로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버렸지만, 차마 지우지 못한 연락처를 한참 들여다본다.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7288 정신 못 차린 밀양 성폭행 가해자…"이왕이면 잘 나온 사진으로" 랭크뉴스 2024.06.16
17287 무주택자 ‘악몽’ 재현되나...다시 치솟는 ‘서울 아파트’ 값 랭크뉴스 2024.06.16
17286 [속보] 당정, 취약계층 130만 가구에 에너지바우처 5만3000원 지원 랭크뉴스 2024.06.16
17285 국민이 임기 절반도 못 참은 초유의 대통령, 윤석열이 가야 할 길 랭크뉴스 2024.06.16
17284 재생 어려운 치아 되살리는 소재 기업 하스, 코스닥 도전장 [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랭크뉴스 2024.06.16
17283 'KTX 첫 수출' 가능케 한 2750억짜리 대외경제협력기금 랭크뉴스 2024.06.16
17282 중앙아 순방 마친 尹대통령…'거야공세'·'의사파업' 난제 산적 랭크뉴스 2024.06.16
17281 서울의대 비대위 "교수 529명 휴진 참여"‥"수술장 가동률 33.5%까지 떨어질 것" 랭크뉴스 2024.06.16
17280 17일 서울대 집단휴진, 18일 의협 총파업…의료대란 어느 수준? 동네의원 ‘올스톱’까진 안갈듯 랭크뉴스 2024.06.16
17279 “소변 받아먹어”… 90대 요양환자 학대한 80대 간병인 랭크뉴스 2024.06.16
17278 나는 휴진 반대하는 의대교수…“증원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가” 랭크뉴스 2024.06.16
17277 “가족 건드리지 마라”...이승기, 장인 ‘주가 조작’ 논란에 입 열었다 랭크뉴스 2024.06.16
17276 아사히 “日 정부, 폐로 대체할 원전 증설 허용할 듯” 랭크뉴스 2024.06.16
17275 [단독] ‘순위 조작’ 쿠팡, 미국에 “공정위가 국제 관행 제재” 랭크뉴스 2024.06.16
17274 "언론, 檢 받아쓰기 분주"…野의원들 이재명 '기자 애완견' 발언 옹호 랭크뉴스 2024.06.16
17273 ‘박정희 국제공항’ 만들기 TK 정치권 한몸…신공항 명칭 점입가경 랭크뉴스 2024.06.16
17272 제4이통 좌초 언제까지…스테이지엑스 ‘자격 취소’가 남긴 질문들 랭크뉴스 2024.06.16
17271 쿠팡·공정위, 줄줄이 ‘장외 공방’ 예고···김범석 의장 고발 이어질까? 랭크뉴스 2024.06.16
17270 자본 검증 없이 ‘제4이통’ 밀어붙인 정부…정책 신뢰까지 날렸다 랭크뉴스 2024.06.16
17269 원·달러 외환시장 새벽 2시까지 연다···런던서도 실시간 거래 랭크뉴스 202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