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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 지난달 서울 한남동 관저에 중앙일보를 초청했다. 전민규 기자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 대사에게 한국은 사랑이 꽃피운 나라다. 대사로서 한국 근무 2년째이던 지난해, 그는 고국 스페인의 첫사랑과 연이 닿아 결혼에 골인했다. 서울 한남동 주한EU대표부 관저에 지난달 중앙일보를 초대한 페르난데즈 대사는 "(한국계 미국인)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의 해피엔딩을 맞은 셈"이라며 활짝 웃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첫사랑이 아련함에 대한 영화다. 그와 남편 모두 재혼이며, 각자의 아이들도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오는 9일은 마침 EU의 주요 기념일인 '유럽 데이(Europe Day)'이기도 하다. 유럽 통합의 필요성을 처음 공식화한 날이다.

페르난데즈 대사는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는 찾아온다고 믿게 됐고, 한국이 그 두 번째 기회의 땅이 된 셈"이라며 "(결혼식을 올린 지난해가) 한국에서 중시하는 환갑이었는데, 경력뿐 아니라 삶에서도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남편을 포함한 가족도 한국을 좋아한다. 고궁이며 북촌과 같은 관광지뿐 아니라, 남북 분단의 아픈 현실을 보기 위한 여행도 자주 한다고 페르난데즈 대사는 전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의 스틸 컷.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및 각본상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사진 CJ ENM

그의 부임 후 한국과 EU의 관계도 깊어지고 있다는 게 국내 외교가의 평가다. 페르난데즈 대사의 이번 한국 근무는 2005~2008년 공관 차석 이후 두 번째다. 그는 EU 본부에선 2000~2005년 한반도 이슈를 담당했고, 주말레이시아 EU대사(2016~2020) 및 홍콩ㆍ마카오 EU대표사무소(2008~2012) 소장 등을 지낸 베테랑 외교관이다. 관저에 놓인 다양한 예술품은 그가 다양한 부임지에서 수집한 것으로 그의 안목을 드러낸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 한국과 EU의 양자 관계 현주소에 대한 평가는.

A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다 북한의 도발 등 양자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열었고, 성과가 많았다. 가자지구 전쟁 등까지 포함하면 함께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지고 있다. 기후위기 타개를 위한 지혜도 함께 모아야 한다. EU에게 한국은 특히 소중한 파트너다. 자유무역협정(FTA)부터 기후위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온 몇 안 되는 아시아 국가이기 때문이다."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대표부 대사. 지난해 결혼식을 앞두고 대표부 직원들이 선물한 목각 기러기 한쌍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민규 기자


Q :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러시아를 규탄하는 공동 기고문도 냈는데.

A :
"EU의 (1993년) 통합 목적은 함께 일구는 번영이었다. 평화는 기본 전제 조건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국가(러시아)의 이런 행태는 좌시할 수 없다. 존재 자체의 위협이다. 많은 국가가 징병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북ㆍ러 군사협력 때문에 한국에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정부가 해온 많은 노력에도 감사하다."

Q : 주한EU대표부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포럼을 열어오고 있는데.

A :
"한국에서 근무하며 긍정적 변화를 많이 봤고, 여성 리더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더 제공하고 싶었다. 성평등은 EU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한국 여성은 교육수준도 높고 능력도 뛰어난데 사회참여율은 아쉬운 점이 많다. 법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고, 중요한 건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함께 이 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있으니 잘 되리라 기대한다(웃음). 실제로 한국은 큰 성과를 일궈왔다. 첫 근무 때는 외교부 여성 국장급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주한 외교사절 중에서도 여성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관저는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대사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예술품으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다. 전민규 기자


Q : 한반도 이슈를 오래 담당했는데.

A :
"북한 출장에서 뛰어난 여성들을 많이 봤다. 통역가부터 장마당에서 일하는 여성 등, 그들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 채널을 통한 대화이지만, 북한이 지금처럼 도발 일변도로 나온다면 문제다. 북한의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목표다. EU 회원국 중 6개국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고, EU로서는 한반도 이슈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대표부(EU) 대사. 전민규 기자


Q : 남편 등 가족은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A :
"한국 문화를 참 좋아하고 여행도 (경기도) 이천 도자기 체험, (전라북도) 전주 여행, 템플 스테이 등등을 다녀왔다. 등산도 좋아하니 서울 근무가 참 행복하다. 아 그런데 딱 한 가지가 아쉽다."

Q : 뭔가.

A :
"대형마트에 갔다가 주차장에 1시간 넘게 갇힌 적이 있다. 무인 주차 안내문이 한국어로만 되어 있거나, 한국에서 발행된 신용카드만 받을 수 있는데 현금은 또 낼 수 없는 구조 때문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 역시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거나 한국 발행 신용카드가 없으면 쇼핑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런 점만 개선된다면 한국에서의 삶에선 더 바랄 게 없겠다. 한국 근무를 하며 한국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목도할 수 있어서 기뻤고, EU 대표부 대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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