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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 동거 이야기 다뤄
부모님과의 동거 이야기를 담은 만화 ‘올드’를 펴낸 홍승우 작가. 서정민 기자

홍승우 작가는 2010년대 중반 ‘기러기 아빠’가 됐다. 자신이 그린 가족 만화 ‘비빔툰’ 속 다운이·겨운이의 실제 모델인 아들·딸이 엄마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갔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는 게 적적했던 그는 충남 보령 대천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가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파주에 있는 제집에서 같이 사실래요?” 당시 87살 아버지와 78살 어머니는 다음날 곧바로 이사 오셨다.

“제가 결혼하고 독립한 이후 20년 만에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됐어요. 어머니는 뭐든 직접 하셔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라 쉰이 다 된 아들이 ‘엄마 밥’을 먹게 됐다니까요.”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홍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홍승우 작가의 ‘올드’ 에피소드. 트로이목마 제공

아버지는 이제 앞이 거의 안 보이는데다 치매까지 앓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곁에서 요양보호사처럼 돌봤다. 홍 작가는 부모님을 보며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저도 언젠가는 늙을 텐데, 부모님은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기억하고 기록하기 시작했죠. ‘비빔툰’도 우리 가족의 기록에서 비롯된 만화이니 부모님에 대한 기록도 만화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생각을 현실로 옮길 기회가 찾아왔다. 2018년 네이버웹툰에서 1990년대 활동한 작가들의 단편을 하나씩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한 것이다. 홍 작가는 부모님과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 몇개를 모아 ‘올드’라는 제목의 웹툰으로 올렸다.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다. 10점 만점 별점은 9.94점이나 됐고, “웹툰 보다 10점이 부족하다고 느낀 웹툰은 처음이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좋은 만화 감사합니다. 일어나면 아침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려야겠어요” 같은 댓글이 줄을 이었다.

홍승우 작가의 ‘올드’ 에피소드. 트로이목마 제공

얼마 뒤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가 발행하는 계간지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은퇴 이후 삶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잡지에 홍 작가의 만화가 제격이라는 이유에서다. 홍 작가는 차곡차곡 에피소드를 쌓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첫 단행본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어버이날인 8일 발간되는 ‘올드’(트로이목마 펴냄)에는 ‘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의 어쩌다 동거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책에는 치매로 막내아들인 자신의 이름만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서운해하고, 노인 냄새 때문에 집안 전체를 환기시키고, 처음으로 아버지 혈당 체크 기계를 써보다 실수하고, 지금껏 몰랐던 아버지·어머니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정치적 견해가 달라 다투기도 하고, 죽음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등의 에피소드들이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담겼다.

홍승우 작가의 ‘올드’ 표지. 트로이목마 제공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힘드신지 자꾸 죽으시려고 해요. 아버지가 칼 등 날카로운 것들을 모아놓으시면 제가 그걸 찾아서 치워버리는 게 일이죠. 어머니는 아버지를 끝까지 책임지려 하세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죠.”

50대 중반이 된 홍 작가는 자신의 늙음도 실감하고 있다. “만화가가 되겠다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는 오십견에 고혈압에 눈도 침침해지고 하니 ‘나도 늙는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어떻게 늙을지 고민만 하던 중 부모님을 보고 이제는 좀 정리정돈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지낸 5년 동안 포옹에 눈을 떴다. 형님이 몇년 전부터 가족을 안기 시작한 게 좋아 보여 자신도 부모님을 안아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고요, 무엇보다 저도 위로받고 행복해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홍승우 작가의 ‘올드’ 에피소드. 트로이목마 제공

홍 작가는 이제 캐나다에서 돌아온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산다. 부모님은 다시 대천으로 내려가셨다. 홍 작가가 성인이 된 아들·딸과 겪는 부딪힘과 변화에 대한 에피소드도 책에 담겼다.

“아무리 가족이고 친해도 여전히 부딪히며 삽니다. 자꾸 부딪히면서 다듬어지면 강가에 깎이고 깎여 둥글어진 자갈처럼 돼요. 부드러운 자갈을 손에 쥐고 만지면 기분이 참 좋거든요. 가족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아요. 이렇게 부딪히면서도 스스로 다듬어질 줄 알아야 나이 들고 늙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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