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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일지 담은 다큐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나의 해방일지’ 등장인물 술집 주인장 이름 따
지난 2일 밤 전주 한옥마을 인근 카페 소설 앞 공터에서 열린 영화 ‘유랑소설’ 상영 현장. 김은형 기자

이곳에 가면 동네 이웃처럼 술을 마시는 배우 박해일, 정진영이나 일본 배우 가세 료를 만나도 놀랍지 않다. 백현진이나 권해효 등 티브이(TV)와 스크린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술이 오르고 흥이 차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고작 테이블 네댓 개 있는 작은 술집에 구경꾼이 몰리지 않을까 싶지만 주인장 염기정(64)은 구경꾼 손님들을 “자리 없다”고 쫓아내며 예술인들의 마음 편한 아지트를 꾸렸다. 1988년부터 서울 이대 앞에서 인사동, 가회동을 거쳐 지금은 전주에 자리 잡은 카페 ‘소설’이다.

2021년 전주로 옮긴 뒤 전주국제영화제의 사랑방이 된 소설이 영화 ‘유랑소설’로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 ‘유랑소설’은 전주뿐 아니라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고성, 통영, 서울 등 소설이 전국을 ‘유랑’하면서 팝업 형식으로 진행해 온 ‘술집 일지’를 다큐멘터리로 담은 작품이다. 지난 2일 밤에는 극장을 벗어나 전주 한옥마을 인근 소설 앞 작은 공터에서 간이 스크린을 치고 야외 상영을 펼치기도 했다. 영화에 출연하는 허진호, 임순례 감독, 배우 겸 뮤지션 백현진, 조선희 작가, 그리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주요 등장인물 이름을 염기정(이엘 역)으로 지을 정도로 카페 소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지닌 박해영 작가 등 100여명의 관객들이 간이의자에 앉아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유랑소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이곳을 드나드는 예술인들의 진지함과 달리 영화는 주인장 염기정과 단골들의 독특한 관계를 객관적으로 그리며 시종 빵빵 터지는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고약한 술집 주인” 염기정에게 ‘미움받으며’ 단골이 된 건축가 최미경씨, 아나운서 유정아씨 등의 증언이다. 영화 ‘유랑소설’을 연출한 이지현 감독(33)도 그중 하나였다. 소설의 고답적인 분위기와 달리 네이버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는 이 감독은 20대 때 제주도 여행에서 우연히 장선우 감독이 운영하던 카페 물고기에 있던 책 ‘내가 만난 술꾼’을 들춰봤다가 소설과 염기정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책을 읽고 너무 궁금해서 가회동 시절 소설에 갔다가 “장사 안 한다”라는 말 한마디로 쫓겨났어요. 안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말이죠.” 홍상수의 ‘북촌방향’에 카페 소설이 등장하며 투어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자 염기정은 더 “고약한” 주인장이 돼 소셜미디어 피드 거리를 찾는 손님들을 쫓아내기 바빴다. 2년 뒤 북촌으로 이사 온 이 감독이 다시 가서 구경꾼이 아님을 설득하고 나서야 마침내 출입문이 열렸다. “마침 처음 갔을 때 축하모임이 있어서 단골들이 많이 모였는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어요. 멋있는 옛날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느낌? 살면서 좋은 어른들을 못 만났다고 생각해왔는데 여기 다 모여있었구나! 그런 반가움이었어요.”

2월 카페 소설 앞 공터에서 열린 영화 ‘유랑소설’ 상영현장에서 인사하는 이지현 감독(오른쪽)과 소설 주인이자 영화 ‘유랑소설’ 주인공 염기정씨(가운데),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은형 기자

그중에서도 그가 매혹된 건 주인장 염기정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와 그 사이에 그럴듯한 벽을 만드는 게 교양인의 필수가 된 세상에서 “필터 없는 사람” 염기정은 까칠한 만큼이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후 출근하듯이 소설에 드나들면서 밥을 먹고 때로 주인 없는 가게를 지키기도 하면서 소설 멤버가 됐고, 2022년부터 휴일과 휴가 때 카메라를 들고 소설을 따라 유랑에 나섰다.

늘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할 아지트, 사랑방에 걸맞은 소설이 유랑하게 된 건 현실적인 사연도 있다. 영화 초반에 나오듯이 ‘한때 유명인들을 단골로 둔 잘 나가는 살롱이었는데 단골들이 나이 들어 술을 잘 못 마시게 되자 파산위기에’ 처한 주인장 염기정과 친구들이 즉흥적으로 ‘출장 술집’을 기획한 것이다.

계산에는 젬병인 염기정의 유랑소설이 아무리 마일리지가 늘어난다 한들 흑자 전환될 리 없지만 영화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특별할 것 없는 “좋은 날”로 바꿔내는 염기정과 친구들의 비밀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지현 감독은 “보통의 술집과 달리 주인과 손님이 맺는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내 친구나 내 또래들이 영화 속 이모(염기정)를 보고 ‘와~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있구나’, ‘저 술집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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