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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에 잠 못 드는 화랑거리 주민들]
구청직원 새벽 출동... 철수하면 또 소음
업체 "갤러리 영업 탓에 오후 공사 불가"
공사장 소음 매년 증가... 서울서만 6만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공사장. 최근 두 달간 해당 공사장에는 소음 민원 100여 건이 접수돼 과태료 등이 부과됐다. 이승엽 기자


"새벽마다 애들이 울면서 잠을 깬 지 두 달째입니다. 공사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요. 잠자는 시간만 말아달라는 건데 그게 어렵나요?"


세상이 단잠에 빠져든 2일 새벽 4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쿵쾅쿵쾅, 드르륵드르륵" 하는 소리의 진원지는 인근 신축 건물 공사장이다. 구멍뚫기 작업을 위해 가동된 기계 소리가 천지를 뒤덮자, 공사장 주변 다세대주택 주민 50대 A씨는 귀를 틀어막았다.

딱 하루 일요일만 빼곤, 매일 같은 시간 그 소음에 잠을 깬다는 A씨. 신고를 하려고 휴대폰을 들던 순간, 이미 다른 주민이 신고를 했는지 강남구청 기동반이 현장에 출동했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구청 사람들이 철수하자 다시 소음이 들려왔다. 두 시간 새 구청에서 세 번이나 현장에 나왔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A씨는 "매일 구청 직원들이 와도 현장에 있는 20분만 공사를 멈출 뿐, 철수 이후 다시 공사를 한다"며 "구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지만, 결국 소송을 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새벽부터 철길 맞먹는 80데시벨 소음

지난달 30일 오전 5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공사장에서 규제 기준을 넘은 소음이 발생했다. 해당 공사장의 소음 측정장비가 꺼져 있어 인근의 다른 공사장에서 측정한 결과 73.6dB을 기록했다. 독자 제공


6일 강남구청에 따르면, 3월 청담동의 이 공사장에서 작업이 시작된 이후 접수된 소음 민원은 100건을 넘어섰다. 구청이 두 달 동안 소음 규제 기준 초과 등을 이유로 부과한 과태료만 11건, 총 금액 2,040만 원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는 공사장 소음이 기준을 초과하면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데, 이 공사장은 매번 기준을 어겨 과태료를 내면서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소음진동관리법상 주거지역의 경우 주간에는 65데시벨(㏈) 이하, 야간에는 50㏈ 이하를 지켜야 한다. 상업지역은 주간 75㏈ 이하, 야간 65㏈ 이하다. 그러나 이 공사장의 소음 기준은 지켜지지 않았고, 작업시간도 신고 시간(오전 8시~오후 5시)과 달리 새벽부터 오후 1~2시까지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본보 기자가 현장에 가보니, 공사장 외부에 설치된 소음 측정장비는 아예 꺼져 있었다. 약 50m 떨어진 인근 공사장에 설치된 장비로 대신 측정해보니 소음 기준(65㏈)을 한참 넘어서는 75~80㏈을 오락가락했다. 소음 발생지점과의 거리를 고려하면, 실제 현장에서는 더 큰 소음이 측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0㏈은 철로변에서 들리는 소음에 해당하고, 이때부터 청역(귀로 들을 수 있는 범위)에 장애가 시작된다.

강남구청이 과태료 처분에 이어 소음 개선명령 등 행정처분도 2건이나 내렸지만, 주민들은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말한다. 주민들도 공사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모두가 잠을 자는 새벽시간만큼은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주민들의 요구다. 인근에 사는 70대 B씨는 "지역 특성상 오래 거주한 어르신이 많은데, 아침잠을 설치는 분이 다수"라며 "송사 등 굳이 큰일을 벌이고 싶지 않은 지역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공업체 입장을 들어봤다. 공사장 인근은 청담동 화랑거리인데, 갤러리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오후 공사가 불가능해 기한을 맞추려면 새벽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시공업체 관계자는 "새벽에는 주민들이 피해를 입으시고, 오후에는 갤러리 영업이 어려워 하루 3시간밖에 작업을 하지 못한다"며 "최근 구청과 간담회를 통해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오전 시간대 공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소음 문제가 공사중지로 이어진 예 없어



최근 3년간 서울시에 접수된 소음 민원. 그래픽=박구원 기자


청담동 공사장 사례에서 보듯, 공사 현장 소음의 기준은 있지만 실제로 소음 재발을 규제하는 조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자체는 공사장 소음이 기준을 초과하면 △작업시간 조정 △해당 행위 중지 △방음시설 설치 등을 명령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조치명령 이후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했더라도 규제 기준을 또 초과하면, 공사중지나 폐쇄명령도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강제력 있는 조치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업체가 1차 조치명령 단계에서 개선책을 내놓고, 그사이 공사를 완료하면 그만이다. 결국 공사중지 또는 폐쇄명령을 받거나 이를 위반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실제 2022년 한 해 동안 서울시가 소음에 따른 개선명령을 내린 경우는 685건이었지만, 공사중지나 폐쇄명령을 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공사장 관련 소음 민원은 매년 증가 추세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접수된 전체 생활 소음민원은 7만4,257건으로, 이 중 80%가 넘는 6만1,905건이 공사장 소음이었다. 공사장 소음 민원은 2020년 4만9,983건에서 2021년 5만6,752건 등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소음 관련 과태료 처분도 846건, 총 6억5,342만 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과태료 금액 인상 등 규제 강화뿐 아니라 공사업체 측의 자발적인 소음 저감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음방지시설 미비 등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업체는 소음 저감을 위해 힘쓰고, 주민들은 배려하는 등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공사장 소음 관련 이미지. 그래픽=이승엽·달리3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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